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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시작에 달려 있다-최현열 광주 온교회 담임목사
2021년 12월 31일(금) 03:00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추억이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시기처럼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밤, 어머니가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어 펴시면 나는 시원한 감촉이 좋아서 그 위에서 뒹굴뒹굴 했던 기억이 있다. 저녁내 군불을 지펴 방안이 후끈 달아올라 얼굴은 발그레하다. 시원한 바람을 좀 쐬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마침 펼쳐진 그 이불의 사각거리는 느낌과 시원한 감촉은 그 위에서 얼마 동안 뒹굴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였다. 이내 차가운 웃풍에 몸서리치며 이불 속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그 순간 만큼은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기분 좋은 것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면서 지나간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나는 기분이 든다. 이제는 그 이름이 지겹기까지 하다. 일년이라는 시간이 한 것도 없이, 이룬 것도 없이 지나가 버린 기분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빠른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나이가 많을수록 하루하루가 특별하지도 않고 비슷한 삶의 반복으로 이루어 진다. 그래서 어제도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과 같은 삶의 반복이다. 이렇게 특별하지 않는 일상이 지속되면 기억할 것도 없고 추억할 것도 없이 빠르게 지나가 버린 것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요즘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많은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그렇게 느낄 것만 같다. 여행도, 만남도, 잔치도, 모임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시간들을 보냈기 때문이다.

오늘 자정이 지나면 2022년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한 해를 뒤돌아보며 생각하는 것도 많은 차이가 있으리라 본다. 특별히 각자가 처한 형편이 어떤가에 따라서 많이 달라진다. 건강하고 형통한 사람들은 밝은 눈으로 새해를 기다리고 묵은해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병들고 실패하고 좌절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세월이 흐르는 것이 더없이 처량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내일이 오늘에 비해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를 더 많이 닮아 가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올해가 작년과 달리 변화와 성숙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께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이어야 한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3장 12~14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라고 말씀하셨다.

라틴어로 목표라고 하는 말이 ‘피니스’(finis)인데 이것은 종말이라고 하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생의 진짜 목표는 인생 종말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것이다. 끝에 가서 후회하지 아니하는 목표라야 진짜 목표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생 목표를 바로 정하고 달려왔다는 증거이다. 그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 그는 환호하듯이 외친 것이 아니겠는가? 바로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도 그런 목표를 정해야 한다. 신앙인의 목표는 내가 예수님처럼 살고, 예수님처럼 되기를 원하는, 작은 예수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

오늘 하루가 2021년 마지막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내일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 2022년을 어떤 계획으로 시작하느냐에 따라 새해의 결말이 결정지어질 수 있다. 코로나로 엉망이 되고 이젠 지쳐 버려 생각하기도 싫고 지워 버리고 싶은 한 해가 아니라, 내일의 희망은 오늘 버릴 것이 없는 소중한 시간들로 만들어진다.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다. 끝은 새로운 시작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끝은 시작에 달려 있다.(Finis origine pendet) 그리고 내일의 해는 오늘 밤과 손을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