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광주의 진정한 영웅은 누구인가?
2021년 01월 18일(월) 05:00
박 진 표 정치부 기자
민주·인권의 도시 광주시 청사 1층에 광주의 ‘영웅’을 기리는 ‘명예의 전당’이 지난 14일 들어섰다. 광주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광주공동체에 헌신한 ‘영웅’을 기리기 위해 명예의 전당을 개관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코로나19 최전선 방역현장에서 묵묵히 헌신해온 의료진이나 시민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헌신한 소방관, 민주화를 위해 산화한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리라 생각했다.

명단을 받아보니, 예상을 깨고 건설업자와 사업가 등이 수두룩했다. 광주시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고 밝힌 ‘영웅’은 1987년부터 시상된 시민 대상 수상자 153명과 고액 기부자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114명 등 267명 이었다.

이 중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재판 중인 자, 성추행 사건에 휘말려 경찰에 입건된 자, 투자 등을 명목으로 지역내에 많은 피해자들의 눈물을 흘리게 한 자 등의 이름도 눈에 들어왔다. 반면 광주시민 누구에게나 ‘광주 영웅이 누구냐’고 물으면 쉽게 들을 수 있는 이름들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영웅(英雄)의 사전적 의미는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해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비범한 인물을 뜻한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영웅은 충무공 이순신 등이 있다. 서양에선 영웅을 ‘히어로’라고 부르는데, 신격화하는 성향이 강해 ‘슈퍼맨’이나 ‘배트맨’ 등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히어로로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광주시의 영웅 기준은 무엇일까?

물론 1억원 이상 고액기부를 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들의 뜻을 기리는 데 이견을 제기할 이는 없다. 다만 광주시민은 물론 외지인이 수시로 오가는 광주시청사 1층에 단지 1억원 이상의 고액을 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들까지 헌액하는 게 옳은 지는 따져볼 문제다.

광주시는 ‘영웅 기리기 위한 명예의 전당에 성범죄자 포함 논란’<광주일보 2021년 1월 15일자 2면>이란 기사가 나간 직후 해명 보도자료를 내고 “부적절한 인사를 걸러내는 세부 운영관리 규정을 마련하고, 문제가 제기된 일부 헌액자는 재판 결과 등에 따라 철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고액 기부자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의 경우 법적처벌만 받지 않는다면,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고 영웅 대우를 유지하겠다는 게 광주시의 해명인 셈이다. 별다른 고민 없이 ‘영웅’을 특정그룹으로 일괄 지정했던, 행정 편의주의식 ‘탁상행정’이 여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같은 시민여론과 동떨어진 행정행위를 지켜보는 시민과 시민사회단체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광주에선 돈만 기부하면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느냐는 반응부터 광주에는 고액기부자와 시민대상 수상자 외엔 영웅이 없느냐는 등의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광주시의 행정력으로 영웅을 찾기 힘들다면 지난해 12월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이 발간한 웹툰 책자라도 참고할 것을 제안한다. 이 웹툰 ‘광주역사문화자원 인물편’에는 전통시대와 근현대시대 인물 51명이 소개돼 있다.

부당한 권력에 굴하지 않았던 광주 인권 변호사 ‘홍남순’, 광주를 지키고자 했던 5월 사제 ‘조비오’, 애틋한 운동화의 주인공이자 광주의 아들 ‘이한열’, 우리 시대의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간 참스승 ‘윤영규’, 어두운 시대 들불이었던 ‘윤상원’, 망월동에 묻힌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 등 민주화 길목에서 만난 ‘영웅’부터, 광주 여성운동의 선구자 ‘조아라’, 무등산의 성자 ‘최흥종’, 광주학생운동의 아버지 ‘송홍’ 등 광주대표 영웅의 이야기를 한정된 신문 지면으로 모두 소개하기 힘든 점이 죄송할 뿐이다. /lucky@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