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완구’ 최광범 대표 “인형·장난감·전동차 … 동심으로 가득 합니다”
[충장로 오래된 가게의 재발견] (9)
89년 창업 후 90년대 후반까지 문전성시…직원 4명 두기도
장사 철학은 ‘신뢰’…코로나 확산 이후 온라인 판매 늘려
89년 창업 후 90년대 후반까지 문전성시…직원 4명 두기도
장사 철학은 ‘신뢰’…코로나 확산 이후 온라인 판매 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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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생일 즈음이 되면 부모님 손을 잡고 완구점에 가곤 했다. 일년에 몇번 없는 특별한 날, 선물을 사기 위해서다. 완구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진열돼있는 인형, 로봇, 레고 등 셀 수 없이 많은 장난감들을 보기만해도 황홀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완구점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이들에게 완구점은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존재다.
최근 광주시 동구 충장로에서 31년째 완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최광범(62) 서울완구 대표를 만났다. 서울완구는 1989년 문을 연 완구도소매업체로 로봇, 장난감, 인형, 전동차, 킥보드 등 아이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모든 완구를 판매하고 있다.
영암 출신인 최 대표는 광주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했다. 1985년 군대를 전역하고 대우전자에 입사해 근무하다가 퇴직하고 아내 하혜숙씨가 먼저 시작한 서울완구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최 대표는 “아내가 대학 때 유아교육을 전공했다”며 “그래서 자연스럽게 완구를 접하게 됐고, 이는 완구점 개업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서울완구 창업 때 장사가 잘 됐어요. 성업을 이루자 아내 혼자서 모든 일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죠. 그래서 1990년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당시 직원이 2~4명정도 있었는데, 제가 직원관리와 도매 일을 거들었어요.”
지금은 완구점이 충장로에 서울완구와 효성완구 두 곳밖에 없지만 1990년대 중반 무렵 충장로 4~5가에는 6개의 완구점이 있었다. 자유완구, 광주완구, 해태완구, 무등완구 등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장사가 잘 되는 곳은 서울완구였다. 충장로는 완구점이 밀집해 있는 곳이라 특별한 광고를 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나 어린이날 같은 특수가 있을 때는 새벽 2~3시까지 일을 했고, IMF가 오기 전에는 광주·전남을 비롯해 전북 지역에 있는 소규모 완구점에까지 납품을 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장사가 잘 되는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이로 인해 자식들에게 소홀했던 점이 아직도 미안함으로 남아있다. 그는 “부모 손길이 가장 필요할 때 바쁘다는 이유로 자식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며 “아이들을 위한 물건을 팔았지만 정작 내 아이들은 제대로 못챙긴 것 같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30년 넘게 완구점을 운영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고객과의 신뢰관계라고 말했다. 영업의 특성상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장사를 할때는 고객과의 신의가 중요해요. 최근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매장을 방문하기 보다는 온라인으로 주문하거나 사진으로 주문하기도 하니 신뢰가 없으면 장사가 불가능하죠. 지금까지 믿음의 기반을 잘 다져놨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최 대표는 앞으로도 꾸준히 신뢰를 바탕으로 영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앞으로 얼마동안 완구점을 운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는데 까지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충장로 상권이 많이 죽어 예전같이 호황은 누릴 수 없겠지만 충장로 5가 번영회장, 자치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상권을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효과는 미미하지만 서울완구와 충장로의 르네상스가 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
/영상=김혜림 기자 fingswoman@kwangju.co.kr
영암 출신인 최 대표는 광주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했다. 1985년 군대를 전역하고 대우전자에 입사해 근무하다가 퇴직하고 아내 하혜숙씨가 먼저 시작한 서울완구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최 대표는 “아내가 대학 때 유아교육을 전공했다”며 “그래서 자연스럽게 완구를 접하게 됐고, 이는 완구점 개업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지금은 완구점이 충장로에 서울완구와 효성완구 두 곳밖에 없지만 1990년대 중반 무렵 충장로 4~5가에는 6개의 완구점이 있었다. 자유완구, 광주완구, 해태완구, 무등완구 등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장사가 잘 되는 곳은 서울완구였다. 충장로는 완구점이 밀집해 있는 곳이라 특별한 광고를 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나 어린이날 같은 특수가 있을 때는 새벽 2~3시까지 일을 했고, IMF가 오기 전에는 광주·전남을 비롯해 전북 지역에 있는 소규모 완구점에까지 납품을 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장사가 잘 되는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이로 인해 자식들에게 소홀했던 점이 아직도 미안함으로 남아있다. 그는 “부모 손길이 가장 필요할 때 바쁘다는 이유로 자식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며 “아이들을 위한 물건을 팔았지만 정작 내 아이들은 제대로 못챙긴 것 같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30년 넘게 완구점을 운영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고객과의 신뢰관계라고 말했다. 영업의 특성상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장사를 할때는 고객과의 신의가 중요해요. 최근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매장을 방문하기 보다는 온라인으로 주문하거나 사진으로 주문하기도 하니 신뢰가 없으면 장사가 불가능하죠. 지금까지 믿음의 기반을 잘 다져놨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최 대표는 앞으로도 꾸준히 신뢰를 바탕으로 영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앞으로 얼마동안 완구점을 운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는데 까지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충장로 상권이 많이 죽어 예전같이 호황은 누릴 수 없겠지만 충장로 5가 번영회장, 자치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상권을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효과는 미미하지만 서울완구와 충장로의 르네상스가 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
/영상=김혜림 기자 fingswoman@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