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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자, 오월도 이제 미완의 과제 해결하고 일상으로 가자
(15) 에필로그
진상규명 이뤄야 진정한 명예회복
5·18 행사도 이제 시민참여형으로
오월정신 미래세대에 온전히 전해야
2020년 05월 26일(화) 00:00
지난 18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내 정은 청산이오’ 헌정 공연을 하고 있다. <광주일보 자료사진>
5·18민주화운동은 한국의 민주주의의 초석이 됐다. 1980년 계엄군의 총칼아래 광주 시민들이 흘린 피가 한국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전환점이 된 것이다.

더불어 가장 중요한 사실은 5·18로 인해 한국은 민주화를 쟁취했고, 이는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1980년대 이후 필리핀, 타이, 중국, 베트남, 홍콩 등지에서 한국의 5·18을 모델로 다양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어떤 민주주의 운동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가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40년의 세월동안 5·18은 수많은 시련에 흔들려 왔다.

왜곡과 폄훼로 5·18의 진실이 가려져 고통받은 물론이고 우리 스스로에게도 5·18은 부담과 어려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어느덧 5·18은 ‘역사’로 굳어 가고 있다. 우리도 모른 채 5·18은 그렇게 박제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옳은 일이라서 누구나 할 것 없이 나섰던 1980년 광주의 오월정신이 이제는 한국 현대사를 바꾼 큰 역사적 사건 중 하나이자 그저 기념해야 할 존재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 40주년 5·18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40년이 지난 현재 앞으로의 5·18이 남긴 과제를 포함하고 있다.

◇ 아직 남은 5·18의 과제 = 5·18은 긴 세월동안 수많은 도전에 아파왔고, 아직도 진행중이다.

그동안 수차례 진상규명의 활동이 정부차원에서 진행돼 왔지만, 여전히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세력들의 공격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도 진상규명이 밝혀지지 않은 문제들이 5·18을 왜곡하는 세력들에게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5·18의 진실은 사회적으로 인정돼야 할 뿐 아니라 법률적으로 인정되어야만 진실이 된다.

지난 1995년 제정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으로 사법적 인정은 획득했지만, 발포명령·헬기사격·행방불명자와 암매장·민간인 집단학살·계엄군 성폭력 사건 등의 중요한 문제들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직 사회적 인정은 불안정한 점이 있다.

이로 인해 5·18유가족과 광주는 아직도 진정한 명예회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40주년을 맞는 올해 초 ‘5·18민주화운동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가 출범했다. 이번 진상조사위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진상조사위는 처음으로 정부의 공식 조사결과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렇기에 5·18의 진실을 밝히는 마지막 기회라고까지 불리우고 있다.

40년의 세월이 흘러 진실을 밝히는데 녹록치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많은 문서나 기록이 조작되거나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많다. 또한 진실의 입을 열어줄 증언자들도 이미 상당수 고인이 돼버렸다.

하지만, 광주의 진실은 뿌리가 깊다. 그동안 밝히지 못했던 사실들을 밝혀내야 할 것이며, 그동안 닫혔던 입을 열게 만들어야 한다.

이로써 40년간 아파왔던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하고,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한 오월영령의 한을 풀어줘야만 한다.

다가올 50주년의 5·18이 또다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의무감에 모든 이들이 아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둔 지난 14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참배객들이 오월영령들의 묘소를 찾아보며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 영원히 보존되야 할 5·18 = 5·18은 과거형이 아니다. 우리의 곁에서 살아 숨쉬고 있고, 우리의 정신의 뿌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5·18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5·18 후세대가 사회의 원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1980년 5·18을 경험하고 공유했던 세대와는 다른 세대이다.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은 훨씬 개별화돼 있고 다양하게 분산돼 있다.

미래의 주인이 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5·18은 하나의 전설이나 신화에 가까운 역사로 남고 있는 것이다.

5·18에 대한 의의와 정의, 설명 등이 너무나 이론적이고, 작위적인 탓도 있지만 우리의 실생활과 동떨어진 느낌도 어쩔 수 없는 이유이다.

5·18 후세대는 국가주의적 독재를 경험하지 못하고 민주화에 대한 갈망이 없는 세대이기에 국가의 처참한 폭력을 믿기 어려울 수 있다.

결국 이들은 5·18의 진실을 교육과 대중매체를 통해 간접 경험할 수 밖에 없기에 1980년 오월의 의미를 느끼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들은 점차 축소될 수 밖에 없다. 5·18 40주년을 맞는 우리는 5·18의 오월정신을 미래세대에게 어떻게 이어줄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시점에 봉착했다.

결국 5·18은 시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5·18의 재현과 추모 성격에 치중, 단순한 5·18정보 제공에 집중하기보다는 시민 참여형으로 변모해야 하는 것이다.

올해 40주년의 행사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이번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새롭게 변모해야 할 도전에 직면했다. 애초 시민 참여형으로 준비됐던 사업들이 결국 모두 온라인 중심으로 변경돼 버렸다. 하지만 희망은 보였다. 다채로운 행사에 젊은이들이 스스로 참여를 시작하는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다양한 문화사업들도 많이 진행됐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자’와 같은 영화 한편이 온 국민에게 5·18을 인식시켰던 점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영화나 뮤지컬, 연극 등 유무형의 문화 활동도 체계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문화사업을 통한 5·18알리기는 미래세대에게 어떠한 프로그램이나 캠페인 보다도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5·18은 무섭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부담스럽다는 껍질을 깨트리고 시민 곁으로 한발 더 다가서야 할 시점이다. 5·18이 미래세대에게 온전히 전해질 수 있어야 5·18은 진정한 우리의 역사가 될 것이다.

<끝>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