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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세력이 지향하는 미래가치는 5·18정신에 있다
2020년 03월 31일(화) 00:00
이재의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
5·18을 주제어로 빅데이터 분석을 한 결과가 흥미롭다. ‘검찰’을 키워드로 했을 때 가까운 연관어는 ‘진상규명’이 아니라 ‘신군부, 수사, 전두환, 노태우, 재판, 처벌’ 등의 단어들이다. ‘진상규명’은 오히려 ‘민주화, 광주, 운동, 대통령, 역사, 진실’ 등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어느 언론에서 지난 40년간 5·18 연관어를 빅데이터 분석한 결과다. 즉 진상규명의 주체가 검찰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40주년을 맞는 5·18의 화두는 다시금 ‘진상규명’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그만하면 됐으니 이제 좀 그만하자’는 소리도 들린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무리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사정이 있다. 지난해 모 정당이 주도한 국회 공청회는 5·18을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해 벌인 폭동’이라는 극우세력의 선전장이 됐다. 뒤이어 그 선동에 동조하는 자들이 광주시내 한복판에까지 떼 지어 몰려와 유공자명단을 “까라, 까!”하며 광주시민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시위를 벌였다. 유튜브에서는 5·18을 비난하는 가짜뉴스가 뒤덮고 있다. ‘전두환 회고록’은 헬기사격을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피터슨 목사를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비난하며, ‘5·18은 폭동’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들에게 5·18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좌익들이 조작해낸 신화’에 불과하다.

‘제주4·3’이나 ‘4·19’에 대해서는 이런 비난이 거의 없는데 왜 5·18에 대해서만 유난히 이러는 걸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는 5·18이 당초 극우 색채가 농후한 신군부집단의 ‘사전기획’에서 비롯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7년 대법원은 12·12, 5·18사건 재판에서 ‘12·12군사반란’을 통해 불법적으로 군권을 장악한 정치군인 집단이 정치권력까지 잡기 위해 ‘5·17내란’을 일으켰다고 판시했다. 12·12와 5·17을 잇는 중간에 신군부의 치밀한 사전기획이 작동했다. 즉 언론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위한 ‘K공작계획’, 시위가 발생할 경우 조기에 무력으로 진압하기 위한 ‘충정훈련’, 정보 장악을 위한 전두환의 ‘중앙정보부장서리 취임’과 중앙정보부를 이용한 ‘북한의 남침 위협 정보조작’, 그리고 이런 기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보안사 참모들이 만들고 신군부 핵심부가 동의한 ‘시국수습방안’이 바로 ‘사전기획’의 증거라고 판단했다. 여기까지가 사전기획이었다면 그 이후는 ‘역사기획’으로 넘어간다.

전두환은 집권과 동시에 관료와 지식인 집단을 통해 극우 이데올로기 확산을 시도했다. 사회정화위원회, 삼청교육, 언론계숙청, 교육 문화 전반, 검찰 및 사법부 정화 등등 그야말로 ‘사회적 대학살’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엄청난 규모의 ‘인적 대청소’를 시행했다. 극우이데올로기의 폭력성과 비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쓰라린 경험을 거쳤던 우리 사회는 6월항쟁을 경유하면서 5·18정신을 미래사회의 소중한 가치지향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다시 반동의 계절이 찾아왔다. 신보수주의의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극단적인 자유방임시기를 지나 옛 군부세력과 극우세력의 결탁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때 극우세력이 가장 역점을 두었던 대목이 바로 ‘역사기획’이다. ‘일제 식민통치’는 실재하지 않았고 ‘좌익이 조작해낸 허구적인 역사 프레임’이라는 주장을 공공연하게 펼쳤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으로 제공한 ‘성적 비즈니스’로 바뀐다. 5·18역시 그런 맥락에서 보는 것이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주장은 좌익들이 만들어낸 거짓 프레임이기 때문에 잘못된 역사프레임을 깨기 위해 북한군의 존재를 입증하겠다고 나선 것이 소위 ‘광수’ 시리즈다. 5·18을 이데올로기 전장터로 만들어 민주시민세력을 좌익 프레임으로 몰아버리겠다는 것이 그들의 역사기획 의도다.

이들이 유독 5·18에만 집중해서 왜곡 비난하는 의도는 분명하다. 6월항쟁이나 촛불혁명 등 현실의 민주화세력이 지향하는 미래가치가 5·18정신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40주년을 맞아 ‘진상규명’이 피해사실 규명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향한 출발점이라는 자각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