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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不惑 )의 5·18에게
진상 규명 마지막 기회
전문 연구자 참여 절실
2020년 01월 22일(수) 00:00
채 희 종 편집부국장·사회부장
‘5·18’이 불혹을 맞았다. 40년이 된 5·18을 모르는 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일부 극우 세력과 정치인들은 아직도 5·18을 폭력사태로, 북한군 개입에 의한 폭동으로 폄훼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유튜브 등의 인터넷 매체를 통해 5·18항쟁을 왜곡하는 가짜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맞대응할 가치를 느끼지는 못하지만 광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속상하고 분한 마음에, 또 혹시나 하는 염려에 5·18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누구보다 5·18을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지만 막상 몇 줄짜리 개념마저도 기록에 의존하지 않고는 정리가 어려웠다. 부끄러울 따름이다.

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27일 새벽까지 열흘 동안,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당시 신군부의 진압에 맞서 광주 시민과 전남 도민이 ‘비상계엄 철폐’ 등을 외치며 죽음을 무릅쓰고 항거한 사건이다. 특히 광주 시민들은 항쟁 기간 중 5월 22일~26일 닷새 동안, 자력으로 계엄군을 물리쳤음에도 약탈이나 방화 등 단 한 건의 불미스러운 사건을 일으키지 않은 세계 민주주의 운동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자치 공동체를 실현했다. 5·18은 도덕적 질서가 유지된 항쟁이라는 점에서 아시아와 제3세계 민주주의 운동의 교과서이자 정신적인 지표로 꼽힌다.

계엄군에 의해 진압당한 이후 5·18은 한때 ‘폭동’으로 매도당했으나 진상 규명을 위한 끈질긴 투쟁으로 1996년에는 국가가 기념하는 민주화운동으로, 2001년에는 피해자가 민주화 유공자로, 5·18묘지가 국립묘지로 승격돼 그 명예를 온전히 회복했다. 5·18은 한국 민주주의의 분수령이 되는 1987년 6월 항쟁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제 5·18은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고 있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국민들에게 귀중한 경험을 제공해 주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생활 속 민주주의를 실현한 위대한 사건일 뿐만 아니라 광주와 대한민국의 다양한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다.

5·18은 정의하기에는 너무나 간단한 사건이다. 이미 역사적, 정치적, 사법적 판단이 끝난 사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5·18은 12·12군사반란과 불법적인 계엄에 맞선 민중 항쟁이다. 그 과정에 권력욕에 미친 정치군인들이 가장 격렬하게 저항한 광주 시민을 본보기 삼아 제압하기 위해 벌인 학살이다. 300여 명의 목숨과 4000명이 피 흘린 대가로 오늘의 민주주의가 꽃핀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심연처럼 깊은 좌절과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무참하게 숨진 가족과 아들딸이 폭도로 둔갑하고, 북한군의 사주를 받았다는 망언이 되풀이될 때마다 그날의 악몽에 시달린다.

5·18 진상 규명은 1988년 국회 청문회를 시작으로, 1995년 특별수사와 2007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 등을 통해 수차례 이뤄졌다. 헬기 사격 등 숨겨졌던 진실이 단편적으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국가 차원의 최종 보고서는 발간되지 않았다. 결국 발포 명령자와 암매장은 아직도 밝히지 못한 미완의 과제이다.

이제 우리에게 마지막 3년의 기회가 주어졌다. 올 초 출범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3년 임기로 5·18 당시 발포 명령자와 역사 왜곡, 민간인 학살 및 암매장 등과 관련한 조사에 들어간다. 5·18진상조사위가 3년의 활동을 마치고 진상 조사 결과 보고서를 작성해 국가의 승인을 받을 경우, 국가보고서는 최종 역사 기록으로 확정된다.

34명의 조사관들이 주축이 돼 지난 40년간 묻히다 못해 왜곡된 진실을 3년 만에 밝혀내는 일은 무척 고단한 과정이 될 것이다. 진상 규명의 실무를 담당할 조사관을 22일부터 29일까지 모집한다고 한다. 당초 60세 이하였던 지원 자격의 연령 제한이 풀리면서 오랜 세월 5·18을 연구한 전문 인력을 채용할 길이 열렸다.

그러나 최근 들어 조사관 채용을 놓고 5·18 연구자와 시민사회 활동가들 사이에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러 기관이나 관변단체에서 활동하던 비전문가나 세월호 조사와 과거사조사위 활동 시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았던 인사들이 5·18조사관 응모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역사적 소신을 가진 우수한 연구자나 전문인들의 지원이 절실한 대목이다. 진상조사위는 검찰 수사 의뢰와 국회 특별검사 임명을 요청할 수도 있는 만큼 모든 권한을 행사해 5·18의 숙원 해결에 전력해 주길 바란다.

이번 설 연휴에는 국립5·18민주묘지에 한번 다녀오는 건 어떤가. 아마 가신 임들이 웃으면서 맞아 주실 것 같다.

/cha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