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에서 검증대상으로 발가벗겨지다 - 박진표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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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에서 검증대상으로 발가벗겨지다 - 박진표 경제부장
2026년 01월 14일(수) 00:20
선거는 결국 사람을 드러낸다. 공약의 완성도보다 인간관계의 틈이 먼저 보이고, 출마자의 진심보다 왜곡된 해석이 앞서는 장면도 반복된다.

선거 출마와는 거리가 먼 기자라는 직업임에도 최근 ‘제45대 광주전남기자협회장 선거’에 출마한 덕분에 이러한 선거제도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만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공약

광주·전남권역 18개 신문·방송·통신사 소속 500여 회원의 대표를 선출하는 협회장 선거는 2년마다 한 번씩 치러진다. 규모만 놓고 보면 제한적이지만, 2주일이라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 동안 광주와 전남 22개 시·군을 직접 돌며 체감한 긴장감은 여느 선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각종 억측성 유언비어가 떠돌고, 오랜 신뢰로 이어져 온 관계에서 미묘한 거리감이 감지되기도 했다. 선거기간 선의로 건넨 말이 맥락을 잃고 왜곡되는가하면 공격의 소재가 되는 순간도 있었다. 어느 정치인의 말처럼 “선거는 평소에는 가려져 있던 사람의 속내까지 여과 없이 비추고 확인할 수 있는 무대”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2000년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한 이후 늘 관찰자의 위치에 있었다. 권력과 제도, 기관 정책과 공무원, 정치인 등을 취재하고 평가하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광주전남기자협회장 출마선언을 하는 순간 뒤집혔다. 질문하던 사람에서 질문을 받는 사람이 됐고, 평가하던 위치에서 평가받는 대상으로 이동했다. 그동안 기자로서 어떤 말을 해왔는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어떤 인간관계를 쌓아왔는지가 한꺼번에 검증대에 올랐다. 선거라는 무대 위에서 발가벗겨져 심판을 받는 느낌이었고, 솔직히 두렵기도 했다. 협회장 선거를 넘어 동료 기자들 앞에서 기자의 삶과 개인적 삶까지 모두 평가받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지킨 원칙이 하나 있었다. 그동안 접하기 힘들었던 전남 22개 시·군에서 활동하는 기자 회원들을 직접 만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여러 지역에서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고, 일정이 빠듯하다는 이유, 바쁘다는 사정 등이 뒤따랐다. 결국 상당수의 시·군은 방문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도 어렵게 현장을 찾으면 풍경은 달랐다. 대화는 예상보다 길어졌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깊어졌다. 어느 지역에선 단 1명의 회원 밖에 만날 수 없었지만, 오히려 2시간 넘게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오지 말라고 했던 이들 모두 “안 만났으면 어쩔뻔 했냐.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이번 선거를 경험하며 확인한 사실은 분명했다. 사람은 만나야 보이고, 제도는 현장에 가야 실체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선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방행정과 지방정치 전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후보가 지역을 찾는 이유는 단순한 인사 차원이 아니다. 공약은 인쇄물에 적힐 때보다 유권자 앞에서 직접 설명될 때 비로소 무게를 갖는다. 눈을 마주치고 약속하는 순간 그 말은 후보 스스로를 묶는 책임이 된다. 반대로 공약집만 남는 선거는 쉽게 잊히고 책임도 흐려지기 마련이다. 현장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공약의 오류도 정확히 짚어냈다. 일부 공약은 그 자리에서 폐기를 결정했다. 공직사회에서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좋은 정책은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6·3지방선거 냉소 대신 적극 참여를

이번 선거 경험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일단 올해 6·3 지방선거도 그동안 반복돼 온 일부 유권자의 무관심이 되풀이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앞선다. 선거 때는 후보의 이름은커녕 공약에도 관심이 없던 유권자들이 선거가 끝난 뒤 “뽑아줬더니 도대체 하는 일이 뭐냐”고 정치인을 몰아세우는 풍경이 반복될까도 걱정스럽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 참여의 의미를 이렇게 경고했다. “정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할 때 치러야 할 대가 중 하나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지배를 받는 것이다.” 수천 년을 건너온 이 문장은 오늘의 선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무관심이 쌓일수록 정치는 소수의 계산과 이해관계에 의해 더 쉽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성숙한 민주주의에서 유권자는 단순한 선택자가 아니다. 투표일에 한 번 표를 던지는 존재에 머물지 않는다. 후보를 직접 만나 공약을 요구하고, 재원 마련과 실행 가능성을 묻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책임을 묻는 주체다.

그리고 선거는 투표함이 닫히는 순간부터가 오히려 진짜 시작이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당선 후 임기는 공약이행 여부를 지속적으로 평가받는 또 하나의 선거기간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6월 3일 지방선거는 무관심 대신 질문이, 냉소 대신 관심과 책임이 작동하는 품격 있는 선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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