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5월 20일 ‘시민들 일어나다’
택시기사들도 인자 더는
당허지 않을랑갑소
근디 밤새
여자덜이 방송을 허고
돌아댕기는디
![]() |
어제 오후 광주에 온 동국대생 박병규는 어둑어둑한 시각에 집을 나섰다. 새벽의 날빛과 간밤의 어둠이 뒤섞인 시각이었다. 차가운 봄비는 그쳤지만 공기 중에 떠도는 안개 같은 미세한 물방울들이 얼굴에 스쳤다. 서울에서 출발한 야간열차가 광주역에 도착하는 시각은 새벽 5시 15분이었다. 박병규는 늦게 일어났다고 자책하면서 광주역으로 갔다. 서방에 사는 국문과 친구가 야간열차를 타고 온다고 해서 마중 나가는 길이었다.
박병규는 광주역에 도착해서 친구를 찾았다. 그러나 승객들도 친구도 다 빠져나가버리고 보이지 않았다. 역구내에는 좀 전까지 내리던 봄비를 피해 계엄군들이 무리지어 있었다. 약 2백여 명쯤 되었다. 아마도 친구는 계엄군들에게 붙잡힐까봐서 기다리지 않고 어디론가 가버린 듯했다. 박병규도 역구내에서 마냥 있을 수만은 없어서 돌아섰다. 5월인데 제법 추웠다. 한기가 일렁거려 얼굴에 소름이 돋고 어금니가 떨렸다. 역전 광장에는 승객을 태우지 못한 택시 운전수들이 호객을 했다. 박병규는 택시를 탔다. 택시 운전수가 묻지도 않았는데 계엄군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공수 놈덜이 학생만 태우고 가믄 차를 세우고 행패를 부리는디 미친놈도 그런 미친놈덜이 ?을 것잉마.”
“아저씨, 저도 학생인디요.”
“이른 아칙인께 괴않찮을 거요.”
“택시기사들도 인자 더는 당허지 않을랑갑소. 근디 밤새 여자덜이 방송을 허고 돌아댕기는디 가심을 후벼파불드그만. 아칙 기사덜 인사가 모다 그 얘기뿐이여.”
“그래요?”
“두고 보씨요. 오늘 낼 사이에 택시 기사나 시민덜이 들고 일어날 거요. 참말로 징헌 공수 놈덜이요.”
집으로 오는 동안 살벌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총을 멘 계엄군들이 한 손에 진압봉을 들고서 2인 혹은 3인씩 거리를 활보하는가 하면, 도로에는 불탄 대형트럭과 반쯤 파손된 군용 지프차가 치워지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
집 앞에서 내린 박병규는 살그머니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식구들은 아직도 자고 있었으므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어머니 김양애 씨도 이틀 전부터는 장사가 안 된다며 양동시장을 여느 때보다 늦게 나갔다. 박병규는 아침식사 뒤 금남로 쪽으로 나갈 생각을 하고 이부자리 속으로 들었다. 서울의 자취방과 달리 따뜻한 이불이 몸을 포근하게 감쌌다. 박병규는 자신도 모르게 잠깐 코를 골았다.
양동시장 부녀회장 김양애 씨는 아들의 아침상을 차려놓고 나갔다. 일부러 아들 박병규를 깨우지 않았다. 박병규가 눈을 떴을 때는 오전 10시쯤이었다. 그는 집을 나와 걸어서 광주천변을 지나 새벽에 만나지 못했던 친구가 사는 서방 쪽으로 갔다. 시내버스가 다니지 않아서 시위상황을 파악할 겸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 박병규가 계림동 성당 앞을 막 지날 무렵이었다. 군용트럭이 한 대 멈추더니 타라고 박병규 또래의 운전수가 손짓했다.
“대학생이오?”
“맞소.”
“워미, 얼능 조수석으로 타쇼. 시방 화정동, 유동을 거쳐 도청으로 갈틴께.”
군용트럭에는 벌써 시민청년 학생들이 이십여 명쯤 타고 있었다. 운전수가 자신을 소개했다.
“오인수요. 쌍촌동 외삼촌 페인트가게에서 일하는 도장공이요.”
오인수는 활달하고 말이 많았다. 묻지 않은 말도 물을 쏟듯 해댔다. 그의 운전 또한 제멋대로 거칠었다. 달리던 군용트럭이 유동삼거리에서 갑자기 멈추어 박병규는 유리창에 머리를 찧을 뻔했다. 유동삼거리 세차장 앞 도로에 자동차 몇 대가 불타고 있었다. 군용트럭은 불타는 자동차를 겨우 피해서 다시 달렸다.
“오형, 운전면허증은 있소?”
“하하, 대학생 형씨. 운전면허증이 있으믄 내가 페인트칠을 허고 살겄소? 쌍7년도에 광주자동차학원을 며칠 댕긴 경험이 전부요. 쪼깐 전에 아가씨 한 명이 죽은 오빠를 찾는다고 시내로 나왔다가 버스가 댕기지 않응께 나보고 서방까지 태워달라기에 운전대를 잡았소. 어린 애기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측은해서 부근에 버려진 군용트럭을 탄 거요. 서방까지 갔다가 시민들을 모아 도청으로 가고 있는 중이요.”
그제야 오인수와 박병규 사이에 낀 시민이 물었다.
“나도 운전헐 줄 아는디 트럭 키는 으디서 찾았소?”
“아저씨는 운전헐 줄 안다믄서 자동키도 모르요? 열쇠 ?이도 시동을 걸 수 있지라.”
“운전은 지대로 배왔그만잉.”
“지가 손재주는 쪼깐 있지라. 집에서 나올 때 본께 화정동사거리 부근에서 군용 지프차가 불타고 있습디다. 거그도 버스가 댕기지 않응께 사람들을 태우러 갑시다.”
군용트럭 뒤에 탄 시민들은 불타는 자동차 중에서도 군용차를 볼 때마다 흥분이 되는지 함성을 질렀다. 오인수는 기묘한 쾌감을 느꼈다.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졌다.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자신이 나서서 하고 있다는 그런 자부심이었다. 오인수 옆에서 몸을 뒤로 젖히고 있던 시민이 또 물었다.
“페인트칠허는 사람은 아닌 거 같은디?”
“아저씨는 고로코름 보인갑소잉.”
“내가 좋아허는 권투선수 같그만.”
“하하. 안 해본 거 ?는 사람이지라. 벨벨 일을 다 해봤당께라.”
오인수는 집안 살림이 어려워서 국민학교를 겨우 졸업한 뒤 객지로 돌았기 때문에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였다. 형제가 모두 마찬가지였다. 각자 살 길을 찾아 집을 떠났던 것이다. 오인수는 열다섯 살 때부터 서울, 광주, 제주 등지를 떠돌았는데 주로 건축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했고 제주도에서는 관광선을 여섯 달이나 탔다. 다시 고향 광주로 돌아온 뒤로는 외삼촌 페인트 가게에서 눈썰미가 좋아 페인트칠하는 도장공이 되어 현재는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박병규가 물었다.
“나는 농성동 사는디 집이 으디요?”
“쌍촌동 달방에서 월세 3만원씩에 살고 있지라. 엄니를 모시고 조카 한 놈을 델꼬서 구차허게 살고 있지라.”
“엄니를 모시고 산다믄 구차헌 것이 아니지요.”
군용트럭은 도청이 보이는 가톨릭센터 앞에서 멈추었다. 시위인파 때문에 더 이상 진입이 불가능했다. 공수부대와 시위시민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박병규는 트럭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오인수는 군용트럭에서 사람들이 다 내리자, 개인기를 부리듯 거칠게 군용트럭을 돌렸다. 그때 화장을 짙게 한 여자들이 달려와 오인수에게 빵과 우유를 주었다.
“여그서 뭐허는 여자덜이요?”
“아저씨들 고생하니까 우리도 나섰지라.”
“이 차 타겄소?”
“아니요. 아저씨나 밤에 잘 디가 ?으믄 우리 가게로 오씨요.”
아가씨가 오인수에게 홍보명함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오인수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이 차가 내 방인디 으디로 가겄소?”
박병규는 도청 앞으로 가기 위해 오인수와 헤어졌다. 시위청년 학생들이 공수부대원들과 간간히 투석전을 벌이는데 격렬하지는 않았다. 도청 앞까지 인도를 따라 걸어 갈만했다. 학생보다는 시민들이 눈에 띄게 많은 것이 서울과 달랐다. 서울에서는 대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나와 서울역 같은 데서 여러 대학 합동으로 시위했지만 시민들의 가담은 적었던 것이다.
오인수는 전남대 쪽으로 갔다가 시민들을 몇 명 태웠다. 군용트럭에 탄 시민 중에는 태극기를 가지고 나와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광주역으로 가는 도로가에서 한 고등학생이 손을 들었다. 오인수는 ‘이놈아 니는 공부헐 때여.’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망설였다.
“고등학생이제?”
“예, 사레지오고 3학년 최치수그만요.”
“으디로 갈라고 손을 들었냐?”
“얼능 태워주씨요. 지 할 일도 있응께라.”
“그래? 뒤짝에 타부러.”
고교생 최치수는 왠지 어른스러웠다. 목소리는 크고 우렁우렁했다. 잠시 후 오인수는 고교생 최치수가 차에 타기를 잘했다고 무릎을 쳤다. 최치수는 군용트럭이 멈추기만 하면 웅변하듯 소리쳐 시민들을 불러 모았다.
‘공수부대가 우리 부모 형제들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전두환이 정권을 잡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시대에 역행하는 전두환이를 쳐부숩시다. 시민 여러분, 모두 금남로로 나가 광주시민의 힘을 보여줍시다.’
최치수가 한 마디 하면 한꺼번에 서너 명씩 시민들이 몰려왔다. 오인수는 용변이 마려워 주유소에서 군용트럭을 세웠다. 군용트럭에 탄 시민들도 주유소 화장실에서 용변을 봤다. 그때 오인수가 바지춤을 끌어올리며 최치수에게 말했다.
“아따, 니는 말도 잘헌다잉. 으디서 배운 실력이냐?”
“고1때 웅변을 좀 했지라. 제3땅굴발견 때 반공궐기대회에 나가 웅변도 하고 혈서도 쓰고 그랬어라.”
“워미, 니가 나보다 몇 배 몇 천배 똑똑허다야.” “아이고, 형님. 무슨 말씀인게라. 형님들이 광주를 지키기 위해 고생하시니까 저희들도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야지라.”
“우리같이 노가다판서 밥묵고 사는 놈덜이 싸울틴께 니는 집에 가서 공부나 허제 그러냐.”
“아니지라. 오늘 트럭을 탔응께 목이 터지라고 외쳐불랍니다.”
“고맙긴 헌디 집이 으디여? 태워다 줄게.”
“형님, 풍향동 자취방으로는 못 가라우. 형사들이 날 잡을라고 있을지 모른께라. 사실은 담임선생님이 피신해 있으라고 해서 어저께부텀 요렇게 돌아댕기고 있그만이라.”
“잘 디가 ?으믄 이 차에서 자도 돼.”
“잠 잘 곳은 있지요. 그랜드호텔 뒤쪽에 친구 아버님이 경영하는 여관이 있그만요.”
오인수는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난 뒤 다시 군용트럭에 올라탔다. 최치수도 뒤따라 승차해 시민들을 많이 탈 수 있도록 앞쪽으로 안내하고 자신은 또 다시 소리치기 시작했다.
박병규는 목이 말랐다. 시위인파에 섞이어 갑자기 구호를 외쳤더니 목이 잠기고 최루탄 가스에 눈물이 찔끔찔끔 났다. 지난 겨울방학 때 한 번 들렀던 충장로 ‘하나음악실’을 찾아갔다. DJ가 자신이 신청했던 곡을 두 번이나 틀어주어 인상이 깊었던 음악실이었다. 낮에는 송정리비행장에서 방위병으로 복무하고 밤에는 하나음악실로 나와서 근무하는 DJ였다. 박병규가 신청한 곡은 ‘나 어떡해’,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곡이었다.
그런데 박병규는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하나음악실은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셔터에는 ‘19일부터 무기한 휴업’이라는 종이쪽지가 붙어 있었다. 아마도 혼란한 시내상황 때문에 휴업중인 듯했다. 할 수 없이 박병규는 삼양백화점에 있는 삼양다방으로 갔다. 삼양다방 입구를 들어서려는데, 다섯 명의 청년들이 계단을 뛰다시피 올라갔다. 네 명은 3층 당구장으로 뛰었고 한 명은 힘에 겨운지 2층 삼양다방으로 들어갔다. 그 청년은 뒷머리가 찢어져 피를 흘렸다. 삼양다방으로 들어간 청년은 청운학원 재수생 최동기였다. 박병규도 얼른 삼양다방으로 들어가 빈자리에 앉았다. 다방에는 마담과 아가씨 세 명이 있었다. 최동기는 단골인 듯 빈 자리에 앉지 않고 주방 쪽으로 갔다. 마침 소파 앞에 40대의 마담이 서 있다가 최동기가 뭐라고 하자 치마를 들어올렸다. 최동기는 망설이지 않고 마담의 흰 한복치마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공수부대원이 들어와 수색했다.
“머리 깨진 놈 이리 들어오지 않았십니꺼?”
“그런 사람 못 봤그만이라.”
최동기는 마담의 치마 속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줄만 알고 있을 할머니가 떠올랐다. 지금 공수부대원에게 잡혀간다면 할머니에게 가장 미안할 것 같았다. 시골 화순에 계시면 편하실 텐데 손자를 위해 광주로 올라와 밥하고 빨래를 해주시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할머니는 그가 문중종손이라고 하여 유달리 애지중지 아끼셨던 것이다.
“다방에 우리 밖에 없는디 그라요.”
“고생 많은디 커피나 한 잔 하고 가씨요.”
아침부터 커피 한 잔을 놓고 죽치고 있던 건달 몇 명이 너스레를 떨자 공수부대원은 그냥 돌아갔다. 공수부대원이 나가자 마담이 치마를 들어올렸다. 다행히 흰 치마에 피가 묻어 있지는 않았다. 최동기가 지혈을 시키느라고 찢어진 뒷머리 부분을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어서였다. 마담이 말했다.
“동기 학생, 오늘이 생일인 줄 알어.”
“누님, 고맙그만요.”
마담의 연둣빛 저고리에 꽂은 무궁화 조화가 유난히 크게 보였다. 아가씨들이 몰려와 “언니가 숨겨주지 않았으면 잡혀갔지라.”라고 한마디씩 했다. 최동기가 삼양다방을 나간 뒤 박병규는 이를 악물었다. 공수부대원에게 쫓기는 청년들을 직접 보자 분노가 치밀었다. 폭도는 시위청년 학생들이 아니라 만행을 서슴지 않는 공수부대원이었던 것이다. 목이 말랐던 박병규는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계속>
“아저씨, 저도 학생인디요.”
“이른 아칙인께 괴않찮을 거요.”
“택시기사들도 인자 더는 당허지 않을랑갑소. 근디 밤새 여자덜이 방송을 허고 돌아댕기는디 가심을 후벼파불드그만. 아칙 기사덜 인사가 모다 그 얘기뿐이여.”
“그래요?”
“두고 보씨요. 오늘 낼 사이에 택시 기사나 시민덜이 들고 일어날 거요. 참말로 징헌 공수 놈덜이요.”
집으로 오는 동안 살벌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총을 멘 계엄군들이 한 손에 진압봉을 들고서 2인 혹은 3인씩 거리를 활보하는가 하면, 도로에는 불탄 대형트럭과 반쯤 파손된 군용 지프차가 치워지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
집 앞에서 내린 박병규는 살그머니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식구들은 아직도 자고 있었으므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어머니 김양애 씨도 이틀 전부터는 장사가 안 된다며 양동시장을 여느 때보다 늦게 나갔다. 박병규는 아침식사 뒤 금남로 쪽으로 나갈 생각을 하고 이부자리 속으로 들었다. 서울의 자취방과 달리 따뜻한 이불이 몸을 포근하게 감쌌다. 박병규는 자신도 모르게 잠깐 코를 골았다.
양동시장 부녀회장 김양애 씨는 아들의 아침상을 차려놓고 나갔다. 일부러 아들 박병규를 깨우지 않았다. 박병규가 눈을 떴을 때는 오전 10시쯤이었다. 그는 집을 나와 걸어서 광주천변을 지나 새벽에 만나지 못했던 친구가 사는 서방 쪽으로 갔다. 시내버스가 다니지 않아서 시위상황을 파악할 겸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 박병규가 계림동 성당 앞을 막 지날 무렵이었다. 군용트럭이 한 대 멈추더니 타라고 박병규 또래의 운전수가 손짓했다.
“대학생이오?”
“맞소.”
“워미, 얼능 조수석으로 타쇼. 시방 화정동, 유동을 거쳐 도청으로 갈틴께.”
군용트럭에는 벌써 시민청년 학생들이 이십여 명쯤 타고 있었다. 운전수가 자신을 소개했다.
“오인수요. 쌍촌동 외삼촌 페인트가게에서 일하는 도장공이요.”
오인수는 활달하고 말이 많았다. 묻지 않은 말도 물을 쏟듯 해댔다. 그의 운전 또한 제멋대로 거칠었다. 달리던 군용트럭이 유동삼거리에서 갑자기 멈추어 박병규는 유리창에 머리를 찧을 뻔했다. 유동삼거리 세차장 앞 도로에 자동차 몇 대가 불타고 있었다. 군용트럭은 불타는 자동차를 겨우 피해서 다시 달렸다.
“오형, 운전면허증은 있소?”
“하하, 대학생 형씨. 운전면허증이 있으믄 내가 페인트칠을 허고 살겄소? 쌍7년도에 광주자동차학원을 며칠 댕긴 경험이 전부요. 쪼깐 전에 아가씨 한 명이 죽은 오빠를 찾는다고 시내로 나왔다가 버스가 댕기지 않응께 나보고 서방까지 태워달라기에 운전대를 잡았소. 어린 애기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측은해서 부근에 버려진 군용트럭을 탄 거요. 서방까지 갔다가 시민들을 모아 도청으로 가고 있는 중이요.”
그제야 오인수와 박병규 사이에 낀 시민이 물었다.
“나도 운전헐 줄 아는디 트럭 키는 으디서 찾았소?”
“아저씨는 운전헐 줄 안다믄서 자동키도 모르요? 열쇠 ?이도 시동을 걸 수 있지라.”
“운전은 지대로 배왔그만잉.”
“지가 손재주는 쪼깐 있지라. 집에서 나올 때 본께 화정동사거리 부근에서 군용 지프차가 불타고 있습디다. 거그도 버스가 댕기지 않응께 사람들을 태우러 갑시다.”
군용트럭 뒤에 탄 시민들은 불타는 자동차 중에서도 군용차를 볼 때마다 흥분이 되는지 함성을 질렀다. 오인수는 기묘한 쾌감을 느꼈다.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졌다.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자신이 나서서 하고 있다는 그런 자부심이었다. 오인수 옆에서 몸을 뒤로 젖히고 있던 시민이 또 물었다.
“페인트칠허는 사람은 아닌 거 같은디?”
“아저씨는 고로코름 보인갑소잉.”
“내가 좋아허는 권투선수 같그만.”
“하하. 안 해본 거 ?는 사람이지라. 벨벨 일을 다 해봤당께라.”
오인수는 집안 살림이 어려워서 국민학교를 겨우 졸업한 뒤 객지로 돌았기 때문에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였다. 형제가 모두 마찬가지였다. 각자 살 길을 찾아 집을 떠났던 것이다. 오인수는 열다섯 살 때부터 서울, 광주, 제주 등지를 떠돌았는데 주로 건축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했고 제주도에서는 관광선을 여섯 달이나 탔다. 다시 고향 광주로 돌아온 뒤로는 외삼촌 페인트 가게에서 눈썰미가 좋아 페인트칠하는 도장공이 되어 현재는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박병규가 물었다.
“나는 농성동 사는디 집이 으디요?”
“쌍촌동 달방에서 월세 3만원씩에 살고 있지라. 엄니를 모시고 조카 한 놈을 델꼬서 구차허게 살고 있지라.”
“엄니를 모시고 산다믄 구차헌 것이 아니지요.”
군용트럭은 도청이 보이는 가톨릭센터 앞에서 멈추었다. 시위인파 때문에 더 이상 진입이 불가능했다. 공수부대와 시위시민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박병규는 트럭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오인수는 군용트럭에서 사람들이 다 내리자, 개인기를 부리듯 거칠게 군용트럭을 돌렸다. 그때 화장을 짙게 한 여자들이 달려와 오인수에게 빵과 우유를 주었다.
“여그서 뭐허는 여자덜이요?”
“아저씨들 고생하니까 우리도 나섰지라.”
“이 차 타겄소?”
“아니요. 아저씨나 밤에 잘 디가 ?으믄 우리 가게로 오씨요.”
아가씨가 오인수에게 홍보명함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오인수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이 차가 내 방인디 으디로 가겄소?”
박병규는 도청 앞으로 가기 위해 오인수와 헤어졌다. 시위청년 학생들이 공수부대원들과 간간히 투석전을 벌이는데 격렬하지는 않았다. 도청 앞까지 인도를 따라 걸어 갈만했다. 학생보다는 시민들이 눈에 띄게 많은 것이 서울과 달랐다. 서울에서는 대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나와 서울역 같은 데서 여러 대학 합동으로 시위했지만 시민들의 가담은 적었던 것이다.
오인수는 전남대 쪽으로 갔다가 시민들을 몇 명 태웠다. 군용트럭에 탄 시민 중에는 태극기를 가지고 나와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광주역으로 가는 도로가에서 한 고등학생이 손을 들었다. 오인수는 ‘이놈아 니는 공부헐 때여.’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망설였다.
“고등학생이제?”
“예, 사레지오고 3학년 최치수그만요.”
“으디로 갈라고 손을 들었냐?”
“얼능 태워주씨요. 지 할 일도 있응께라.”
“그래? 뒤짝에 타부러.”
고교생 최치수는 왠지 어른스러웠다. 목소리는 크고 우렁우렁했다. 잠시 후 오인수는 고교생 최치수가 차에 타기를 잘했다고 무릎을 쳤다. 최치수는 군용트럭이 멈추기만 하면 웅변하듯 소리쳐 시민들을 불러 모았다.
‘공수부대가 우리 부모 형제들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전두환이 정권을 잡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시대에 역행하는 전두환이를 쳐부숩시다. 시민 여러분, 모두 금남로로 나가 광주시민의 힘을 보여줍시다.’
최치수가 한 마디 하면 한꺼번에 서너 명씩 시민들이 몰려왔다. 오인수는 용변이 마려워 주유소에서 군용트럭을 세웠다. 군용트럭에 탄 시민들도 주유소 화장실에서 용변을 봤다. 그때 오인수가 바지춤을 끌어올리며 최치수에게 말했다.
“아따, 니는 말도 잘헌다잉. 으디서 배운 실력이냐?”
“고1때 웅변을 좀 했지라. 제3땅굴발견 때 반공궐기대회에 나가 웅변도 하고 혈서도 쓰고 그랬어라.”
“워미, 니가 나보다 몇 배 몇 천배 똑똑허다야.” “아이고, 형님. 무슨 말씀인게라. 형님들이 광주를 지키기 위해 고생하시니까 저희들도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야지라.”
“우리같이 노가다판서 밥묵고 사는 놈덜이 싸울틴께 니는 집에 가서 공부나 허제 그러냐.”
“아니지라. 오늘 트럭을 탔응께 목이 터지라고 외쳐불랍니다.”
“고맙긴 헌디 집이 으디여? 태워다 줄게.”
“형님, 풍향동 자취방으로는 못 가라우. 형사들이 날 잡을라고 있을지 모른께라. 사실은 담임선생님이 피신해 있으라고 해서 어저께부텀 요렇게 돌아댕기고 있그만이라.”
“잘 디가 ?으믄 이 차에서 자도 돼.”
“잠 잘 곳은 있지요. 그랜드호텔 뒤쪽에 친구 아버님이 경영하는 여관이 있그만요.”
오인수는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난 뒤 다시 군용트럭에 올라탔다. 최치수도 뒤따라 승차해 시민들을 많이 탈 수 있도록 앞쪽으로 안내하고 자신은 또 다시 소리치기 시작했다.
박병규는 목이 말랐다. 시위인파에 섞이어 갑자기 구호를 외쳤더니 목이 잠기고 최루탄 가스에 눈물이 찔끔찔끔 났다. 지난 겨울방학 때 한 번 들렀던 충장로 ‘하나음악실’을 찾아갔다. DJ가 자신이 신청했던 곡을 두 번이나 틀어주어 인상이 깊었던 음악실이었다. 낮에는 송정리비행장에서 방위병으로 복무하고 밤에는 하나음악실로 나와서 근무하는 DJ였다. 박병규가 신청한 곡은 ‘나 어떡해’,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곡이었다.
그런데 박병규는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하나음악실은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셔터에는 ‘19일부터 무기한 휴업’이라는 종이쪽지가 붙어 있었다. 아마도 혼란한 시내상황 때문에 휴업중인 듯했다. 할 수 없이 박병규는 삼양백화점에 있는 삼양다방으로 갔다. 삼양다방 입구를 들어서려는데, 다섯 명의 청년들이 계단을 뛰다시피 올라갔다. 네 명은 3층 당구장으로 뛰었고 한 명은 힘에 겨운지 2층 삼양다방으로 들어갔다. 그 청년은 뒷머리가 찢어져 피를 흘렸다. 삼양다방으로 들어간 청년은 청운학원 재수생 최동기였다. 박병규도 얼른 삼양다방으로 들어가 빈자리에 앉았다. 다방에는 마담과 아가씨 세 명이 있었다. 최동기는 단골인 듯 빈 자리에 앉지 않고 주방 쪽으로 갔다. 마침 소파 앞에 40대의 마담이 서 있다가 최동기가 뭐라고 하자 치마를 들어올렸다. 최동기는 망설이지 않고 마담의 흰 한복치마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공수부대원이 들어와 수색했다.
“머리 깨진 놈 이리 들어오지 않았십니꺼?”
“그런 사람 못 봤그만이라.”
최동기는 마담의 치마 속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줄만 알고 있을 할머니가 떠올랐다. 지금 공수부대원에게 잡혀간다면 할머니에게 가장 미안할 것 같았다. 시골 화순에 계시면 편하실 텐데 손자를 위해 광주로 올라와 밥하고 빨래를 해주시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할머니는 그가 문중종손이라고 하여 유달리 애지중지 아끼셨던 것이다.
“다방에 우리 밖에 없는디 그라요.”
“고생 많은디 커피나 한 잔 하고 가씨요.”
아침부터 커피 한 잔을 놓고 죽치고 있던 건달 몇 명이 너스레를 떨자 공수부대원은 그냥 돌아갔다. 공수부대원이 나가자 마담이 치마를 들어올렸다. 다행히 흰 치마에 피가 묻어 있지는 않았다. 최동기가 지혈을 시키느라고 찢어진 뒷머리 부분을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어서였다. 마담이 말했다.
“동기 학생, 오늘이 생일인 줄 알어.”
“누님, 고맙그만요.”
마담의 연둣빛 저고리에 꽂은 무궁화 조화가 유난히 크게 보였다. 아가씨들이 몰려와 “언니가 숨겨주지 않았으면 잡혀갔지라.”라고 한마디씩 했다. 최동기가 삼양다방을 나간 뒤 박병규는 이를 악물었다. 공수부대원에게 쫓기는 청년들을 직접 보자 분노가 치밀었다. 폭도는 시위청년 학생들이 아니라 만행을 서슴지 않는 공수부대원이었던 것이다. 목이 말랐던 박병규는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