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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 ‘새로운 물결’을 위하여
2019년 12월 04일(수) 04:50
[송기동 문화2부장·편집부국장]
남편: “대체 당신은 매일 어딜 나가는 거요. 체면도 좀 생각해야지 않소?”

애순: “그럼 날 방안에다 꼭 가두어 두시구려. 나는 조롱에 든 새는 아니니깐요.”

영화 ‘82년생 김지영’ 에 나오는 대사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83년 전,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개봉된 영화 ‘미몽’(迷夢)(감독 양주남)에서 부부간에 오가는 대사다. ‘미몽’은 현재 영상 자료로 남아 있는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발성영화이다. 지난 2004년에 중국 전영(電影)자료관에서 극적으로 발굴됐다.



‘작가정신’과 ‘다양성’으로



지난달 29일 국립 아시아문화전당(ACC) 극장3에서 영화 ‘미몽’이 상영됐다.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마련된 ‘한국 나쁜 영화 100년’ 특별 기획전을 통해서다. 화면은 디지털 복원을 했지만 워낙 오래돼 흐릿하고, 음성은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한국영화가 첫걸음을 뗀지 17년이 지난 즈음에 만들어진 초창기 작품이라 새로웠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피아골’과 ‘바람 불어 좋은 날’ ‘서울예수’ ‘상계동 올림픽’ 등 36편의 영화가 ACC와 광주극장 및 광주독립영화관에서 각각 상영됐다.

기획전 타이틀로 내건 ‘나쁜 영화’는 중의적이다. 영화를 수용하는 대중들에게 ‘나쁜’ 영화가 아니라 권력자들의 눈에 ‘나쁜’ 영화였다. 영화 ‘피아골’(감독 이강천)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5년에 만들어진 영화다. 전남일보(광주일보 전신) 1955년 10월 4일자에는 ‘영봉(靈峰) 지리산에서 결사적 촬영 감행! 애원(哀怨)의 골작 피아골에서 피와 사랑의 비극’이라는 문구를 앞세운 광고가 게재됐다. 영화는 전북도경과 내무부 치안국의 후원을 받아 완성됐지만 ‘빨치산을 인간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상영 불가 위기에 놓였다. 결국 제작자는 문제된 장면을 삭제하고, 마지막 장면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추가해 상영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지난 2007년에 ‘피아골’ 영화 오리지널 필름은 등록문화재 346호로 지정됐다.

한국영화 100년사는 ‘검열’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발자취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의 가위질에, 해방 이후에는 군사독재정권의 가위질을 피해야 했다. 광주극장에는 검열 경찰관을 위한 특별 좌석인 임검석(臨檢席)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시대의 목소리를 담은 의미 있는 작품들이 탄생한 것은 오로지 작가정신에서 비롯됐다. 유신체제 막바지인 1979년, 38살의 나이로 요절한 하길종 감독은 ‘이 땅에서 과연 어떻게 영화를 할 수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내가 생각하는 영화(그것은 훗날 언젠가 밝혀지겠지만)를 만드는 것이 정책적으로 허용이 안 되며 내가 배워 온 영화 기술을 이식하기에는 이곳의 시설은 너무나 전근대적 설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하길종 평론집 ‘사회적 영상과 반사회적 영상’ 중)

군사독재 정권의 탄압과 검열 속에서 ‘걸작’이 만들어진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장호 감독의 ‘바보선언’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시나리오 사전 검열을 받던 당시에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타이틀을 사용할 수 없었고, 정권에서 기피하는 원작자 이름을 밝힐 수 없었다. 감독은 ‘영화판을 떠나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기존 영화 문법을 벗어난 영화를 만들었다.

이장호 감독은 나중에 인터뷰를 통해 “그거 사실 내가 만든 영화가 아니다. 나는 영화를 포기하고 자살하는 심정으로 만들었는데 이 영화를 만든 에너지는 전두환 정권하고 영화 정책에서 나왔다. 그것이 이 영화를 만드는 힘이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장호 감독의 마스터클래스’ 중)

지난 6월 이장호 감독은 월간 ‘예향’과의 인터뷰에서 “과거가 ‘검열’과의 싸움이었다면 현재는 ‘자본’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자본’의 낙점을 받지 못한 영화들은 제작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상영관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이 감독은 ‘독립영화’에서 한국영화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작가정신’과 ‘영화의 다양성’이다.



시대에 저항한 ‘나쁜 영화’



한국영화 100년의 선물인 듯, 지난 5월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앞으로 한국영화가 ‘작가정신’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영화 문법으로 창작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젊은 독립영화 감독들이 한국영화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으면 더욱 좋겠다. 새로운 한국영화 100년 역사가 이제 다시 첫걸음을 내딛는다.

이에 앞서 추억의 한국 고전영화를 보고 싶다면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를 찾으면 된다.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데 193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350여 편에 대해 VOD 서비스가 제공된다. 이 가운데 100편은 이달부터 고화질 HD로 감상할 수 있다.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