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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과 가짜 뉴스
2019년 12월 03일(화) 04:50
[김태희 실학박물관 관장]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호치민이 머리맡에 두고 읽었다? 호치민은 베트남의 민족 해방과 통일을 이끈 지도자다. 동서를 넘어 인정받는 위인이다. 그런 호치민이 ‘목민심서’를 읽었다고? 여기에다 호치민이 다산을 존경한 나머지 다산의 기일을 알아내어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까지 더해지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목민심서’의 권위를 올리는 데 좋은 소재들이다. 그런데 과연 사실일까? 확인된 게 없다.

‘목민심서’는 어떤 책인가. 다산의 ‘경세유표’가 국가 제도 개혁을 주장한 저서인데 비해, ‘목민심서’는 현행 제도를 전제로 한 저서이다. 제도 ‘개혁’은 기약할 수 없다. 당장에는 제도 ‘운용’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현행 제도 아래에서라도 일선의 행정 책임자가 제대로 행정을 편다면, 백성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다산이 밝힌 ‘목민심서’ 저술의 취지이다. ‘경세유표’가 개혁적이라면, ‘목민심서’는 보수적이다.

‘목민심서’의 어떤 구절은 다산의 보수성 내지 전근대성을 드러내는 사례로 인용되기도 한다. ‘예전’편 변등(辨等) 조항에 있는 내용이다. 여기서 다산은 영조의 노비법 개혁의 역기능을 말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는 노비가 있어 의병의 군사력을 보탤 수 있었는데, 홍경래란 때는 노비가 없어 자율적 방어력을 갖추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다산이 ‘경세유표’에서는 영조의 노비법 개혁을 칭송한 바 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쓴 ‘목민심서’에서는 다른 견해를 보인 것이다.

호치민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베트남을 구할 새로운 혁명 사상을 좇았던 사람이다. ‘목민심서’는 베트남의 새로운 길을 찾기에 적합한 책이 아니다. 호치민이 한시를 읊고, 근면·절약·청렴·정직 등을 강조하고, 언설에 유교적 가치를 활용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목민심서’는 혁명가 호치민이 좋아할 그런 책이 아니다. 필자의 결론은 ‘목민심서’와 호치민 이야기는 외부의 권위에 편승하려는 그럴듯한 가짜 정보였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야기. 지난 2012년에 다산 정약용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있었다. 기념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소식이 있었다. 유네스코에서 정약용을 장 자크 루소, 헤르만 헤세, 클로드 드뷔시와 함께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했다는 것이었다. 다산이 2012년 세계 기념 인물 ‘4강’ 안에 든 것인가?

유네스코의 관련 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긴 제목(‘Celebration of anniversaries in 2012’) 아래, 세계 여러 나라가 국가별로 기념할 만한 문화적 사건이나 인물을 한두 가지씩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거명된 인물이 얼추 30명이 넘었다. 그 가운데 익숙한 사람이 루소, 헤세, 드뷔시 정도였다. 서른 명이 넘는 인물들 가운데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은 고작 유럽 사람과 우리나라 정약용 밖에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민망하기도 했다. 아무튼 다산이 ‘4강’에 든 것 같은 일은 아니었다.

관련 신문 기사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네 명이 선정되었으며 동양 인물로는 다산이 유일하다는 기사가 있었다. 명백히 잘못된 정보다. 다른 동양 인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네 명을 열거만 한 기사가 많았다. 거짓말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네 명만 선정된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다분했다. 그 오독을 누구 탓으로 봐야 할까?

우리는 외부에서 인정해 주는 것에 연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내부에서만 인정하는 것보다 평가의 면에서 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평가자의 제3자성이 평가의 객관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외부적 평가에 연연하는 것이 내부적 평가를 신뢰하지 못한 현실의 결과라면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스스로 자존감을 갖지 못하고 모든 권위를 외부에서만 찾으려는 행태가 반영된 것이라면 심각하게 반성할 만한 일이다.

가짜 뉴스의 양상은 그 사회의 건강성을 보여 준다. 가짜 뉴스의 생산자도 문제지만, 유포하는 사람이 더 문제일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사람들이 문제일 수 있다. 자기 입맛에 맞는 뉴스면 잘 따져 보지도 않고 쉽게 수용하는 태도가 가짜 뉴스의 온상이다. 앞서가려는 마음을 붙잡고 사실 관계를 잘 따져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