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5월 17일 ‘야만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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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5월 17일 ‘야만의 밤’
2019년 11월 07일(목) 04:50
<삽화:이정기>
서명원은 마루에 앉아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서쪽 밤하늘은 장막을 드리운 듯 캄캄했다. 두 사람과 저녁식사를 마친 뒤 귀가할 때만 해도 떠 있던 초나흘 초승달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실반지 같은 초승달이 검푸른 밤하늘에 홀연히 실종돼버린 듯했다. 음흉한 어둠의 손이 훔쳐 가버린 것 같았다. 저녁식사를 함께 했던 두 사람과 나눴던 시국이야기가 서명원의 가슴을 답답하게 눌렀다. 서명원은 담배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가는 울화를 토해내듯 길게 뱉어냈다. 두 사람은 유신독재를 반대해 고초를 겪었던, 복학을 앞둔 농대 축산과 윤한봉과 녹두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국문과 출신 김상윤이었다. 그들은 신군부를 이끄는 전두환이 언제 어느 때 허수아비로 내세운 최규하 대통령을 밀어내고 얼굴을 내밀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유신잔당의 신군부와 또 맞서 싸울 것을 생각하니 암담하다고 두 사람 모두 격정을 토했다. 두 사람은 서명원에게 형님 대하듯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토요일에는 정식 강의가 없었지만 교련이나 체육 등은 수업을 했고, 결강했던 교수들이 보강하기도 해서 서명원은 오후 늦게까지 학교에 있다가 저녁식사를 약속한 대인동의 한 식당으로 나갔던 것이다.

어젯밤 횃불집회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무탈하게 끝났는데, 만약에 신군부의 음모가 드러난다면 학생들은 결코 좌시하지 않을 터였다. 윤한봉과 김상윤의 주장이 아니라도 서명원 자신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만약에 신군부가 학생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더 나아가 학생들을 억누른다면 재앙은 불을 보듯 뻔했다. 서명원은 방으로 들어가 자라는 아내의 말을 귓등으로 흘렸다.

“여보, 오늘 학생들이 사고라도 쳤소?”

“강의 ?는 토요일인디 사고는 무슨 사고.”

“저녁은 밖에서 묵지 말고 집에서 허랑께. 속도 안 존심로 말이요.”

“내 방에 있응께 위장약 좀 가져오소잉.”

서명원은 최근 들어 신경성 위장병에 또 시달렸다. 군 보안대나 경찰서 등에서 학생회 간부나 시위학생들의 신상정보를 달라고 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거절하곤 했는데, 그런 상황이 지속되자 신경이 곤두서고 젊은 시절에 아팠던 위장병이 슬슬 도졌다. 서명원은 사찰기관원들에게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코가 센 교직원이라며 눈 밖에 나 있던 중이었다. 아내가 위장약을 가져왔다. 그러나 서명원은 담배를 또 한 대 더 피워 물었다. 이번에는 아내가 하소연을 했다.

“몸에 해롭다는디 뭔 담배만 뻐끔뻐끔 피우요. 남들 같이 딱 끊어부씨요. 사십부텀 몸 관리도 잘해야 헌답디다.”

“잔소리 좀 그만 하소. 시국이 조용해지믄 끊지 말라고 해도 끊어불랑께.”

“시국이 은제 조용헐 때가 있었소? 박정희 죽고 나서 시방까정 맨날 요로크롬 씨끄러웠지라.”

“몬자 자소. 나는 여그서 더 있다가 들어갈랑께.”

“얼능 약 드씨요.”

서명원은 약봉지를 찢어 가루약을 입안에 털어 넣고 사발에 든 물을 반쯤 들이켰다. 쓴 약가루가 입안에 남은 것 같아 사발 물을 마저 마신 뒤 입안을 헹궜다. 담배를 또 피우려다가 아내가 마루로 나와 그만 두었다. 아내가 말했다.

“으째야쓰까라우.”

“뭔 소리여?”

“테레비에 속보가 나오는디 제주도까정 계엄령을 내린다고 허요. 휴교령을 내리고라.”

“휴교령을 내리더라도 나는 학교에 계속 나가야 헐 틴디 뭘.”

“낼 아침에 일찍 출근할라믄 얼능 자란 말이요.”

이번에는 아내가 서명원의 손을 끌었다. 서명원은 마지못해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아내는 한참 후 코를 골았다. 서명원은 사각베개를 뉘였다 세웠다 하면서 두어 시간 뒤척거렸다. 밤은 무서리 내린 날의 구렁이처럼 유난히 더디게 갔다. 학교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고, 휴교령을 내린다고 하니 내일 학생들의 반응이 걱정되기도 했다.



실제로 전남대 안에서는 특전사 제7여단 33대대가 들어와 대대장 권승만 중령의 지시로 학생들을 붙잡기 위해 수색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학생들을 체포하기 위해 이삼십 명씩의 공수부대 계엄군들이 각단과대건물과 도서관 안팎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공수부대원들은 대항할 힘도 없고, 무장도 하지 않은 학생들을 적군 색출하듯 착검한 총을 들고 조를 짜서 빈틈없이 뒤졌다. 학교는 공수부대원들이 받아왔던 적진 침투훈련의 실전지가 돼버렸다.

후문 담을 넘어가려다가 실패한 이승룡 일행은 공사 중인 공대 건물 5호관으로 피신했다가 공수부대원에게 붙잡혔다. 총학생회 사회부장 오진수, 공대 학생회 총무부장 권창수, 박관현 후배 등이었는데, 권창수가 공사 중인 공대건물 5호관으로 숨자고 해서 왔던 것이다.

“이 새끼들 여기서 뭐해?”

“늦어서 자려고 들어왔습니다.”

“학교가 여관이야? 니들 낮에 데모하다가 이리 왔지? 말해 새끼들아!”

이승룡 일행은 번개처럼 달려드는 공수부대원의 군홧발에 채였다.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그러자 다른 공수부대원이 짓이기듯 질근질근 밟았다.

“학교가 니 집 안방이야?”

“후문에서 버스를 놓쳐서 왔습니다.”

“사실대로 말해도 살려줄 둥 말 둥이야. 이 새끼야!”

공수부대원이 학생들의 옆구리를 걷어차곤 했다. 말끝마다 ‘새끼야!’를 붙이며 협박했다.

“우리가 여기 왜 온 줄 알아? 간첩 지령 받고 데모하는 니들 잡으러 왔어, 새끼야. 니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묻어버리면 그만이야.”

이승룡은 민첩하게 움직이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서울에서 저녁 7시경에 학생회 사무실로 전화가 왔는데, 다급한 여학생의 목소리였다. 지금 서울에서는 학생회 간부들을 검거하고 있으니 빨리 피하라는 전화였다. 그러나 저녁식사를 느긋하게 한 뒤 박관현 등 몇몇 학생회 간부들에게 일일이 서울에서 알려온 전화 소식을 알려주느라고 시간이 어느 새 자정 밑까지 흘러가버렸던 것이다. 이승룡은 상대건물 뒤쪽으로 도망친 총무부장 양강섭과 섭외부장 이청조 등은 어떻게 됐는지 속이 탔다.

“이 자식들, 공수 손맛을 봐야 정신 차릴 거야? 일어나!”

겁에 질린 데다 기가 죽어버린 이승룡 일행은 군홧발로 허리와 정강이 등을 짓밟혔는데도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공수부대원 한 명이 포승줄로 이승룡 일행을 능숙하게 묶었다. 이제 손을 쓰지 못하므로 도망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너부터 이리 와.”

“예.”

“공수 손맛이 어떤지 보여주마.”

계엄군이 공수부대라는 것을 알고 이승룡 일행은 더욱 떨었다. 공수부대원이 손에 가죽장갑을 끼었다.

“어금니 꽉 물어!”

“니부터 이리 와, 새끼야!”

한 사람씩 앞으로 부르더니 무자비하게 구타하기 시작했다. 이승룡 일행 모두 안경을 썼는데 앞에 선 학생부터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공수부대원은 안경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두세 번 가격에 안경이 깨치면서 피가 흘러 얼굴을 붉게 적셨다. 마구 휘두르는 주먹이 아니라 정확하게 안경 쪽만 가격했다. 학생이 나뒹굴자 숨통을 끊듯 군홧발로 목덜미를 짓이겼다. 두 번째 학생은 단 한 번의 가격에 안경테가 부러지면서 유리알이 달아났다. 코뼈가 주저앉고 코피를 시멘트 바닥에 뿌렸다.

“빨갱이 새끼들아, 니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니들이 아니라면 이북 가서 괴뢰군 잡는 우리가 왜 충정훈련을 받겠냔 말이야.”

“아이고메!”

“엄살떨지 마, 자식아. 우리 공수는 광주에 빨갱이 청소하러 왔어.”

마지막으로 이승룡을 불러 세웠다. 그에게도 안경을 겨냥해 주먹을 휘둘렀다. 인정사정없이 잔인했다. 공수부대원들은 학생이 실명을 하건 말건 관심이 없었다. 이승룡은 공포가 엄습해 반항할 생각조차 못한 채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도 가죽장갑이 안경을 향해 날아오자 본능적으로 얼굴을 돌렸다. 공수부대원이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얼굴을 다시 돌려놓고 안경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순간 안경이 깨지면서 양미간의 살이 깊게 찢어졌다.

이승룡 일행이 구타를 당한 지 40분여쯤 지난 뒤였다. 본부로 끌려가서 보니 이미 머리가 깨지고 얼굴이 퉁퉁 부은 학생 30여 명이 붙잡혀와 있었다. 그중에는 시위와 상관없는 학생들이 많았다. 시험공부 중인 학생도 있고 건축작품을 준비하던 학생도 있었다.



서명원은 어렵사리 잠이 들려다가 전화벨 소리에 눈을 뜨고 말았다. 아내가 한두 마디 통화하더니 전화기를 손으로 막은 채 서명원에게 말했다.

“계엄사라고 허요. 바꽈줄게라?”

“이리 주소.”

전화기 속의 사람이 대뜸 물었다.

“전대 학생과장이요?”

“예.”

“잠깐 나와 보쇼. 집 앞에 차가 있소.”

서명원은 몸이 무거웠지만 옷을 주섬주섬 걸쳤다. 아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뭔 일이다요?”

“계엄사에서 잠깐 보자고 하니 나가봐야 알겄그만.”

서명원은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휴교령이 내린다더니 마침내 올 것이 왔다고 체념했다. 집 밖에는 검은 지프차가 헤드라이트 불을 끈 채 대기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서명원을 태우자 시동을 걸어놓은 지프차는 바로 움직였다. 지프차가 멈춘 곳은 집에서 가까운 풍향동파출소였다. 파출소에 들어서자마자 앉아 있던 사복 입은 한 사람이 말했다. 보안대 요원이거나 형사인 듯했다.

“오늘 윤한봉이 하고 저녁 먹은 사실이 있지요? 사실대로 말해야 바로 집으로 갈 수 있소. 윤한봉이를 어디다 숨겼소?”

“대인동 식당에서 저녁 묵고 9시쯤 헤어졌그만요.”

“윤한봉이는 어디로 갔지요?”

“헤어진 뒤 풍향동 집으로 바로 와서 한봉이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겄소.”

그러자 사복 입은 한 사람이 어디다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그런 뒤 다시 윤한봉을 어디 숨겼느냐고 다그쳤다.

“사실대로 얘기하시오! 김상윤이는 지금 우리한테 있으니까.”

서명원은 순간 김상윤이 붙잡혀 간 것을 눈치 채고는 윤한봉의 행선지를 사실대로 말했다.

“윤한봉은 YWCA 강당에서 열리는 박현채 선생 강연회에 갔고, 김상윤은 녹두서점으로 간다고 했어요.”

심문하듯 캐묻던 사람이 서로 헤어진 시간과 행선지가 그들의 첩보와 일치하자 질문을 바꾸었다. 봉투 속에서 사진들을 꺼내더니 물었다.

“데모하는 이 학생들 다 전남대생이오? 이름을 말해주시오.”

“나는 시위현장에 직접 나가지 않아요. 시위전개상황은 직원들을 통해 들으니까요.”

“그래서 모른다는 말이오?”

“사진에 나온 학생들을 모른데 어치게 이름을 알겄소.”

서명원은 실제로 사진 속의 학생들이 낯설었다. 어쩌면 조선대생일 수도 있고, 광주에 있는 다른 대학생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 사진 속의 학생들의 이름을 알 리 만무했다. 서명원을 상대하던 사복 입은 사람이 신경질을 부리듯 볼펜을 봉투에 던지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돌아가시오.”

“밤중에 자는 사람 깨워 오라 가라 했으니 미안하지도 않소?”

“우리는 상부 지시대로 움직이는 사람이오. 이 분 차로 데려다드려.”

“아니오. 집이 가차운께 걸어가겄소.”

파출소를 나온 서명원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눈앞에 불 꺼진 광주상고 건물들이 왠지 슬프게 보였다. 급기야는 어린 고등학생들까지 거리로 나설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서명원은 명노근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학생과장으로서 심각해진 상황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교수님, 학생과장입니다.”

“한밤중에 웬일이요?”

“학생들을 검거하고 있는 거 같그만요.”

“학생은 물론 민주인사들을 예비검속하고 있어요. 방금 송기숙 교수님 전화를 받았어요.”

“조심하십시오.”

“설마 들어갔다가 나온 나까지 또 잡아가겄습니까?”

송기숙, 명노근 교수의 신분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서명원은 그나마 안도했다. 그러나 김상윤이 연행돼 간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아렸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은 저만큼 달아나버렸다. 아내도 잠을 못자는지 돌아누우면서 말했다.

“안 자요?”

“광주에 난리가 나분 것 같네.”

서명원은 아내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한 뒤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눈가에 물기 같은 것이 흘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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