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박진현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광주 관광, 결국은 콘텐츠다
2019년 07월 24일(수) 04:50
‘비 오는 날보다 미술관….’ 독일 베를린 관광청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바로 눈에 띄는 ‘낚시성’ 문구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베를린에는 ‘일년에 비가 내리는 날보다 더 많은 170개의 미술관이 있다’(There are some 170 museums in Berlin, that more museums than rainy days in a year)라는 뜻이다. 그러니 평소 미술관 나들이를 즐기는 이들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미술관의 천국, 베를린’으로 오라는 의미일 터.

정말 그럴까? 베를린 취재를 떠나기 전 내 머릿속에서 맴돌던 궁금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런던의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처럼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이들 미술관과는 달리 베를린 하면 금방 떠오르는 ‘간판 미술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달 말 취재차 둘러본 베를린 슈프레 강가의 ‘박물관 섬’(Museuminsel: Museum Island)은 이런 나의 과문함에 부끄러움을 안겨 주었다. 지난해 방문객 1530만 명을 유치해 유럽의 관광대국 스페인과 프랑스를 바짝 쫓고 있는 독일의 저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구 국립박물관, 신 박물관, 구 내셔널 갤러리, 보데 박물관, 페르가몬 박물관 등 다섯 개 박물관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박물관 섬’은 고대 유적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6000년 인류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세계유산의 보고였다.

첫 번째로 둘러본 미술관은 구 국립박물관이었다. 고대 그리스·로마와 중동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페르가몬 박물관과 고대 이집트의 왕비 ‘네페르티티’(Nofretete)의 흉상을 소장한 신 박물관을 제치고, 특별전이 열리고 있던 이곳을 가장 먼저 찾은 건 독일 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알고 싶어서였다.

바우하우스 개교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은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1919년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립한 바우하우스는 회화, 조각, 건축, 제품 디자인, 사진, 영화에 이르기까지 현대 예술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독특한 조형 양식이다. 이에 따라 베를린, 슈투트가르트, 뮌헨 등 주요 도시의 관광청과 미술관들은 바우하우스 100주년 특별 기획전과 관광 이벤트들을 내걸고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그중에서도 오는 11월 9일로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을 맞는 베를린의 행보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30주년’을 정치적 행사로 국한시키지 않고 바우하우스 100주년과 묶어 상상력과 기획력을 접목한 공식 기념행사와 메가 페스티벌, 100여 개의 문화 이벤트를 마련했다. 말하자면 베를린을 전 세계에 ‘띄우는’ 마케팅의 호재로 삼은 것이다.

비단 베를린뿐만이 아니다. 자동차의 메카로 불리는 슈투트가르트와 뮌헨은 ‘바우하우스 100주년과 자동차’를 모티브로 삼은 차별화된 문화 행사를 대거 선보이고 있다. 진원지는 다름 아닌 슈투트가르트의 벤츠 박물관과 뮌헨의 BMW 박물관이다. 인구 62만 명의 슈투트가르트는 벤츠와 포르세를 생산하는 공업도시이지만 근래 관광도시로 외연을 넓히는 중이다. 이들 자동차박물관 개관 이후 20년 만에 관광객들의 숙박일이 155만3727일에서 391만1781일로 두 배 이상 늘어나는 등 시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떠올랐다고 한다.

인구 140만 명의 뮌헨 역시 매년 300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가는 BMW 박물관과 BMW 벨트(Belt: 영어로 ‘월드’라는 의미)를 통해 글로벌 관광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시립미술관 격인 알테 피나코테크, 노이에 피나코테크 등의 문화 인프라와 연계한 차별화 전략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신형 모델을 홍보하는 비즈니스 개념의 자동차 박물관이 아니라 BMW의 기술과 디자인을 즐기는 체험관 그리고 콘서트홀과 레스토랑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한 덕분이다.

이들 도시의 관광 전략을 보며 관광 불모지인 광주를 생각한다. 특히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도시 마케팅의 기회로 활용하는 베를린, 자동차 박물관을 독창적인 문화 콘텐츠로 키운 슈튜트가르트와 뮌헨. 이들 도시는 5·18 민주항쟁과 50여 년 역사의 기아자동차 공장을 갖고 있는 광주와 유사점이 많다. 실제로 뮌헨 BMW 박물관을 방문한 지난 6월28일,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날아 온 첫 광주형일자리 자동차공장 설립투자 협약식 뉴스 때문인지, 광주에도 근사한 ‘자동차 박물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광주도 이들 선진 자동차 도시처럼 자동차 생산단지를 미디어아트와 문화로 특화시킨 박물관이나 체험관으로 만든다면 경쟁력 있는 관광자원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과 함께.

오는 2020년은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광주시와 관광·문화예술 기관들은 지금부터라도 전방위 협력 TF팀을 꾸려 ‘5월의 세계화’를 위한 대장정에 들어가야 한다. 베를린시와 관광청이 2~3년 전부터 치밀한 기획과 콜라보로 2019년을 ‘베를린 르네상스의 해’로 꽃피운 것처럼. 결국, 광주 관광의 미래는 콘텐츠다. 다른 곳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그런.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