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관광, 새판을 짜라
박진현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 |
지난달 초,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를 여행한 지인들은 잊지 못할 추억을 안고 돌아왔다고 했다.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에 자리한 ‘왈종미술관’에서 주인장인 이왈종(73) 화백과 뜻깊은 시간을 보낸 것이다. 1990년대 초부터 제주에 머물고 있는 이 화백은 제주의 자연과 생활 모습을 담은 ‘제주 생활의 중도’시리즈로 잘 알려진 한국 화단의 거장이다. 지난 2013년 작업실로 활용하던 주택을 철거한 후 조선 백자에서 모티브를 얻어 지은 왈종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작품’이다. 작가가 직접 가꾼 꽃과 나무로 꾸민 정원, 자연을 화폭에 재현한 화사한 색감의 작품들은 전국의 미술 애호가들을 사로잡는다.
이날 제주도에 들른 이들은 참으로 우연히 원로 화가를 만날 수 있었다 한다. 미술관 나들이에 나선 날, 마침 전시장에 있던 이 화백이 광주에서 온 방문객들을 3층 야외 공간으로 초대해, 자신이 제주에 둥지를 틀게 된 사연과 작품 이야기를 한 시간 가량 들려준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한 지인은 “전시장에 걸린 작품 하나하나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순간, 3년 전 부산 여행 중 ‘글 쓰는 사진작가’ 김홍희(60) 씨를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평소 김 씨와 친분이 있는 친구의 안내로 부산 송정해수욕장 근처의 작업실을 방문한 우리 일행은 ‘창작의 산실’을 엿본다는 생각에 내내 마음이 설?다. 창문으로 바다가 보이는 20여 평의 아담한 스튜디오에는 수십여 개의 카메라와 흑백사진, 대형 포스터, 수백여 권의 책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대형 스피커와 수많은 음반 및 CD였다. 사실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책 읽기나 음악 감상 또는 여행을 통해 작업의 영감을 얻는 아티스트다. 이날 그의 작업 공간을 들여다보지 못했더라면 두고두고 아쉬울 뻔했던 소중한 기회였다.
근래 미술관, 갤러리, 예술특구, 작가의 스튜디오, 생가 등을 관광 코스로 연계하는 ‘아트 투어리즘’(Art tourism·예술관광)이 글로벌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제주도의 ‘아트올레’, 부산의 ‘달맞이 갤러리투어’, 뉴욕 맨해튼의 ‘뮤지엄 마일 페스티벌’(Museum mile festival), 베이징의 ‘다싼즈 789 예술특구’ 투어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 가운데 ‘아트올레’는 제주 저지예술인마을과 20여 개의 미술관을 묶어 수십 만 명의 ‘충성도 높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뮤지엄 마일 페스티벌’ 역시 뉴욕의 예술적 매력을 한껏 드러내는 거리 축제다. 맨해튼 5번가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10여 개의 미술관과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도보 코스로 엮어 매년 100여 만 명이 다녀간다.
이들 도시가 아트 투어리즘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잠재력이 큰 고부가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색다른 볼거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예술을 콘셉트로 하는 관광 상품은 도시의 품격을 높여 줄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접하기 힘든 특별한 체험을 선사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광주도 아트 투어리즘의 메카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초대형 복합 문화 공간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필두로 비엔날레, 대인 예술시장,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운림동 ·중외공원 미술관 벨트, 레지던시 공간 등 예술적 자산들이 도시 곳곳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술관광을 지역의 미래로 키우려는 광주시의 비전과 의지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매년 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예술의거리 활성화 축제의 경우 예술의거리에 입주해 있는 작가 10여 명의 스튜디오와 인근의 비움박물관, 은암미술관 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전당 주변에서 펼쳐지는 프린지 페스티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일회성 이벤트 위주로 진행하다 보니 축제가 끝나고 나면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공간’과 콘텐츠가 많지 않다.
그뿐인가. 의재미술관, 우제길미술관, 무등현대미술관 등 10여 개의 문화 공간들이 밀집해 있는 광주 운림동 일대와 시립미술관과 비엔날레관이 있는 중외공원 미술관 벨트도 관광 코스로 연계하는 창의적인 콘텐츠가 미흡하다. 특히 2~3년 전부터 구도심 일대에 둥지를 틀기 시작한 지역 작가들의 스튜디오, 그리고 양림동의 ‘호랑가시나무 창작소’등 레지던시 공간들을 ‘상품화’하지 못하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여기에는 지난 2002년 이후 광주시가 모든 역량을 문화수도 조성에 쏟은 나머지 ‘문화관광’에는 다소 소홀했던 탓이 크다. 실제로 대인 예술시장, 예술의 거리, 아트광주, 광주폴리 등 매력적인 프로젝트가 속속 등장했지만 이를 시민들의 일상과 관광객들의 ‘로망’으로 이어 주는 데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모름지기 문화 도시가 성공하려면 다양한 예술적 자원을 관광 브랜드로 키우기 위한 중장기 로드맵은 물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명승지 위주의 구시대 낡은 패러다임으로는 감동과 체험을 찾는 미래 세대의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기 힘들다. 따라서 이제 아시아의 문화 플랫폼이자 비엔날레 개최지의 ‘이름’에 걸맞은 경쟁력 있는 관광 전략을 짜야 할 때다. 예술과 문화로 충만한 여정(旅程), 바로 아트 투어리즘이다.
/jhpark@kwangju.co.kr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대형 스피커와 수많은 음반 및 CD였다. 사실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책 읽기나 음악 감상 또는 여행을 통해 작업의 영감을 얻는 아티스트다. 이날 그의 작업 공간을 들여다보지 못했더라면 두고두고 아쉬울 뻔했던 소중한 기회였다.
근래 미술관, 갤러리, 예술특구, 작가의 스튜디오, 생가 등을 관광 코스로 연계하는 ‘아트 투어리즘’(Art tourism·예술관광)이 글로벌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제주도의 ‘아트올레’, 부산의 ‘달맞이 갤러리투어’, 뉴욕 맨해튼의 ‘뮤지엄 마일 페스티벌’(Museum mile festival), 베이징의 ‘다싼즈 789 예술특구’ 투어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 가운데 ‘아트올레’는 제주 저지예술인마을과 20여 개의 미술관을 묶어 수십 만 명의 ‘충성도 높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뮤지엄 마일 페스티벌’ 역시 뉴욕의 예술적 매력을 한껏 드러내는 거리 축제다. 맨해튼 5번가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10여 개의 미술관과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도보 코스로 엮어 매년 100여 만 명이 다녀간다.
이들 도시가 아트 투어리즘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잠재력이 큰 고부가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색다른 볼거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예술을 콘셉트로 하는 관광 상품은 도시의 품격을 높여 줄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접하기 힘든 특별한 체험을 선사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광주도 아트 투어리즘의 메카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초대형 복합 문화 공간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필두로 비엔날레, 대인 예술시장,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운림동 ·중외공원 미술관 벨트, 레지던시 공간 등 예술적 자산들이 도시 곳곳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술관광을 지역의 미래로 키우려는 광주시의 비전과 의지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매년 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예술의거리 활성화 축제의 경우 예술의거리에 입주해 있는 작가 10여 명의 스튜디오와 인근의 비움박물관, 은암미술관 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전당 주변에서 펼쳐지는 프린지 페스티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일회성 이벤트 위주로 진행하다 보니 축제가 끝나고 나면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공간’과 콘텐츠가 많지 않다.
그뿐인가. 의재미술관, 우제길미술관, 무등현대미술관 등 10여 개의 문화 공간들이 밀집해 있는 광주 운림동 일대와 시립미술관과 비엔날레관이 있는 중외공원 미술관 벨트도 관광 코스로 연계하는 창의적인 콘텐츠가 미흡하다. 특히 2~3년 전부터 구도심 일대에 둥지를 틀기 시작한 지역 작가들의 스튜디오, 그리고 양림동의 ‘호랑가시나무 창작소’등 레지던시 공간들을 ‘상품화’하지 못하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여기에는 지난 2002년 이후 광주시가 모든 역량을 문화수도 조성에 쏟은 나머지 ‘문화관광’에는 다소 소홀했던 탓이 크다. 실제로 대인 예술시장, 예술의 거리, 아트광주, 광주폴리 등 매력적인 프로젝트가 속속 등장했지만 이를 시민들의 일상과 관광객들의 ‘로망’으로 이어 주는 데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모름지기 문화 도시가 성공하려면 다양한 예술적 자원을 관광 브랜드로 키우기 위한 중장기 로드맵은 물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명승지 위주의 구시대 낡은 패러다임으로는 감동과 체험을 찾는 미래 세대의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기 힘들다. 따라서 이제 아시아의 문화 플랫폼이자 비엔날레 개최지의 ‘이름’에 걸맞은 경쟁력 있는 관광 전략을 짜야 할 때다. 예술과 문화로 충만한 여정(旅程), 바로 아트 투어리즘이다.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