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재의 세상만사] 누가 광주비엔날레에 찬물을 끼얹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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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누가 광주비엔날레에 찬물을 끼얹는가
2014년 08월 22일(금) 00:00
성(姓)이 홍(洪) 씨인 두 사람의 작가가 있다. 그 중 한 사람의 작품은 신선하다. 또 한 사람의 작품은 진부하다.

먼저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제프 홍(35) 씨. 인터넷을 통해 그의 작품을 봤다.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지 않은 디즈니’(Disney unhappily ever after)라는 제목의 시리즈다.

작품에는 누구나 어릴 적 즐겨 봤을 동화 속 주인공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동화 속에서처럼 행복한 모습이 아니다. 작품은 오히려 절망적인 장면의 묘사로 채워진다. ‘꿈이 이뤄지는 곳’(where dreams come true)이라는 디즈니의 모토가 무색하다.

인어공주는 해안가에 유출된 기름을 뒤집어쓴 채, 고통스러운 표정이다. 신데렐라는 누더기 드레스를 걸친 모습으로, 한밤중 지저분한 골목에 숨어 두려움에 떤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수상한 액체의 병을 들고 있는데, 헤로인에 중독됐음이 분명하다.

왜, 자칫 동심에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작가로부터 이유를 들어보니 그럴듯하다. “디즈니 주인공들이 그들과 전혀 상관없는 환경에 처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 작품을 만들게 됐단다.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주인공들의 가슴 아픈 모습을 통해, 피폐해진 우리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단다. 신선하지 않은가.

예술이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거나,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예술이란 ‘실제 현실이 아니라, 꾸며서 만들어낸 현실’이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예술이다.



허수아비를 닭으로 바꿔도



이제 홍 씨 성을 가진 또 다른 작가와 작품을 보자. 홍성담. 그리고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에 걸리지 못한 그의 걸개그림 ‘세월오월’. 작품엔 광주민주항쟁 시민군 등이 침몰한 세월호를 번쩍 들어올려 승객들을 모두 구해 내는 모습이 담겼다. 문제가 된 건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한 부분이다. 풍자라고는 하지만 너무 진부하지 않은가.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대통령 조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엔 박근혜 대선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출산하는 듯한 그림을 전시해 논란을 빚었다. 4대강 사업을 비판한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삽을 악기 삼아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그 그림엔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 등이 역시 허수아비의 모습으로 뒤편에 서 있다.

예술이 선전 문구나 포스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 없다. 물론 독재시대에는 예술이 사회참여 도구로서 훌륭한 역할을 한 적도 있긴 하다. 홍 씨는 광주항쟁 이후 그런 방식으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했다. 그런데도 그의 작품은 3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진부하다는 거다.

문제가 되자 작가는 허수아비로 표현된 박 대통령의 모습 위에 닭 그림을 오려 붙였다. 닭이 고통받는 민중을 상징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들을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이전에도 수많은 누리꾼들이 장난스럽게 사용했던, 그 익숙한 표현(‘닭근혜’)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홍 씨의 그림이 작품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낯선 것을 익숙하게 하기는커녕 익숙한 것을 익숙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예술은 사기’라 했던 백남준의 말에 비춰 봐도 그의 작품은 너무나 정직(?)하다.

미술평론가 임근준 씨 역시 ‘세월오월’에 대해 “예술적 직관력이나 풍자의 수준이 높은 작품이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일찍이 사퇴한 큐레이터 윤범모(가천대 교수) 씨도 “광주정신을 승화해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직설적인 것보다는 예술적으로 표현해 달라고 작가에게 주문했는데 주제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었다.”는 말을 남겼다.

결국 그의 그림 전시 유보를 놓고 말들이 많지만 모든 책임은 작가에게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창작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한편에서는 또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이즈마케팅을 의심한다는 얘기다. ‘소란을 일으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구태의연한 미술 운동’ 아니냐는 것이다.



예산 깎이면 책임질 자 있나



애초 작가의 성향으로 볼 때 논란의 소지가 있는 작품을 내놓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런데도 참여작가로 선정한 주최 측이 이번 사태를 자초한 것은 사실이다. 광주비엔날레의 올해 예산은 국비와 시비를 합해 모두 87억 원. 홍 씨 작품의 전시를 유보한 것은 다음 행사 때 정부 예산이 삭감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를 아예 도외시하고 작품을 내건다면 우선 당장은 박수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에서 표현의 자유를 부정할 사람은 독재자 빼고는 이 지구상에 그 누구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을 걸고 나서 나중에 예산 문제로 비엔날레가 위축되거나, 최근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는 부산비엔날레에 밀린다면! 비엔날레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현안의 예산마저 소리 없이 깎인다면! 그때도 과연 내가 모든 걸 책임지겠노라고 나설 사람이 있을까?

표현의 자유를 ‘광주정신’에 결부시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광주’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남들은 별로 알아주지도 않는 80년대의 ‘전투적 광주정신’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돌아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마침 충남 공주에서는 지금 허수아비 축제가 열리고 있다. 허수아비 풍자로 논란이 된 그의 그림은 아무리 생각해도 공주 축제에 보내는 것이 좋을 듯하다.(물론 그곳에서도 받아 줄지는 의문이지만)

다만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 이제 성년을 맞은 광주비엔날레가 과거의 모든 ‘터전을 불태우고’(BURNING DOWN THE HOUSE) 그야말로 새롭게 시작됐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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