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형과 초상화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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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형과 초상화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2026년 03월 12일(목) 00:20
미술 작품 중 초상화만큼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르도 없다. 화가가 포착한 얼굴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떤 그림보다도 초상화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다.

초상화 하면 떠오르는 두 개의 장면이 있다. 10년도 넘은 오래된 기억이지만 또렷이 각인돼 있는 작품들이다. 먼저 2014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만난 정영창 작가의 작품 ‘서승’. 1971년 동생 서준식과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사건’에 휘말려 19년간 옥살이를 했던 그는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취조실 석유난로의 호스를 빼 몸에 불을 붙였다. 당시 상황을 증명하는 일그러진 코와 입, 촉촉한 슬픈 눈동자와 입가의 희미한 미소가 담긴 작품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 전시에서는 미술 작품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음악을 선보이는 ‘화음(畵音)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서승의 얼굴을 마주하며 연주된 음악은 강준일 작곡가의 ‘불의 전사’였다.

지난달 세상을 떠난 보성 출신 ‘광부 화가’ 황재형의 광주 개인전(2013년)에서 만난 대형 초상화도 잊을 수 없다. 은퇴한 어느 늙은 광부의 모습을 극사실주의로 담아낸 ‘아버지의 자리’는 깊게 패인 주름과 꽉 다문 입, 그렁그렁한 눈망울이 마음을 흔들었다. 바로 옆, 어머니를 그린 ‘존엄의 자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림 앞에 한참을 머물렀던 많은 이들은 아마도 자신들의 아버지, 어머니를 떠올렸을 터다.

함께 걸린 ‘황지 330’은 시대의 초상화로 손색이 없었다. 탄광 사고로 사망한 광부의 ‘작업복’을 세밀히 그린 작품 속 해어진 쌍방울 메리야스와 주인을 잃은 이름표가 힘든 시절을 묵묵히 견뎌온 이들을 소환한다.

화가의 타계 소식에 인터넷에서 작품을 다시 찾아보았다. 먹먹해지는 마음은 여전했다. 기회가 된다면 전남도립미술관이나 광주시립미술관의 회고전에서 작품을 ‘직접’ 만나고 싶다. 당시 광주 개막식에서는 ‘절친’ 장사익이 ‘봄날은 간다’를 불렀던 기억도 나는데, 그의 노랫소리가 다시 한번 전시장에 울려 퍼진다면 우리는 세상 낮은 곳의 사람들을 끌어안았던 화가와 뜨겁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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