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범의 ‘극장 없이는 못 살아’] 평화의 소중함 깨우치는 교향곡 ‘바비 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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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90세를 맞은 세계적인 노장 지휘자 엘리아후 인발은 대작에 천착중이다. 최근 그는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도쿄도 심포니 오케스트라(도쿄 매트로폴리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3일에 걸쳐 말러의 가장 큰 대작이자 생전 최고의 성공작인 ‘교향곡 8번’을 연주했다. 뮌헨신음악축제전당 초연 당시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8명의 솔리스트, 대규모 성인합창단, 어린이 합창단까지 1000명이 넘는 연주자들이 참여해 ‘천인 교향곡’이라는 이름이 붙은 8번 교향곡은 우주와 같은 스케일의, 인간이 만들어놓은 가장 큰 규모의 작품이다.
이 곡 뿐만이 아니다. 최근 타이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에 이어 2023년부터는 계관지휘자를 맡아 정력적으로 타이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인발은 이 오케스트라와 작년 2월 라흐마니노프의 ‘죽음의 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3번 ‘바비 야르’를 공연하며 타이완 청중들에게 새로운 레퍼토리를 선사했다.
오는 28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KBS교향악단과 똑같은 레퍼토리를 무대에 올린다. 인발은 한번도 이 곡들을 고른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은 없으나 그가 1936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유대인 지휘자라는 점에서 선곡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내가 이 작품을 처음 감상한 건 모스크바에 처음 유학갔던 1996년의 일이었다. 당시 러시아의 저명 유대 연극인 솔로몬을 기리는 페스티벌이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열렸는데, 그날 2부의 핵심 곡이 비올리스트로 유명한 유리 바슈메트가 지휘봉을 잡고 베이스 솔리스트가 협연한 ‘바비 야르’였다.
바비야르는 사실 1962년 초연 때부터 정부당국과 마찰을 빚어왔던 곡이었다. 당시 반체제 시인 예브게니 옙투센코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든 작품으로 바비 야르는 우크라이나 키예프(키이우)에서 벌어진 나치 독일군의 우크라이나 유대인 학살사건(당시 소련)을 모티브로 삼아 비판의식을 갖고 만들었다.
바비 야르는 키이우의 절벽 이름이다. 2차 세계 대전 중 우크라이나 시가전에서 많은 병력을 잃은 나치 독일군이 그 원인의 배후로 지목한 것이 유대인들이었고 1941년 9월 29일과 30일 단 이틀만에 이곳에서 3만 4000명을 학살하는 엄청난 역사적 비극이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1943년 소련군이 키이우를 재탈환하기 전까지 유대인과 집시들, 우크라이나 민간인과 소련군 포로를 총살한 죽음의 계곡이었다.
이런 작품이 소비에트 러시아에 문제가 될 일은 없다고 느껴졌으나 문제는 저항시인인 옙투센코의 시를 사용해 독일 나치군의 만행과 학살만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소련 내에서 끊임없이 자행돼온 반유대주의와 차별, 그리고 정치수용소로 보내졌던 소련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유대인들 사건에 대해서도 통렬히 비판해 심기를 건드렸다.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드 부인’ 때문에 당서기장 스탈린의 비위를 건드렸고 소련 당국의 주다노프로부터 비판받아 자아비판을 해야했던 쇼스타코비치는 당국이 좋아할 만한 교향곡 5번 ‘혁명’을 작곡해 큰 성공을 거둔 후 정치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지만 이 교향곡은 거대 권력에 반항하고 행태를 꼬집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본인도 유대인인 쇼스타코비치는 1악장에 “유대인 혐오자들 앞에서 나는 유대인이다”라고 당당히 쓰면서 “사람들은 옙투센코가 시를 발표하기 전부터 바비 야르를 알고 있었지만 모두 침묵으로 일관했었다. 그렇지만 네가 시를 읽는 순간 침묵은 깨졌다. 예술은 침묵을 파괴하는 법이다”라고 일갈했다.
한국에서는 홍석원이 지휘한 광주시향이 2023년 10월 26일 광주예술의전당에서 초연 해 뜻깊은 첫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유대인 지휘자가 포디엄에 서는 역사적인 최초 공연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베이스와 대규모 합창이 필요한 이 곡은 정치적인 사건 배경도 그렇고, 러시아어도 생경해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잘 연주되지 않았던 레퍼토리였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 말러의 8번 교향곡 ‘천인’의 뒤를 잇는, 대규모 합창단과 솔리스트가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장엄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3번 ‘바비 야르’를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음악평론가>
내가 이 작품을 처음 감상한 건 모스크바에 처음 유학갔던 1996년의 일이었다. 당시 러시아의 저명 유대 연극인 솔로몬을 기리는 페스티벌이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열렸는데, 그날 2부의 핵심 곡이 비올리스트로 유명한 유리 바슈메트가 지휘봉을 잡고 베이스 솔리스트가 협연한 ‘바비 야르’였다.
바비야르는 사실 1962년 초연 때부터 정부당국과 마찰을 빚어왔던 곡이었다. 당시 반체제 시인 예브게니 옙투센코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든 작품으로 바비 야르는 우크라이나 키예프(키이우)에서 벌어진 나치 독일군의 우크라이나 유대인 학살사건(당시 소련)을 모티브로 삼아 비판의식을 갖고 만들었다.
바비 야르는 키이우의 절벽 이름이다. 2차 세계 대전 중 우크라이나 시가전에서 많은 병력을 잃은 나치 독일군이 그 원인의 배후로 지목한 것이 유대인들이었고 1941년 9월 29일과 30일 단 이틀만에 이곳에서 3만 4000명을 학살하는 엄청난 역사적 비극이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1943년 소련군이 키이우를 재탈환하기 전까지 유대인과 집시들, 우크라이나 민간인과 소련군 포로를 총살한 죽음의 계곡이었다.
이런 작품이 소비에트 러시아에 문제가 될 일은 없다고 느껴졌으나 문제는 저항시인인 옙투센코의 시를 사용해 독일 나치군의 만행과 학살만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소련 내에서 끊임없이 자행돼온 반유대주의와 차별, 그리고 정치수용소로 보내졌던 소련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유대인들 사건에 대해서도 통렬히 비판해 심기를 건드렸다.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드 부인’ 때문에 당서기장 스탈린의 비위를 건드렸고 소련 당국의 주다노프로부터 비판받아 자아비판을 해야했던 쇼스타코비치는 당국이 좋아할 만한 교향곡 5번 ‘혁명’을 작곡해 큰 성공을 거둔 후 정치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지만 이 교향곡은 거대 권력에 반항하고 행태를 꼬집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본인도 유대인인 쇼스타코비치는 1악장에 “유대인 혐오자들 앞에서 나는 유대인이다”라고 당당히 쓰면서 “사람들은 옙투센코가 시를 발표하기 전부터 바비 야르를 알고 있었지만 모두 침묵으로 일관했었다. 그렇지만 네가 시를 읽는 순간 침묵은 깨졌다. 예술은 침묵을 파괴하는 법이다”라고 일갈했다.
한국에서는 홍석원이 지휘한 광주시향이 2023년 10월 26일 광주예술의전당에서 초연 해 뜻깊은 첫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유대인 지휘자가 포디엄에 서는 역사적인 최초 공연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베이스와 대규모 합창이 필요한 이 곡은 정치적인 사건 배경도 그렇고, 러시아어도 생경해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잘 연주되지 않았던 레퍼토리였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 말러의 8번 교향곡 ‘천인’의 뒤를 잇는, 대규모 합창단과 솔리스트가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장엄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3번 ‘바비 야르’를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음악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