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겨울 명태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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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겨울 명태의 기억
2026년 01월 08일(목) 00:20
시대에 따라 도시 술집 안주도 참 많이 변했다. 삼겹살이 핵심인 요즘과 달리 과거에는 다양하게도 먹었다. 특히 찌개안주를 즐겼다. 즐겼다고 썼지만 돈이 없어서 그랬다. 섞어찌개니 김치찌개에 생선찌개 같은 것들. 다 먹어갈 무렵에는 상에 있는 건 뭐든지 쓸어넣고 양을 불리던 음식이었다. 동태찌개도 주력(?) 안주였다. 집에서도 많이 먹었지만 술집에서도 흔했다. 명태니 동태니 하는 건 얼마나 싸고 훌륭한 음식이었나. 그걸 먹고 우리는 살아왔고, 여기까지 왔다.

얼마 전 선배랑 동태찌개 놓고 막걸리를 한잔 하는데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산촌 출신인 선배는 “보부상이 70년대까지도 산촌 구석에 왔다. 화장품이랑 북어장수가 가장 환영받았지. 젊은 북어장수는 사위 삼는다는 말도 있었어. 돈이 많다고(웃음).”

북어 짐은 부피가 크지만 무게가 가벼워서 지고 다니기 좋았으리라. 어물이 귀한 산촌에서 가장 반가운 존재가 생선이었을 테고. 그래서인지 북어는 화폐로도 쓰였다. 집안 제사나 경조사에 북어 한 쾌쯤 내는 사람도 있었다. 값도 싸서 부자든 가난한 이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도 했다.

1990년대에 첫 직장생활을 했는데, 당시엔 아침밥을 거르는 사람이 적었다. 사무실 밀집지역에는 북엇국집이 아침부터 문전성시였다. 전날 과음해서 입이 깔깔한 사람을 위해 ‘(건더기)빼고’라는 메뉴가 있었던 게 신기했다. 숙취자의 특별 주문이 메뉴로 고정된 것이었다. 전날 술 자신 아버지를 위해 새벽에 어머니의 북어 패기 신공(?)을 기억하는 친구들도 많다. 과음 정도에 따라 북어 패는 소리의 차이가 있었다고.

북어도 좋지만 나는 동태를 사랑했다. 애들은 대가리 안 먹는다는데 나는 아주 좋아했다. 대가리를 먹는 맛의 절반은 볼 살 때문이었다. 두어 점이 고작인데, 쫄깃한 게 맛이 각별하다. 주둥이와 눈 부근의 젤리 같은 살점도 좋고, 아가미의 씁쓸한 맛까지도 어린 나는 왜 사랑했던가.

동태찌개의 진미는 뭐니뭐니해도 국물이다. 동태는 지방이 적은 생선이라 국물도 담백한데, 시원하고도 구수한 국물 한 숟갈을 먹으면 어른들이 왜 이 찌개 안주에 술을 마시는지 알 것 같았다. 국물 간이 깊게 밴 두부는 또 어떻고. 내장을 감싼 가슴쪽 살은 가시가 많아서 불편했지만 살이 졸깃졸깃했고, 퍽퍽하지만 또 그 순정한 맛이 좋은 등살은 흡족했다. 버릴 게 없다는 명태인데, 찌개 냄비 안에서도 버릴 게 정말 없었다. 식사가 끝나면 상 위에 굵은 등뼈와 뱉어놓은 머리의 잔해가 전부였다.

명태는 그 상태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얼린 것은 동태, 말린 것은 북어, 반쯤 말린 것은 코다리, 내장을 빼고 말린 것은 황태라 했다. 하나의 생선이 이토록 많은 이름을 가진 것은 그만큼 우리 식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증거다. 조선시대 문헌에도 명태에 관한 기록이 자주 등장하며, 서민부터 양반까지 모두가 즐겨 먹던 대중적인 식재료였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명태는 한국 연근해에서 흔하게 잡히는 생선이었다. 동해안 포구마다 명태잡이 배들이 드나들었고, 겨울철이면 항구가 은빛 명태로 가득 찼다. 함경도와 강원도 해안 지역에서는 명태잡이가 주요 산업이었고, 명태를 말리는 덕장이 해안가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명태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남획과 기후변화, 수온 상승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명태가 한국 연근해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 연간 10만 톤 이상 잡히던 명태는 1990년대 들어 급감했고, 2000년대에는 사실상 상업적 어획이 불가능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입이 잘 되고 있고, 러시아 앞 어장에 우리 배가 직접 나가서 목숨 걸고 열심히 명태를 잡아오고 있다. 명태가 주민등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바다든 그 명태가 그 명태일 것이다. 알뜰하게 먹고 명태를 잡는 귀한 손들을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언젠가 다시 우리 바다에서 명태가 잡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는 기쁨과 함께, 그동안 결코 잊지 않고 지켜온 문화의 힘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명태는 그렇게 우리에게 음식이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문화이고 역사이니까.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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