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 ‘자연이 전하는 말’] 자연의 답은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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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자연이 전하는 말’] 자연의 답은 하나가 아니다
2026년 02월 19일(목) 00:00
우리는 자연을 이야기할 때 종종 전제를 하나 깔고 출발한다. 자연은 번식을 위해 존재하며 생명은 오직 다음 세대를 남기기 위한 질서 속에서 움직인다는 생각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동물의 행동은 마치 잘 설계된 기계처럼 단순하게 설명될 것 같다. 짝을 만나고 자손을 남기고 유전자가 이어지는 흐름 말이다.

그러나 생명은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넓고 복잡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자연은 하나의 정답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예외와 변주 속에서 생명은 살아남아 왔다. 최근 동물행동학과 진화생물학 연구는 자연 세계에서 이른바 동성 행동이 드물지 않게 관찰된다는 점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동성 행동은 인간 사회의 문화적 산물이 아니라 생물계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의 한 유형이다.

펭귄에게서 우리는 인상적인 장면을 본다. 남극과 동물원의 펭귄 무리에서는 수컷 두 마리가 짝을 이루는 경우가 있다. 이 관계는 단순히 친근한 정도가 아니다. 두 펭귄은 서로에게 고개를 흔들고 울음소리를 주고받으며 구애 행동을 하고 다른 커플처럼 돌을 하나하나 모아 둥지를 만든다. 때로는 버려진 알을 품어 새끼를 부화시키고 키우기도 한다. 자연 속 유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지능이 높고 사회성이 강한 동물인 돌고래는 특정 개체끼리 오랜 기간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연구자들은 수컷 돌고래 두 마리가 수년 동안 함께 이동하고 사냥하며 포식자가 나타날 때 나란히 헤엄쳐 방어 행동을 하는 모습을 기록했다. 이 관계는 단순한 순간적 행동이 아니라 집단 내에서 신뢰와 동맹의 형태로 기능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 가운데 하나인 보노보 사회에서는 동성 간 접촉이 보다 분명한 사회적 기능을 갖는다. 먹이를 두고 갈등이 생기려는 상황에서 보노보들이 짧은 접촉을 통해 긴장을 풀고 집단을 안정시키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볼 수 있다. 이 행동은 번식과는 별개로 공동체를 유지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기린은 더 노골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야생 관찰 연구에서는 수컷 기린 사이의 성적 행동이 매우 높은 빈도로 나타나며 어떤 보고에서는 이성 간 행동보다 더 자주 기록되기도 했다. 이는 자연에서 성적 행동이 반드시 번식으로만 연결되지 않으며 사회적 관계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동성 행동에는 진화적으로 ‘말이 되는가’라는 질문이 뒤따른다. 번식을 통해 유전자가 전달되는 것이 생명의 기본 원리라면 불리한 특성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진화는 단순히 ‘아이를 낳았는가’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생물의 행동은 생존과 협력, 집단의 안정, 친족 돌봄처럼 여러 층위에서 작동한다.

어떤 개체가 직접 번식을 하지 않더라도 무리 안에서 새끼의 생존율을 높이거나 친족을 돕는 역할을 한다면 그 유전자는 간접적으로 다음 세대에 남을 수 있다. 이를 진화생물학에서는 친족선택이라 부른다. 인간 사회에서도 삼촌과 이모가 조카를 돌보듯 자연에서도 개체는 혈연 집단 전체의 생존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많은 종에서 동성 행동이 관찰된다고 해서 평생 번식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이성 간 번식도 이루어지며 성적 행동과 번식이 반드시 하나로 묶여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자연은 생각보다 유연하다. 생명은 언제나 한 가지 방식으로만 살아남지 않는다.

대중은 종종 동성애 유전자가 따로 존재하거나 혹은 호르몬으로 성적 지향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현대 유전학의 결론은 훨씬 신중하다. 성적 행동과 관계의 형태는 하나의 유전자 스위치로 결정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키나 성격이 하나의 유전자로 정해지지 않듯 성적 지향 역시 여러 유전적 요인과 발달 과정, 환경과 사회적 조건이 복합적으로 얽혀 나타나는 특성이다.

과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첫 번째 태도는 판단이 아니라 겸손이다. 자연을 더 많이 알수록 우리는 세상을 더 단순하게 재단할 수 없게 된다. 생명은 다채롭고 인간의 삶 또한 그러하다. 자연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자연의 다양성은 우리 사회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비정상이 아니라 생명의 본래 모습이다. 과학은 특정 삶을 옳거나 그르다고 판정하지 않는다. 다만 존재를 이해하려 노력할 뿐이다. 자연이 그러하듯 인간 사회 역시 다양한 소수자를 존중하고 공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더 안정되고 건강해질 수 있다.

<펭귄각종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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