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애의 ‘여백서원에서’] 매력적인 악(惡), 메피스토펠레스
  전체메뉴
[전영애의 ‘여백서원에서’] 매력적인 악(惡), 메피스토펠레스
2026년 01월 15일(목) 00:20
괴테의 대작 ‘파우스트’에서 주인공 파우스트보다 더 매력적인 캐릭터는 사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인 것 같다. 파우스트는 열정적인 대학자이니 멋지고 엄숙한 구절이 그의 입에 담기는 거야 자연스럽기도 한데, 읽다 보면 옳은 소리는 메피스토펠레스가 다 하는 것만 같다. 둘의 계약은, 이 생에서는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가 원하는 것은 ㅡ 파우스트가 만사 흡족하여 어느 순간을 향하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할 때까지ㅡ다 들어주고 그 말이 나온 순간 그의 영혼은 메피스토펠레스의 것이 되며 그다음에는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종살이를 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악마가 왜 매력적일까?

지적인 인물이지만 “하늘에서는 가장 밝은 별을 지상에서는 최고의 쾌락”을 다 바라며 천지 간의 허공을 가로세로 내닫는 파우스트와는 달리, 지극히 현실적이다. 계약을 한 후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에게 맨 처음 하는 봉사는 노학자에게 젊음을 되찾아주는 일이다. 마녀의 부엌에 가서 약을 먹임으로써 30년을 빼 준다.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그 부엌에 닿았을 때 파우스트는 그런 데서 젊음을 얻는다는 것이 마뜩잖고 믿기지 않아, 뭐 다른 방법은 없느냐고 묻는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있다며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당장 들판에 나가 괭이 들고 삽 들고 땅을 일구며 소박한 음식을 먹으며 살면 된다고. 그러나 평생 먹물로 책상 앞에만 앉아 있던 파우스트가 그런 일을 해낼 수는 없어 결국 마녀가 주는 약을 먹고 쉽게 젊어지는 방법을 택한다.

‘파우스트’ 2부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가 재정위기에 빠진 중세 궁정에 등장하여, 제국 지하에 묻혀 있다는 가상의 보물을 담보로 지폐를 무한정 발행하여 재정 문제를 수상쩍게, 단박에 해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지막 4,5막에 이르면 메피스토펠레스는 속도와 물량의 시대의 세계관을 대변하는 인물로 등장해서 해안을 메우는 간척 사업을 벌이는 파우스트를 돕는다.

남녀노소가 모여사는 낙토를 만들려는 꿈에 젖은 파우스트와는 달리, 그는 욕망을 부추기고, 무자비한 개발을 가차 없이 자행한다. 성서의 세 용사 대신,‘막 때려’, ‘다 뺏어’, ‘꽉 쥐어’를 수하에 거느리고 말이다. 파우스트가 전망을 가리는, 선한 노부부의 오두막과 예배당을 눈에 거슬려 하면, 메피스토펠레스는 순식간에 싹 다 불태워버린다. 욕망의 시대를 대변하는 말을 메피스토펠레스는 매끄럽게 늘어놓는다. 내가 “말 여섯 필을 가지고 있다면” 그 힘은 다 내 것 아니냐며.“미인도 복수 pl.로”, 즉 사람조차도 물량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딱히 나무랄 수도 없는 옳은 소리이기도 하다. 한없이 욕망에 추동 당하며 사는 현대인으로서는 더더욱.

왜 악마를 이렇게 설정하였을까.“나 천사, 너 악마”같은 2분 법적 세계관의 인물이 아니라 이 악은 우리 ‘마음속의 부정적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이름부터 묘하다. 히브리어로 ‘파괴자’와 ‘거짓말쟁이’를 합성한 것이라고 한다. ‘악’의 이름이‘파괴자’라는 거야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거짓말쟁이’가 악의 절반 구성 성분이라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거짓말쟁이’라는 단어는 아이들 말같이 들리지만, 우리가 얼마나 자주 자기가 한 말을 지키지 않고, 작은 유불리에 따라 얼마나 쉽게 한 말을 뒤집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 이름에는 정말이지 인간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담겨있다.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이름을 생각할 때마다 어김없이 독일 속담 하나가 같이 떠오른다.“Ein Mann, ein Wort”ㅡ 엄숙하게 번역하면 ‘남아일언 중천금’일 테지만 원어는 그냥 ‘한 사람, 한 말’이다.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는 것. 이 짧은 한 마디는 우리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첫 덕목을 상기시킨다. 사람 말이 오락가락하고, 더더구나 유불리에 따라 뒤집혀서는 안 된다는 엄청난 경고를 속담도 ‘파우스트’도ㅡ쉽고도 재미있게 ㅡ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속담에 따르면 말을 바꾸는 것은 사람으로서 못할/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괴테에 따르면 악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존재의 교언영색이 매력적으로 보이니 우리 속에 있다는 그 성분은 얼마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가. 한 입으로 두말만 하지 않아도 세상은 얼마나 좋아질까.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