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남도 체험로드_강진 한국민화뮤지엄
한국인의 미감 가득, 우리 그림을 만나고 배우는 곳
![]() 한국민화뮤지엄이 소장하고 있는 ‘작호도’는 200여 점에 이른다. |
“민화는 눈으로 보는 그림이기도 하지만, 책처럼 읽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한국민화뮤지엄의 관람은 해설사의 ‘작호도(鵲虎圖)’ 이야기로 시작된다. 해설사의 말에 따라 그림 앞에 서니, 호랑이와 까치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하나의 문장으로 다가온다.
작호도는 까치 작(鵲), 호랑이 호(虎)를 써서 작호도, 혹은 호작도라고 불린다. 그림 속 아래에는 호랑이가 느긋한 표정으로 자리를 잡고 있고, 위쪽에는 까치 두마리가 소나무 가지에 앉아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호랑이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호랑이에게 목숨을 잃는 일이 적지 않았던 시절, 사람들은 그 두려움을 그림으로 눌렀다. 대문 앞에 호랑이 그림을 붙여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 했고, 이를 벽사(재앙을 막고 액을 극복하는 행위)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새, 소나무는 음력 정월을 상징한다.
위에서 아래로 그림을 읽으면 ‘새해에는 좋은 소식만 가득하고, 나쁜 일은 멀리하라’는 인사가 된다. 민화는 이렇게 읽히는 그림이었다.
해설사의 요청에 따라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그림을 다시 바라본다. 그리고 호랑이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본 채 옆으로 이동하니, 그림 속 호랑이의 시선이 끝까지 따라온다. 착시 효과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 눈빛을 ‘지켜보는 힘’으로 믿었다. 어느 방향에서든 나쁜 기운이 들어오면 막아준다는 뜻이다.
이처럼 민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닌, 집 안에 걸어두고 날마다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는 생활의 그림이었다.
한국민화뮤지엄은 이런 민화를 온전히 이해하도록 돕는 공간이다. 한국민화뮤지엄은 국내 최초의 민화 전문 박물관인 강원도 영월 조선민화박물관의 자매관으로, 2015년 5월 강진군 대구면에 건립됐다. 전통 민화의 계승과 발전을 목표로 체계적인 연구와 수집, 전시와 교육은 물론 전문 서적 출판, 맞춤형 체험학습, 포럼과 공모전 등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박물관이 소장한 민화 유물은 5200여 점에 이르며, 이 가운데 250여 점을 상시 순환 전시한다. 관람객은 언제든 전문 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한 명이 방문해도 해설은 제공된다. 민화를 ‘보는 그림’에서 ‘이해하는 그림’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전시실에서는 조선 후기 민화부터 현대 민화까지, 민화의 흐름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매년 열리는 공모전 수상작과 현대 민화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민화가 과거에 머무른 장르가 아니라, 지금도 변화하고 확장되는 예술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민화 체험 프로그램과 4D 영상 체험도 마련돼 있다.
특히 2층에는 성인 전용 춘화 전시실이 조성돼 있어, 민화가 지닌 또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삶의 욕망과 생명력을 솔직하게 담아낸 춘화는 민화를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민화가 오늘날 다시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 오슬기 한국민화뮤지엄 관장은 ‘대중성’과 ‘접근성’을 꼽는다. “민화에 대한 관심은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어요. 오히려 계속 늘고 있죠.”
오 관장은 민화의 인기를 산업의 변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과거 수묵화나 유화가 주류였던 시기에는 관련 재료가 화방을 채웠지만 지금 인사동만 봐도 풍경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민화 전시가 거리를 채우고 표구 업계는 민화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전통 병풍 표구가 필요한 분야가 사실상 민화뿐이기 때문이다. 화방 역시 민화용 안료와 도구 수요가 크게 늘었다. 대형 문구·미술 재료 회사들이 민화 재료 개발을 위해 박물관에 문의할 정도다.
현재 전국에서 민화를 그리는 인구는 30만 여명에 이른다. 해외에서도 민화 인기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인 사회가 형성된 곳이면 어디든 민화 수업이 열리고, 해외에서 민화를 그리는 이들이 한국을 찾는 주요 목적지 중 하나가 바로 한국민화뮤지엄과 조선민화박물관이다. 이들은 하루에 그치지 않고 며칠씩 머물며 작품의 세부를 관찰한다. 호랑이 털 끝의 표현, 선의 밀도, 색의 겹침까지 하나하나 눈에 담는다. 직접 그리는 사람들에게 민화는 연구의 대상이기도 하다.
민화가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민화는 본(스케치)을 바탕으로 채색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처음 붓을 잡아도 완성도가 높아 보이는 구조다. 조선시대에도 민화는 대량 생산을 위해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 접근성이 높았고 의미는 분명했다.
민화에는 복, 건강, 장수, 자손 번창, 입신양명 같은 인간의 보편적 소망이 담겨 있다. 연화도는 자손 번창을, 어변성룡도는 시험 합격을 상징한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바람이 그림의 주제가 됐다.
한국 민화의 특징은 더욱 분명하다. 중국의 민간 연화나 일본의 오오쓰에가 주로 목판에 채색을 입힌 판화 방식인 반면, 한국 민화는 대부분 손으로 직접 그렸다. 배경을 채우지 않고, 중요한 대상만 크게 그린 것도 의미 중심의 표현 방식 때문이다. 무엇을 얼마나 잘 그렸느냐보다 어떤 상징이 담겼는지가 더 중요했다.
문자도 병풍에는 효·제·충·신·예·의·염·치 여덟 글자가 담기고, 각각의 글자에는 여섯 가지 이상의 고사가 물상으로 표현된다. 병풍 하나에 수십 개의 이야기가 담기는 셈이다. 조선 후기 사람들은 그림을 통해 윤리와 가치를 배웠다.
“민화를 ‘서민의 그림’으로만 보는 시각은 오해입니다. 민화는 계층을 가리지 않고 소비된 대중화된 그림이었어요. ‘민화’라는 명칭 자체도 조선시대의 용어가 아닌, 1920년대 일본의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가 붙인 이름이지요. 조선시대에는 속화, 잡화 등으로 불렸고, 문인화에 비해 격이 낮다는 시선도 존재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민화는 왕실과 상류층에서 사용되던 상징적 그림이 사회 변화 속에서 널리 확산된 결과물입니다.”
오 관장의 설명에 따르면 해방 이후 활동한 1세대 민화 장인들은 1980년대를 거치며 장인에서 작가로 전환했다.
수출용 그림을 그리던 공방이 중국 개방 이후 몰락하면서 이들은 화단으로 나와 전시와 공모전에 참여했다. 문화센터 강의를 통해 민화 실기가 퍼졌고, 이는 오늘날 현대 민화 작가층의 기반이 됐다. 최근 10여 년 사이에는 전공자 유입이 늘며 민화는 또 다른 전환기를 맞고 있다. 과거 재현 민화가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창작 민화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민화뮤지엄은 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현대 민화 작가들과의 협업 전시, 창작 민화의 흐름을 조망하는 기획전은 민화를 현재진행형 예술로 만들어준다.
박물관 관람의 마지막은 아트숍 ‘율아트’로 이어진다. 박물관 공식 아트숍인 율아트에서는 민화 기념품과 민화 그리기 용품, 민화 도서와 교구재를 만날 수 있다. 민화를 전시장에서 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다. 최근 콘텐츠 ‘케데헌’ 이후 민화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관련 상품 판매 역시 눈에 띄게 늘었다.
/이보람·남철희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한국민화뮤지엄의 관람은 해설사의 ‘작호도(鵲虎圖)’ 이야기로 시작된다. 해설사의 말에 따라 그림 앞에 서니, 호랑이와 까치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하나의 문장으로 다가온다.
작호도는 까치 작(鵲), 호랑이 호(虎)를 써서 작호도, 혹은 호작도라고 불린다. 그림 속 아래에는 호랑이가 느긋한 표정으로 자리를 잡고 있고, 위쪽에는 까치 두마리가 소나무 가지에 앉아 있다.
![]() 한국민화뮤지엄 소장품인 ‘작호도’. |
이처럼 민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닌, 집 안에 걸어두고 날마다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는 생활의 그림이었다.
한국민화뮤지엄은 이런 민화를 온전히 이해하도록 돕는 공간이다. 한국민화뮤지엄은 국내 최초의 민화 전문 박물관인 강원도 영월 조선민화박물관의 자매관으로, 2015년 5월 강진군 대구면에 건립됐다. 전통 민화의 계승과 발전을 목표로 체계적인 연구와 수집, 전시와 교육은 물론 전문 서적 출판, 맞춤형 체험학습, 포럼과 공모전 등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박물관이 소장한 민화 유물은 5200여 점에 이르며, 이 가운데 250여 점을 상시 순환 전시한다. 관람객은 언제든 전문 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한 명이 방문해도 해설은 제공된다. 민화를 ‘보는 그림’에서 ‘이해하는 그림’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 강진민화협회 회원전이 열리고 있는 2층 기획전시실. |
특히 2층에는 성인 전용 춘화 전시실이 조성돼 있어, 민화가 지닌 또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삶의 욕망과 생명력을 솔직하게 담아낸 춘화는 민화를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민화가 오늘날 다시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 오슬기 한국민화뮤지엄 관장은 ‘대중성’과 ‘접근성’을 꼽는다. “민화에 대한 관심은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어요. 오히려 계속 늘고 있죠.”
오 관장은 민화의 인기를 산업의 변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과거 수묵화나 유화가 주류였던 시기에는 관련 재료가 화방을 채웠지만 지금 인사동만 봐도 풍경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민화 전시가 거리를 채우고 표구 업계는 민화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전통 병풍 표구가 필요한 분야가 사실상 민화뿐이기 때문이다. 화방 역시 민화용 안료와 도구 수요가 크게 늘었다. 대형 문구·미술 재료 회사들이 민화 재료 개발을 위해 박물관에 문의할 정도다.
![]() 박물관 인기 작품인 ‘어변성룡도’. /최현배 기자 |
민화가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민화는 본(스케치)을 바탕으로 채색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처음 붓을 잡아도 완성도가 높아 보이는 구조다. 조선시대에도 민화는 대량 생산을 위해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 접근성이 높았고 의미는 분명했다.
![]() 한국민화뮤지엄 방문객이 민화 그리기 체험을 하고 있다. |
한국 민화의 특징은 더욱 분명하다. 중국의 민간 연화나 일본의 오오쓰에가 주로 목판에 채색을 입힌 판화 방식인 반면, 한국 민화는 대부분 손으로 직접 그렸다. 배경을 채우지 않고, 중요한 대상만 크게 그린 것도 의미 중심의 표현 방식 때문이다. 무엇을 얼마나 잘 그렸느냐보다 어떤 상징이 담겼는지가 더 중요했다.
문자도 병풍에는 효·제·충·신·예·의·염·치 여덟 글자가 담기고, 각각의 글자에는 여섯 가지 이상의 고사가 물상으로 표현된다. 병풍 하나에 수십 개의 이야기가 담기는 셈이다. 조선 후기 사람들은 그림을 통해 윤리와 가치를 배웠다.
![]() 한국민화박물관 아트숍인 ‘율아트’ 민화 굿즈들. |
오 관장의 설명에 따르면 해방 이후 활동한 1세대 민화 장인들은 1980년대를 거치며 장인에서 작가로 전환했다.
수출용 그림을 그리던 공방이 중국 개방 이후 몰락하면서 이들은 화단으로 나와 전시와 공모전에 참여했다. 문화센터 강의를 통해 민화 실기가 퍼졌고, 이는 오늘날 현대 민화 작가층의 기반이 됐다. 최근 10여 년 사이에는 전공자 유입이 늘며 민화는 또 다른 전환기를 맞고 있다. 과거 재현 민화가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창작 민화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민화뮤지엄은 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현대 민화 작가들과의 협업 전시, 창작 민화의 흐름을 조망하는 기획전은 민화를 현재진행형 예술로 만들어준다.
![]() 한국민화뮤지엄에 전시된 삼국지연의도 서성탄금. |
/이보람·남철희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