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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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떡볶이
2025년 11월 20일(목) 00:20
요즘 아이들은 추억의 음식으로 마라탕을 기억에 남길 것 같다. 학교 앞에 떡볶이집 대신 마라탕집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떡볶이는 학교 앞이라는 공간에서 사라지고 있다. 1960년대에 퍼지기 시작해서 60년 영화(?)의 시간을 접고 외래음식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 음식이 뒤안길로 사라진 건 아니다. 인터넷으로, 일반 거리로 나가서 더 번성하고 있다. 시장규모만 해도 약 3조원(프랜차이즈·배달·편의점·즉석식품 포함)으로 추산되며 분식류 중 매출 비중이 가장 높다.

떡볶이는 이제 싸고 만만해서 먹는 음식이 아니다. 얼마 전 일본에 갔다가 현지 한식 시장을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떡볶이가 중요한 요리 대접을 받고 있었다. 노점 앞에 철판 하나 두고, 주걱으로 퍼서 팔던 간이식이 아니다. 치즈와 고기를 넣은 근사한 요리로 취급한다. 역사적으로 고급 요리였던 떡볶이의 귀환이라고나 할까.

떡볶이가 문헌에 등장한 것은 조선 후기(19세기 전후)이다. 규합총서(1815년경)와 시의전서(19세기 중반)에 떡을 간장·기름·고기와 함께 볶거나 찌는 조리법이 등장한다. 여기서 소개되는 음식은 오늘날의 ‘궁중떡볶이’와 가까운 모습으로, 양념은 간장에 쇠고기·표고버섯·야채 등을 넣어 풍미를 더했다. 즉, 조선시대에 존재한 떡볶이는 매운맛이 전혀 없는 간장양념 기반의 상류층 잔치 음식이었다. 생각해보라. 쌀로 가래떡을 뽑아서 요리한다는 자체가 고급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다 꿀과 쇠고기, 버섯이라니. 더구나 떡볶이는 주로 ‘남은 떡’을 처리하는 요리로도 등장하는데, 떡이 남는다는 건 궁중이나 부자들 말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떡볶이가 궁중요리 수준의, 아무도 모르던 고급 요리에서 현대의 길거리 음식이 된 건 순전히 미국 덕이었다. 미국은 6·25전쟁 후에 대량의 밀가루를 한국에 무상으로, 또는 싸게 공급했다. 쌀떡이 언감생심이었던 대중들은 밀가루로 이미테이션 떡을 만들었다. 1970년대는 중동전쟁의 여파로 석유파동이 벌어졌다. 연탄을 때서 떡볶이를 만드는 노점 주인들에게도 불통이 튀었다. 그들의 요구를 맞춰준 것은 제조업자들이었다. 비싼 연료를 절약하기 위해 가래떡보다 훨씬 가늘게 제조했다.

무엇보다 떡볶이는 매운 맛이 되면서 국민 음식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집에서 담근 고추장으로는 가격을 맞출 수 없었는데, 공장에서 밀가루로 대량의 염가 고추장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엄청나게 싼 값이 가능해졌다. 초등학생도 사먹을 수 있는 가격이 됐다. 내가 일곱 여덟 살 때 단돈 10원으로도 먹을 수 있었으니, 물가 상승을 감안해도 현재의 300~400원 정8도의 체감 가격이었던 것 같다. 당시 봉지라면이 20원 정도였다.

여기서 떡볶이의 진화가 끝난 건 아니었다. 밀가루, 공장 고추장만큼이나 큰 조력자가 나타났다. 바로 어묵이다. 오뎅이라고 오랫동안 불렸던 이 마법의 음식은 한국 수산업의 중요한 처리공장에서 나왔다. 작고 상품 가치 떨어지는 생선이 어묵이 되면서 쓸모를 넓혔다. 어묵은 도시락 반찬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렸고, 한 해 100만명씩 쏟아지는 학생 인구의 반찬통을 채울 수 있어서 엄마들의 고민을 덜어주는 효자가 됐다. 어묵이 떡볶이에 들어간 것은 아마도 1980년대의 유행으로 기억하고 있다. 당면과 채소를 곁들인 고급 즉석 떡볶이가 생겨나면서 어묵은 날개를 달았고, 가판의 길거리 떡볶이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아마도 우리 수산업의 생산량이 크게 늘고, 어묵을 튀기는 기름 값이 싸지면서 가능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제 떡볶이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앞서 일본의 경우처럼 글로벌 K푸드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유럽의 많은 한식당에서 떡볶이가 불티나게 팔리고 미국에서는 2020년 이후 H-Mart·Costco·Trader Joe’s 등의 유력 마트를 통해 떡볶이 상품 판매가 급증하곤 했다.

떡볶이는 쌀·밀·고추장·설탕이라는 단순한 조합을 기반으로 하지만, 변화의 속도는 한국 사회의 경제 구조와 외식 문화 변화와 맞물려 매우 빠르게 진행돼 왔다. 19세기 문헌 속 궁중 조리에서 출발한 떡볶이는 전쟁 직후 도시 빈민층 음식, 학생 분식, 포장마차, 프랜차이즈, 배달, 밀키트 산업을 거쳐 오늘날 K-푸드의 대표 메뉴가 되었다. 우연과 필연이 겹쳐서 탄생하고 성장한 이 이종(異種) 음식의 미래는 어디까지 뻗어갈지 궁금할 뿐이다.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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