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예술, 자연, 사람…바다 그리운 고흥 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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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예향] 예술, 자연, 사람…바다 그리운 고흥 섬여행
2025년 10월 15일(수) 17:25
쑥섬 ‘비밀의 정원’에 오르니 멀리 고흥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최현배 기자
푸른 바다와 맞닿은 고흥은 작은 섬마다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예술로 물든 연홍도, 생태 정원이 된 쑥섬, 아픈 역사를 품은 소록도는 발길 닿는 곳마다 다른 표정으로 여행자를 맞는다. 나로우주센터와 발사전망대에서는 미래를 향한 꿈을 확인한다. 바다와 하늘을 오가며 고흥이 들려주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따라가본다.

◇‘생태의 섬’ 쑥섬(애도)

나로도 연안여객선 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2분이면 전남 1호 민간 정원을 품은 ‘쑥섬’에 도착한다. 예로부터 쑥의 질이 좋아 쑥섬이라 불린 이곳에는 현재 2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전남도는 2007년 민간 정원 발굴 사업의 첫 대상지로 쑥섬을 선정했다. 이를 계기로 섬 주민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마을길을 청소하고 돌담길과 숲길을 정비하는 등 섬 자원 가꾸기에 동참했다. 오랜 숙원이었던 상수도 시설을 확충하고 섬을 오가는 배를 마련하는 등 손님맞이를 마쳤다.

2016년 마을이 공식적으로 개방된 이후 쑥섬은 관광객 힐링 코스로 자리 잡았다. 가파른 계단길이 설치된 ‘헐떡길’을 견디면 쑥섬 난대원시림이 기다리고 있다. 만지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후박나무와 동백나무 터널, 어린아이들이 오르내리며 놀던 구실잣밤나무를 차례대로 지나면 환희의 언덕이 나온다. 언덕 너머 만선의 꿈을 안은 고깃배가 아득하게 내려 보이는 드넓은 바다는 가슴을 뻥 뚫리게 만든다. 물이 났을 때만 볼 수 있다는 쑥섬 인어와 큰바위 얼굴 속 삼형제 얼굴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쑥섬 비밀의 정원에 피어있는 수백여 종의 꽃. /최현배 기자
환희의 언덕을 지나 차분히 걷다 보면 수백여 종의 꽃들이 피고 지는 별정원(비밀의정원)에 도착한다. 이름 모를 꽃부터 봄맞이풀, 천일홍과 백일홍, 브라질마편초 등 눈에 익은 들풀, 야생화가 눈 앞에 펼쳐진다.

섬 곳곳에는 주민들의 손길이 담긴 ‘오브제’들로 가득하다. 크고 작은 어구 부표를 재활용해 대나무에 매달아 마을에 색을 더했고 막걸리 병은 하트 모양으로 구멍을 뚫어 화분으로 사용하고 있다.

고샅마다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며 반겨주는 고양이들을 구경하는 것도 쑥섬 관광의 재미다. 마을 주민들이 살고 있는 쑥섬 앞 동네 반대편에는 바람이 강해 사람이 살지 못한다. 이곳에는 파도에 떠밀려온 폐 어구 부표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주민들은 커다란 어구 부표를 주워 구멍을 뚫고 고양이를 위한 집을 만들어준다. 깨끗한 물과 사료를 골목 곳곳에 두어 고양이들이 사계절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보살핀다. 고양이를 집 안으로 들이지 않는 까닭은 원초적 동물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벽에 붙은 ‘쑥섬 고양이 참고서’에는 고양이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관광 상품이 아닌 고양이를 돌봐주는 문화를 살려가고 싶은 주민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역사의 섬’ 소록도

과거 수탄장이라 불렸던 소록도 입구에 소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최현배 기자
고흥군 도양읍의 소록도(小鹿島)는 녹동항에서 1km 남짓 떨어진 조용한 섬이다. 2009년 개통된 1.16km 길이 소록대교를 달리다 보면 작은 아기 사슴을 닮은 섬, 소록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110여 년 전 이곳은 한센병에 걸린 한센인들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감금과 고문, 강제 거세가 이뤄졌던 아픔의 장소다. ‘나병’, ‘문둥병’이라고도 불렸던 한센병은 나균에 의한 감염병이다. 나균이 피부와 말초신경을 침범해 감각 저하로 자신도 모르는 새 상처나 화상을 갖게 되고 신경의 감각마비 등의 증상을 겪게 된다. 오늘날 한센병 치료약이 개발되면서 ‘불치병’이라 여겨졌던 과거와 달리 완치 가능한 병이 됐다.

1913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닿기만 해도 전염이 된다’는 등 과학적 근거 없는 오해를 기반으로 전국의 한센인들을 수용할 시설을 물색하기 시작했고 1916년 한센병 환자들의 치료와 요양을 목적으로 소록도에 한센병 전문 의료시설인 자혜의원을 설립해 한센인들을 이곳에 몰아넣었다. 하지만 치료는 구실일 뿐 한센인들을 격리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붉은 벽돌담으로 세워져 한센인들을 강제로 가뒀던 감금실. /최현배 기자
소록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직원지대와 병사지대를 구분하는 경계지역인 ‘수탄장’에 들어서게 된다. 탄식으로 가득해 수탄장이라 불리는 이곳은 부모와 자식이 도로 양옆으로 갈라선 채 몇 발자국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서로를 만지지도 못한 채 바라만 봐야 했던 비극의 장소다.

2023년 재조성된 데크길을 따라 걷다보면 과거의 아픔이 담긴 소록도 갱생원 만령당, 원장관사 등의 모습이 멀리 보인다. 4.4km 면적의 소록도는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됐지만 지난해 섬 일부가 개방됐다.

이곳에는 1935년 나란히 건립된 감금실과 검시실이 보존돼 있다. 소록도 원장은 입원환자에 대한 징계검속권이라는 권한을 갖고 한센인 통제에 나섰다. 붉은 벽돌담 안으로 들어서면 철창이 달려 형무소가 연상되는 감금실이 나온다. 빈대가 득실대고 벼룩으로 가득한 감금실에는 좁은 공간에 한센인 30여 명이 지내는 등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다. 탈출을 감행하거나 신사참배를 거부한 환자들은 감금된 채 이곳에서 사망하거나, 마취 없는 단종수술을 겪어야 했다.

감금실 바로 옆에는 매일 5~6회 한센인들의 시신을 해부했던 검시실과 영안실이 있다. 검시대와 세척시설 등 옛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한 많은 삶을 살다간 한센인들의 아픔을 잠시나마 돌이켜볼 수 있다.

소록도 중앙공원에 세워진 구라탑. /최현배 기자
소록도에는 푸른 눈의 ‘할매 천사’가 있다. 간호사인 마가렛 피사렉과 마리안느 스퇴거는 천형으로 여겨 모두가 외면한 한센인들의 환부를 맨손으로 만지며 치료했고 평생을 바쳐 소록도에서 봉사했다. 정부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에게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소록도에는 두 할머니가 머물렀던 사택이 보존돼있다.

1916년 자혜의원으로 문을 연 소록도병원은 1934년 소록도갱생원으로 명칭이 변경된 후 1960년 국립소록도병원이라 이름 붙여졌다. 섬 전체가 하나의 병원인 소록도는 한센인들의 아픔이 장소 곳곳에 기록된 역사의 공간이기도 하다.

소록도박물관에는 굴곡진 삶을 살다 간 한센인들의 유품과 기록 등이 보관돼 있다. 박물관은 2016년 국립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을 기념해 문을 열었다. 이곳에는 한센인들의 삶과 아픔을 공감·체험할 수 있는 전시공간과 애환이 담긴 유품 등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에서는 12월 31일까지 기획전시 ‘The Voices’와 천경자 등의 작품이 전시된 특별전시 ‘기증작품전 둘’을 만나볼 수 있다.

소록도를 걷다보면 6000여 평에 달하는 공간에 소나무와 섬잣나무, 호랑가시나무 등이 조화롭게 배치된 중앙공원을 마주한다. 공원의 중앙에는 미카엘 천사가 한센균을 찌르는 모습이 조각 된 ‘한센병은 낫는다’라고 적힌 구라탑이 세워져 있다.

소록도 중앙공원 구라탑 좌측에 있는 한하운 시비. 병원 개원 56주년 기념시 ‘보리피리’ 전문이 새겨져 있다. /최현배 기자
공원 조성 과정에서도 한센인들은 어김없이 강제 동원됐다. 수직에 가까운 낭떠러지길에서 위험천만하게 작업해야 했고, 일본인의 허락 없이는 쉬지도 못했던 비탄의 역사가 공원에도 서려있다.

공원에는 소록도 4대 원장 스오 마사스에를 칼로 찌른 뒤 사형을 선고받은 원생 이춘상을 기리는 의거비가 세워져 있다. 스오원장은 공원 안에 자신의 동상을 세워 한센인들에게 참배를 강요했다. 현재 중앙공원 내에는 한센인들이 참배했던 스오원장 동상의 흔적이 남아있다.

1945년 8월 15일 한국은 광복을 맞이했지만 한센인들은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해방과 함께 자치권을 요구한 협상대표자 84명은 같은달 22일 처참하게 학살 당했고, 소록도에는 이들을 추모하는 애한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예술의 섬’ 연홍도

예술의 섬 연홍도 해변길을 걷다보면 다양한 미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최현배 깆
섬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인 예술 섬 ‘연홍도’는 신양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3분이면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예술 작품과 조형물이 자연과 어우러져있어 섬을 걷는 것만으로도 예술 체험을 할 수 있다.

선착장에서 내리면 섬 전체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안내지도가 걸려 있다. 아르끝 둘레길, 하늘 담은 오름길, 골목 벽화 길, 소원 오름길, 연홍 바닷길, 해안 둘레길 등 연홍도를 둘러볼 수 있는 루트는 다양하다. 벽화와 담벼락에는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그림을 쉽게 볼 수 있다. 걷다보면 지도와 거리가 담긴 둘레길 안내판도 곳곳에 설치돼 있어 길 잃을 걱정 없이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예술의 섬’ 연홍도에는 폐어구를 이용해 만든 예술 작품들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최현배 기자
‘소라 부부’와 ‘연홍아 놀자’ 조형물도 눈에 띈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와 바람개비를 들고 달리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푸른 바다와 잘 어울린다. 버려진 폐어구, 플라스틱 등을 사용한 정크아트도 곳곳에 설치돼 있다.

지난 1998년 문을 닫은 금산 초등학교 연홍 분교를 개조해 만든 연홍 미술관은 지역 작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계절마다 전시 주제가 바뀌어 실내 작품과 외부 벽화, 조형물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글=김다인·주각중 기자 kdi@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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