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씨앗 뿌려 지역 예술가 키운다
전남문화재단 ‘2025 창작공간지원사업’
행촌문화재단·이안미술관 결과물 전시
예술가 체류 창작활동 지원…판매까지
행촌문화재단·이안미술관 결과물 전시
예술가 체류 창작활동 지원…판매까지
![]() 행촌문화재단은 해남군 문내면에서 국·내외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이마도 국제 창작레지던시’를 운영하고 있다. 이은미 작가의 작업실 모습. |
예술은 예술가의 내면에서 비롯된다. 경험과 환경, 관계와 생각이 응축돼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난다. 자기복제를 피하려면 새로운 감각과 자극을 다시 채워 넣어야 한다.
이때 레지던시는 예술가를 돕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전남문화재단(대표이사 김은영)은 1억여원 규모 창작공간지원사업(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 예술 생태계의 공공성과 가치를 확산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기자는 올해 사업수행 단체인 해남 행촌문화재단 ‘이마도 국제 창작레지던스’와 영암 이안미술관 ‘이안에 머물다, 레지던시’를 찾아 예술가들이 지역과 어떻게 교류하며 새로운 창작의 경로를 열어가고 있는지 살펴봤다.
◇자연이 주는 영감의 보고(寶庫), 이마도
“아름다운 곳은 많이 가봤지만 이마도는 색도, 빛도, 바람도 다릅니다. 특히 바람. 어디를 가든 따라오는 그 소리가 제겐 영감이 돼요.”
해남 문내면 임하도, 땅끝에서 조금 더 들어간 작은 섬에는 네 명 안팎의 예술가가 머물고 있다. 사방에서 불어 오는 바람, 낮게 깔린 햇빛이 하루를 채우는 이곳은 감각을 환기하는 거대한 작업실이 된다.
행촌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이마도 국제 창작레지던시’는 지난 2014년 부터 12년간 동시대 예술가들의 창작 산실로 자리해왔다.
목판화가 김석환 작가는 지난 2월부터 이마도에 머물고 있다. 작업실 한 벽면에는 자전거로 프랑스·중국·태국·스페인 등지를 여행하며 만난 풍경과 사람들을 그린 스케치가 빽빽하게 붙어 있다. 세계 곳곳을 누비는 여행자였던 그가 섬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은 의외로 다가왔다.
“조용하잖아요. 파도 소리와 가끔 들리는 새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없는 곳. 잔잔함을 넘어 묵직하게 내려앉는 고요가 창작에는 참 큰 힘이 됩니다.”
그는 해외 여행 스케치와 이마도에서 만난 풍경을 엮어 지난 3~4월 ‘갤러리 금요일의 섬’에서 ‘김석환의 자전거 여행 스케치전’을 열기도 했다.
행촌미술관에서 지난 20일까지 ‘바람이 시작되는 곳’ 전시를 선보인 이은미 작가도 이마도에 머물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빛에 따라 색이 달라지며 반짝이는 윤슬, 저녁이면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는 숲의 결이 차분하게 스며 있다. 작가의 방에는 큰 통창이 여러 개 나 있어,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고 사라지는 과정을 바라볼 수 있다.
이승미 행촌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작가에게 필요한 건 시간을 단단히 붙잡을 수 있는 환경”이라며 “이마도에서는 누군가의 시선보다 자기 작업에 집중하는 여유를 되찾게 된다”고 말했다.
이마도 레지던시가 공을 들이는 지원은 ‘도록 출판’. 2017년부터 현재까지 18명 작가가 20권의 도록을 펴냈고, 책들은 국내외 서점과 도서관에 배포됐다. 신재돈 작가는 이마도 체류 당시 발간된 도록이 멜버른 하이데 현대미술관의 눈에 띄어 한국인 최초로 4개월 초대전을 여는 성과로 이어졌다.
한편 행촌문화재단은 오는 12월 20일까지 올해 레지던시 결과전 ‘이마도, 그 바람이 말을 걸 때’를 연다.
◇지역과 예술가의 교두보, 이안미술관
이안미술관이 자리한 영암군 삼호읍은 HD현대 삼호조선소와 함께 성장해온 지역이다. 조선소 직원과 가족들은 학구열이 높고 문화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도 크지만, 지역적 한계 탓에 문화시설을 쉽게 찾기 어려웠다. 이안미술관은 예술가에게는 공간을 제공하고, 지역민과 연결하는 ‘문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이안에 머물다, 레지던시’(이안 레지던시)는 전남문화재단 창작공간지원사업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다. 2024년부터 시작했으며 올해는 회화·도자·조각 등 5명의 작가가 10개월간 작업을 진행했다. 결과물은 지난 20일까지 열린 ‘영암 좋아요! 展’, ‘함께 그린 세상: 예술가와 아이들의 특별한 컬래버레이션 展’에서 선보인 바 있다.
이안 레지던시의 핵심은 작가와 지역 청소년을 1대1로 매칭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여러 작가의 수업을 체험한 후 함께 작업하고 싶은 선생님을 선택한다. 그 이후 6개월여간 멘토 작가와 공동 작업을 한다.
이번 레지던시에 참여한 유영배 도자 작가는 김건아 군과 짝을 이뤘다. 유 작가는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목표가 아니라 흙을 만지고 그림을 그리며 아이가 직접 경험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이안 레지던시의 또 한 축은 ‘판매 연계’다. 미술관은 40평 규모 별도 공간을 상업 전시관 ‘이안 아트’로 꾸미고, 오는 12월 14일까지 레지던시 참여 작가와 지역 작가 40여 명 작품을 모아 판매전을 연다. 박경곤 대표는 “미술관은 원래 작품 판매가 어려운 공간이지만, 지역 작가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수익 전액은 작가에게 돌아간다. 작가는 판매 기회를 얻고, 관람객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작품을 살 수 있다. 지난해는 28명 작품 3800만여원 규모가 판매됐고, 올해는 참여 작가 수가 46명으로 늘었다.
박 대표는 “이안미술관은 그림만 전시하는 곳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받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며 “레지던시를 통해 작가·청소년·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전했다.
/글·사진=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이 기사는 광주일보와 (재)전라남도문화재단이 공동으로 기획했습니다.
이때 레지던시는 예술가를 돕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전남문화재단(대표이사 김은영)은 1억여원 규모 창작공간지원사업(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 예술 생태계의 공공성과 가치를 확산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자연이 주는 영감의 보고(寶庫), 이마도
“아름다운 곳은 많이 가봤지만 이마도는 색도, 빛도, 바람도 다릅니다. 특히 바람. 어디를 가든 따라오는 그 소리가 제겐 영감이 돼요.”
해남 문내면 임하도, 땅끝에서 조금 더 들어간 작은 섬에는 네 명 안팎의 예술가가 머물고 있다. 사방에서 불어 오는 바람, 낮게 깔린 햇빛이 하루를 채우는 이곳은 감각을 환기하는 거대한 작업실이 된다.
목판화가 김석환 작가는 지난 2월부터 이마도에 머물고 있다. 작업실 한 벽면에는 자전거로 프랑스·중국·태국·스페인 등지를 여행하며 만난 풍경과 사람들을 그린 스케치가 빽빽하게 붙어 있다. 세계 곳곳을 누비는 여행자였던 그가 섬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은 의외로 다가왔다.
“조용하잖아요. 파도 소리와 가끔 들리는 새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없는 곳. 잔잔함을 넘어 묵직하게 내려앉는 고요가 창작에는 참 큰 힘이 됩니다.”
그는 해외 여행 스케치와 이마도에서 만난 풍경을 엮어 지난 3~4월 ‘갤러리 금요일의 섬’에서 ‘김석환의 자전거 여행 스케치전’을 열기도 했다.
행촌미술관에서 지난 20일까지 ‘바람이 시작되는 곳’ 전시를 선보인 이은미 작가도 이마도에 머물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빛에 따라 색이 달라지며 반짝이는 윤슬, 저녁이면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는 숲의 결이 차분하게 스며 있다. 작가의 방에는 큰 통창이 여러 개 나 있어,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고 사라지는 과정을 바라볼 수 있다.
이승미 행촌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작가에게 필요한 건 시간을 단단히 붙잡을 수 있는 환경”이라며 “이마도에서는 누군가의 시선보다 자기 작업에 집중하는 여유를 되찾게 된다”고 말했다.
이마도 레지던시가 공을 들이는 지원은 ‘도록 출판’. 2017년부터 현재까지 18명 작가가 20권의 도록을 펴냈고, 책들은 국내외 서점과 도서관에 배포됐다. 신재돈 작가는 이마도 체류 당시 발간된 도록이 멜버른 하이데 현대미술관의 눈에 띄어 한국인 최초로 4개월 초대전을 여는 성과로 이어졌다.
한편 행촌문화재단은 오는 12월 20일까지 올해 레지던시 결과전 ‘이마도, 그 바람이 말을 걸 때’를 연다.
![]() 이안미술관 ‘이안에 머물다, 레지던시’ 결과전이 지난 20일까지 열렸다. 도자 작가 유영배의 작품. |
이안미술관이 자리한 영암군 삼호읍은 HD현대 삼호조선소와 함께 성장해온 지역이다. 조선소 직원과 가족들은 학구열이 높고 문화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도 크지만, 지역적 한계 탓에 문화시설을 쉽게 찾기 어려웠다. 이안미술관은 예술가에게는 공간을 제공하고, 지역민과 연결하는 ‘문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이안에 머물다, 레지던시’(이안 레지던시)는 전남문화재단 창작공간지원사업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다. 2024년부터 시작했으며 올해는 회화·도자·조각 등 5명의 작가가 10개월간 작업을 진행했다. 결과물은 지난 20일까지 열린 ‘영암 좋아요! 展’, ‘함께 그린 세상: 예술가와 아이들의 특별한 컬래버레이션 展’에서 선보인 바 있다.
이안 레지던시의 핵심은 작가와 지역 청소년을 1대1로 매칭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여러 작가의 수업을 체험한 후 함께 작업하고 싶은 선생님을 선택한다. 그 이후 6개월여간 멘토 작가와 공동 작업을 한다.
이번 레지던시에 참여한 유영배 도자 작가는 김건아 군과 짝을 이뤘다. 유 작가는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목표가 아니라 흙을 만지고 그림을 그리며 아이가 직접 경험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이안 레지던시의 또 한 축은 ‘판매 연계’다. 미술관은 40평 규모 별도 공간을 상업 전시관 ‘이안 아트’로 꾸미고, 오는 12월 14일까지 레지던시 참여 작가와 지역 작가 40여 명 작품을 모아 판매전을 연다. 박경곤 대표는 “미술관은 원래 작품 판매가 어려운 공간이지만, 지역 작가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수익 전액은 작가에게 돌아간다. 작가는 판매 기회를 얻고, 관람객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작품을 살 수 있다. 지난해는 28명 작품 3800만여원 규모가 판매됐고, 올해는 참여 작가 수가 46명으로 늘었다.
박 대표는 “이안미술관은 그림만 전시하는 곳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받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며 “레지던시를 통해 작가·청소년·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전했다.
/글·사진=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이 기사는 광주일보와 (재)전라남도문화재단이 공동으로 기획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