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없는 하루 - 황성호 신부 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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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창문 너머로 스며들 때 또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느낀다. 눈을 뜨고 숨을 들이 마시고 몸을 움직이며 기지개를 켜본다. 습관처럼 일어나 세수하고 스페인어 기도서를 들어 기도하고 준비된 제대에서 미사를 봉헌한다. 아침 식사와 함께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광산구 주민회관으로 나선다.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매일 다가오는 일상이 그냥 그렇게 이어지는 당연한 것일까? 아니다. 그냥 일상이 이어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지, 오늘이라는 하루는 진짜 다시 없는 하루이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만나는 사람, 그 사람과 나누는 대화, 그리고 서로에게 건네는 미소 등의 모든 행위는 다시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을 다시 없는 순간이다.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의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고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이 말씀은 걱정을 없애자는 의미도 있지만 더 나아가 오늘을 온전한 마음으로 살아내기를 초대하고 있다. 오늘이라는 다시 없는 하루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유일한 하루이며 그 하루를 살아가는 다시 없는 존재라는 나의 존재성을 강하게 느껴본다. 우리는 종종 삶을 ‘반복’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월요일이 오고 다시 화요일이 오고 또 주말이 오고 지나고 하지만 잠시 멈춰서서 내 삶의 흐름과 일상을 바라보면 이 하루와 순간들은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매일이 똑같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석양의 태양은 붉다가도 노랗게 보이기도 하고 자주 만나던 사람의 모습은 또한 어제와 다르고 그를 대하는 내 마음도 또한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어제와 같지 않다는 것이고 결국 새롭고 다시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지금의 나는 다시 없는 존재로 다시 없는 삶을 살아가는 주체라는 것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단 한 번 주어진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얼마나 고귀하고 경이로우며 아름다운 사실인가.
그런데 우리는 이 소중한 하루를 때로는 그냥 무심히 흘려보내 버린다. 익숙함에 묻혀 소중함을 잊고 바쁨에 쫓겨 의미를 잃어버리곤 한다. 사람과의 만남도 형식이 되고 감사와 기쁨보다는 비교와 불만이 앞설 때가 많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나면 문득 ‘이게 아닌데…’하며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그때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했을까’, ‘그 사람을 좀 더 따뜻하게 대해줄 것을…’. 하지만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지나버린 하루도 다시 살아낼 수 없다. 습관적으로 흘려보낸 하루를 마주하며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며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이 선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외쳐본다.
빛을 바라보고 비를 온몸으로 맞아보며 바람의 흐름을 느끼고 사랑스러운 눈빛을 마주하고 정성이 깃든 음식을 맛보며 조건 없이 사랑하고 무작정 기다려주고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지금, 우리는 가장 귀한 존재와 시간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당신 삶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보여주셨다. 병과 악으로 지친 이들을 치유해 주시고 굶주리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셨고 작은 이들을 만나시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빛과 희망이 되셨다. 다시 없는 존재의 삶을 보여주셨고 하루의 삶을 다시 없는 하루처럼 그리고 만나는 이들을 모두 다시 없는 존재처럼 대하셨다.
그렇다. 우리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고 대했는지에 따라 그 하루는 세상의 빛이 될 수도 어둠에 묻혀버릴 수도 있다. 경쟁과 효율이 모든 것을 평가하는 시대다. 우리는 자꾸만 남과 비교하며 더 나아가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 길 끝에는 진정한 평화도 기쁨도 없다. 오히려 그렇게 놓쳐버린 시간들 속에서 진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작은 친절, 진심 어린 대화, 함께한 시간들, 이런 것들이 우리를 사람답게 하고 하느님을 닮게 한다. 다시 없는 존재로 다시 없는 하루를 살아내보자. 감사함과 소중함으로….
그런데 우리는 이 소중한 하루를 때로는 그냥 무심히 흘려보내 버린다. 익숙함에 묻혀 소중함을 잊고 바쁨에 쫓겨 의미를 잃어버리곤 한다. 사람과의 만남도 형식이 되고 감사와 기쁨보다는 비교와 불만이 앞설 때가 많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나면 문득 ‘이게 아닌데…’하며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그때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했을까’, ‘그 사람을 좀 더 따뜻하게 대해줄 것을…’. 하지만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지나버린 하루도 다시 살아낼 수 없다. 습관적으로 흘려보낸 하루를 마주하며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며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이 선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외쳐본다.
빛을 바라보고 비를 온몸으로 맞아보며 바람의 흐름을 느끼고 사랑스러운 눈빛을 마주하고 정성이 깃든 음식을 맛보며 조건 없이 사랑하고 무작정 기다려주고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지금, 우리는 가장 귀한 존재와 시간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당신 삶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보여주셨다. 병과 악으로 지친 이들을 치유해 주시고 굶주리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셨고 작은 이들을 만나시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빛과 희망이 되셨다. 다시 없는 존재의 삶을 보여주셨고 하루의 삶을 다시 없는 하루처럼 그리고 만나는 이들을 모두 다시 없는 존재처럼 대하셨다.
그렇다. 우리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고 대했는지에 따라 그 하루는 세상의 빛이 될 수도 어둠에 묻혀버릴 수도 있다. 경쟁과 효율이 모든 것을 평가하는 시대다. 우리는 자꾸만 남과 비교하며 더 나아가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 길 끝에는 진정한 평화도 기쁨도 없다. 오히려 그렇게 놓쳐버린 시간들 속에서 진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작은 친절, 진심 어린 대화, 함께한 시간들, 이런 것들이 우리를 사람답게 하고 하느님을 닮게 한다. 다시 없는 존재로 다시 없는 하루를 살아내보자. 감사함과 소중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