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 건축기행-국립김해박물관] 양파처럼 겹겹이 공간…가야 역사 녹여내는 ‘용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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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 건축기행-국립김해박물관] 양파처럼 겹겹이 공간…가야 역사 녹여내는 ‘용광로’
1998년 완공…김수근 철학 계승 故 장세양 건축가 설계
건물 감싼 검은 벽돌, 철광석·숯 형상화 ‘철의 왕국’ 은유
산기슭 자리하며 도로와 개울 등 주변 지형과도 조화
천창의 빛 통해 유물·관람객·시간 공존하는 개념 구현
지난해 리모델링…유물 3723점·최신 연구 자료 한눈에
2025년 07월 21일(월) 19:15
경남 김해시 구지봉 자락에 자리한 국립김해박물관. 건물 전체는 원형으로 설계되었는데 동양의 전통 사상인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을 반영한 것이다.
경남 김해시 구지봉 자락에 자리한 국립김해박물관은 가야 건국 신화의 숨결이 깃든 땅에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축물이다. 박물관은 고(故) 장세양 건축가가 1991년에 설계해 1998년 완공한 건축물로 현대 건축의 거장 김수근 건축가의 철학을 계승한 작품이다.

박물관은 2021년부터 상설전시실 전면 리모델링을 시작해 2022년 2층 재개관에 이어, 지난해 1월 23일 1층까지 새롭게 단장하며 ‘세계유산 가야’라는 이름으로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최신 가야 문화 연구 성과와 발굴 자료를 반영하고 누구나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박물관 중앙홀 전경.
◇‘철의 왕국’, 땅과 대화를 시작하다= 국립김해박물관의 건축 언어는 ‘철의 왕국’ 가야의 정체성을 향한다. 건물을 감싼 검은색 벽돌은 철광석과 숯을 형상화한 듯하며 투박하면서도 묵직한 질감을 통해 가야의 제철 기술과 철의 가치를 은유적으로 전달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녹의 옷을 입는 철판은 제련되는 쇠의 변화를 보여주며 가야 문화의 상징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건물 전체는 원형으로 설계되었는데 이는 동양의 전통 사상인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을 반영한 것이다.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과 땅을 상징하는 사각형 기단부가 조화를 이룬다. 가야의 역사를 담고 있는 박물관이기에 건물 전체를 바라보면 철을 녹이는 용광로를 떠올리게 해 가야의 제철 기술에 대한 상징성을 담아낸 듯하다. 이러한 육중하고 고전적인 형태는 박물관에 웅장하고 강인한 이미지를 부여한다. 장세양 건축의 큰 특성 중 하나는 ‘명확한 경계에 의한 공간 구성’이다. 그는 스승 김수근이 건축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려 했던 것과는 반대로 강력한 외벽을 세워 건축의 영역을 명확히 설정했다. 그리고 그 견고한 경계안으로 ‘또 다른 자연’을 끌어들이는 방식을 취했다. 마치 양파껍질처럼 겹겹이 공간이 연속되는 구조다. 국립박물관의 단단하고 폐쇄적인 외관은 바로 이 특징이 두드러진 것이다. 하지만 건축가의 언어는 땅의 오랜 이야기와 만나 예기치 못한 논쟁을 일으켰다. 박물관이 자리한 곳은 구지봉이라는 거북이가 해반천으로 내려가는 길목. 이 신성한 길을 육중한 검은 건물이 가로막고 초입에 세운 지주는 마치 거북의 앞길에 박아 넣은 말뚝처럼 보인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경남의 현대건축’에 실린 한 구절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거북이가 해반천을 향해 가는데 하필 그곳에 높다란 말뚝을 박아 방해하느냐, 검은색 벽돌이 너무 어둡고 기분 나쁘다’라는 항의에 ‘철의 나라를 표현한 것’이라 설명해 봉변을 면했다는 대목이다. 이를 두고 건축물의 상징성이란 건축가의 순수한 의도였을까, 혹은 예상치 못한 반발에 대한 임시방편 설명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실없는 웃음이 나온다.

박물관에는 또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다. 가야 사람들이 신성시하던 구지봉 기슭에 자리하면서 동시에 주변 도로와 개울, 고속도로와 인접해 있다. 장세양 건축가는 주변의 자연스러운 구릉과 지형을 고려해 건물을 대지 속에 배치했다. 이는 스승인 김수근 건축가의 철학을 계승하려고 했던 노력도 보인다. 박물관이 수로왕릉을 비롯한 인근 유적들을 관람하는 출발점이자 현재 문화를 체험하는 ‘문화의 거리’의 종착점 역할을 하도록 의도된 것이다.

박물관 외부 전경.
◇움직임, 빛 그리고 공간 교차= 장세양 건축가의 두 번째 특징은 ‘중심 공간에 의한 공간 구성’이다. 장세양은 박물관 건축에서 ‘빛’을 품은 중정이나 아트리움을 통해 과거의 유물과 현재의 시간이 공존하는 개념을 구현했다고 한다. 건물 외부에서는 극도로 절제됐던 창이 내부로 들어서면 천창과 틈새를 통해 빛의 향연을 펼친다. 빛을 단순한 조명이 아닌 유물과 관람객, 그리고 시간을 잇는 매개체로 활용한 것이다. 박물관 심장부에는 정사각형 형태의 빛으로 가득 차는 공간이 자리해 내부 분위기를 형성한다. 천창에는 축제, 환영의 의미가 담긴 전통의 오방색을 채웠다. 이 중심 공간이 건축의 모든 이야기를 묶어내는 듯하다.

박물관은 ‘이너 코트’와 ‘선큰 가든’ 등 다양한 형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너 코트’는 건물 내부의 안뜰로서 차분한 분위기를 제공하며 ‘선큰 가든’은 지표면 아래에 위치해 개방감을 제공하고 관람객에게 외부와의 새로운 시각적 연결을 제공한다. 다만 ‘선큰 가든’은 건축적 의미로는 뛰어났지만 현실에서는 벤치와 에어컨 실외기가 자리 잡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박물관 외부.
장세양 건축가의 또 다른 특징은 ‘움직임을 통한 공간 구성’이다. 사람의 움직임을 통해 공간의 변화를 체험하게 만드는 핵심 장치다. 관람객은 외부에서 내부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김해박물관은 시간과 장소의 영역성을 상징하는 울타리로서 원형 모티브를 도입했다. 시간과 장소의 경계인 원형의 울타리를 통과하게 되면 과거로의 회귀를 위한 과정적 공간인 내정, 빛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만나는 박스형 광정, 그리고 공간의 연속성은 문화적 체험을 더욱 상승시켜 준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간의 흐름을 만들려던 건축가의 깊은 의도는 현실의 벽과 마주했다는 비평이 존재한다. ‘경남의 현대건축’에 따르면 본래 의도한 동선이 관람객에게는 복잡한 미로로 받아들여 졌고 결국 박물관 측이 개관 후 설계 의도와는 반대로 출입구를 맞바꾸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 “건축가의 심오한 뜻이 관람객의 직관적인 발걸음과 온전히 만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평하며 “건축가의 아름다운 독단이 평범한 관람객이 ‘문을 찾는’ 오랜 관습의 힘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국립김해박물관은 이제 건축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 건축가의 숭고한 의도, 땅의 목소리와의 충돌, 현실과의 타협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시간의 켜가 쌓인 건축물은 다양성과 역동성, 개방성이 깃든 가야의 정심을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상설전시실 입구 로비.
◇새로운 심장, 3723점의 유물로 펼치는 가야사= 논쟁과 타협의 역사를 온몸에 새긴 건축물은 이제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유산 가야’의 가치를 품는 그릇이 됐다. 전면 리모델링을 마친 내부는 장벽 없는(barrier free) 동선으로 현실적 편의성을 더했고 함안 말이산 말갑옷(보물) 등 3723점의 유물은 최신 면진 진열장 안에서 역사의 빛을 발한다. 1층 ‘가야로 가는 길’은 가야 이전의 삶부터 신라에 흡수되기까지 가야의 흥망성쇠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좇는다. 해상 교육의 중심이었던 가야의 발전성과 쇠퇴의 과정을 다양한 유물이 증언한다. 2층 ‘가야와 가야 사람들’은 가야 문화의 속살을 깊이 있게 보여준다. 금동관과 금귀걸이에서 가야인의 멋을 보고, 생활용품과 건축 부재를 통해 질박했던 삶을 상상하게 한다. 특히 ‘철의 왕국, 가야’에 전시된 함안 마갑총의 말갑옷(보물)과 다양한 철제 갑옷은 논쟁의 대상이었던 검은 외벽의 의미를 실물로써 웅변한다. 마지막으로 ‘해상왕국, 가야’의 봉황동 출토 선박은 바다를 통해 세계와 교류했던 가야의 개방성을 느끼게 해준다.

/박준영 기자 bk6041@knnews.co.kr

/사진=성승건 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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