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 건축기행] 미술관에 무등산을 들이다…자연·예술·건축의 ‘교감’
[광주 무등산 의재미술관]
한국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 예술 혼 품은 곳
2001년 완공…‘소규모 다기능 건축의 백미’ 호평
경사진 길따라 긴 유리벽, 실내로 무등산 끌어들여
옛 농업학교 수리한 삼애헌, 차 교육장으로 활용
선생이 30년 기거하던 춘설헌·5만평 녹차밭 등
‘의재루트’ 5시간 소요…동구, 2027년까지 명소화
한국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 예술 혼 품은 곳
2001년 완공…‘소규모 다기능 건축의 백미’ 호평
경사진 길따라 긴 유리벽, 실내로 무등산 끌어들여
옛 농업학교 수리한 삼애헌, 차 교육장으로 활용
선생이 30년 기거하던 춘설헌·5만평 녹차밭 등
‘의재루트’ 5시간 소요…동구, 2027년까지 명소화
![]() 지하 2층 전시실에서는 유리창 너머로 무등산이 보인다. |
미술관 안으로 무등산이 가득 들어왔다. 초봄의 연둣빛을 지나 6월의 짙푸른 녹음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울긋불긋 단풍이 들때, 나뭇 가지에 흰눈이 내려 앉을 때, 미술관 안과 밖에서 바라다 보이는 무등산은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보이고 미술관은 그 풍경을 그대로 품는다. 안과 밖의 경계가 없고, 자연의 흐름을 거역하지 않는 의재미술관은 무등산에 오롯이 안겨 있다.
◇남종화의 대가 허백련을 기리다
한국 남종화 문인화의 마지막 대가 의재(毅齋) 허백련(1891~1977)의 삶과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의재미술관은 유네스코 세계 지질 공원인 무등산 국립공원에 터를 잡았다. 무등산 자락은 의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머물렀던 곳으로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1891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의재는 소치 허련의 뒤를 잇는 우리나라 남종 문인화의 대가다. 1938년부터 광주에 정착한 그는 산수화와 사군자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하고 연진회를 조직해 제자들을 가르치며 한국화의 명맥을 이었다. 겸허하고 청빈한 사상가이자 계몽가이기도 했던 그는 농업기술학교를 설립, 교육에 힘썼고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자는 삼애사상(三愛思想)을 제창했다.
의재는 차(茶)와 인연이 깊다. 일본인으로부터 인수한 무등 산 기슭의 차밭을 일군 그는 수확한 차에 ‘춘설차’라는 이름을 짓고 차 보급에 나섰다. 의재는 “차를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고 그 맑은 정신으로 일을 해야 실수가 없다”고 믿었기에 언제나 차와 함께였고 제자, 지인들에게 차를 나누며 인연을 이어갔다.
의재미술관은 주차장에서 20여분 걸어 올라가야 만나는 수고로운 곳이다. 의재가 수도 없이 걸었을 증심사 계곡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담한 현대식 건물을 만난다. 미술관의 위치는 의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가 거주하며 화업을 이어갔던 춘설헌과 묘소가 지척이고, 미술관 뒤편으로는 춘설 녹차밭이 자리하고 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미술관
오래된 아름드리 팽나무가 자리한 미술관 입구를 지나 비스듬한 경사길을 걷다 보면 전시동이 나온다. 미술관은 등산로 옆 경사진 길을 따라 자연스레 배치돼 있다. 돌담을 쌓아 경계를 표시한 미술관은 화려한 건축이 주를 이루는 요즘 풍경과 비교할 때 규모도 작고 소박하다. 대지 면적 1824평, 건축 면적 246평의 미술관은 지상 2층, 지상 1층 규모의 전시동과 옛 농업학교 강당을 리모델링한 삼애헌, 관리동 등 3개 동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2001년 완공된 미술관은 아시안게임 선수촌 및 기념 공원, 선유도공원, 소마미술관 등을 설계한 조성룡 건축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종규 교수의 공동 작품이다. 미술관은 자연과 어우러진 건물로, ‘소규모 다기능 건축의 백미’라는 호평을 받으며 그 해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미술관 개관 20주년, 허백련 탄생 130주년이던 지난 2021년 한 차례 리노베이션을 거쳤다.
의재미술관은 노출콘크리트와 목재, 유리로 마감한 건물이다. 미술관은 비스듬한 경사를 그대로 이용했다. 증심사 계곡 등산로 옆 경사진 길을 따라 직렬로 배치된 세 개의 건물은 돌담으로 구성된 긴 기단 위에 놓여 있다. 산비탈에 세워진 만큼 사각형의 형태가 아닌 아래쪽이 더 넓고 위쪽이 더 좁은 사다리꼴 형태로 건축되어 있다. 건물 외관에서 눈에 띄는 건 병풍처럼 세로로 길게 나눈 유리벽으로, 이 모습은 실내 공간에서도 계속된다. 전시관 입구에서부터 휴식 공간인 로비까지 길게 이어진 여섯 폭 병풍 모양의 유리창은 무등산의 경치를 그대로 끌어들인다. 빨강, 파랑, 초록 등 옻칠로 마감한 다양한 색감의 테이블이 놓여 있는 로비는 사계절을 만끽하며 춘설차를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고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의재미술관의 전시장은 여타 미술관의 전시장 구조와 다르다. 가로로 긴 직사각형 형태로 1, 2 전시실 사이에 작은 계단을 둬 오르내리도록했다. 2전시실에는 생전의 소박했던 춘설헌 작업실을 재현해 선생이 쓰던 붓, 벼루, 다기, 가구 등을 전시해 두었다. 2전시실에서 의재 상설관인 3전시실로 이어지는 통로는 미술관에서 인상적인 곳 중 하나다. 마치 산길을 걷는 듯한 반투명 경사로를 따라 걷다 보면 ‘25시’의 작가 게오르규 등 의재가 교류했던 인물들을 만날 수 있으며 한복 차림으로 환한 웃음을 터트리는 선생의 대형 사진이 관람객을 전시장으로 이끈다.
의재와 제자, 후손들의 작품 등 모두 350여점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은 1년에 4차례 기획전을 연다. 현재는 ‘꽃피고 물 흐르니-의재 목재 형제전’(8월31일까지)을 진행중이며 상설전시관에서는 의재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특히 20세기 초 광주의 근현대사를 이끌었던 석아 최원순, 오방 최흥종, 의재 허백련의 남다른 사연이 담긴 ‘석아정·오방정 현판’(광주시 문화유산 자료)은 흥미로운 자료다.
전시동과 관리동 사이에 위치한 삼애헌은 예전 농업학교 강당을 수리한 공간으로 서까래 등 옛 모습을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해 차 교육장과 행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 밖으로 나와 둘러보는 전시동은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전시동 사이 경사로를 따라 걷다 건물 끝에 서면 미술관 사이로 멀리 무등산 새인봉이 바라다 보이는데, 특히 새인봉 위로 달이 뜨는 모습과 미술관이 어우러진 풍경은 많은 이들이 꼭 사진에 담고 싶어한다.
◇춘설헌과 의재 묘지
무등산에는 의재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많다. 증심사 계곡을 사이에 두고 미술관 맞은 편에 자리한 춘설헌은 유서가 깊은 곳이다. 의재는 타계하던 1977년까지 30년간 이곳에 기거하며 작품 활동을 했고 루이제 린저, 최남선 등 국내외 유명인사들과 교류를 이어갔다.
춘설헌은 1919년 2·8독립선언의 중심 인물로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했던 석아 최원순이 요양했던 곳이자 해방 후 오방 최흥종이 살았던 장소다. 의재는 이 거처를 벽돌집으로 고쳐 사용한 뒤 나중에 별채를 새로 지어 연결해 기거했다.
춘설헌 옆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의재 묘소가 나온다. 묘비에는 ‘한 평생 산수를 그리고 산수 속에 누우신 이여’라는 이은상의 시가 새겨져 있다. 또 의재미술관 뒤로 돌아가는 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5만평 규모의 녹차밭을 만날 수 있다.
한편 현재 광주시 동구는 춘설차밭과 의재의 혼이 살아 있는 의재미술관 인근, 광풍각 일대 등 의재 문화유적지를 복원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관광명소로 꾸리는 사업을 진행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접목 야행관광 공간 조성사업’을 통해 오는 2027년까지 280억원이 투입되는 프로젝트다.
현재 미술관이 추천하는 ‘광주무등산 의재루트’는 증심사 계곡 입구 주차장에서 시작해 의재미술관, 관풍대, 증심사, 춘설차밭, 약사사 등을 아우르는 구간으로 미술관에서의 감상시간을 포함해 5시간 정도 소요된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한국 남종화 문인화의 마지막 대가 의재(毅齋) 허백련(1891~1977)의 삶과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의재미술관은 유네스코 세계 지질 공원인 무등산 국립공원에 터를 잡았다. 무등산 자락은 의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머물렀던 곳으로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1891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의재는 소치 허련의 뒤를 잇는 우리나라 남종 문인화의 대가다. 1938년부터 광주에 정착한 그는 산수화와 사군자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하고 연진회를 조직해 제자들을 가르치며 한국화의 명맥을 이었다. 겸허하고 청빈한 사상가이자 계몽가이기도 했던 그는 농업기술학교를 설립, 교육에 힘썼고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자는 삼애사상(三愛思想)을 제창했다.
의재미술관은 주차장에서 20여분 걸어 올라가야 만나는 수고로운 곳이다. 의재가 수도 없이 걸었을 증심사 계곡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담한 현대식 건물을 만난다. 미술관의 위치는 의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가 거주하며 화업을 이어갔던 춘설헌과 묘소가 지척이고, 미술관 뒤편으로는 춘설 녹차밭이 자리하고 있다.
![]() 의재미술관 전시동 바깥 풍경. |
오래된 아름드리 팽나무가 자리한 미술관 입구를 지나 비스듬한 경사길을 걷다 보면 전시동이 나온다. 미술관은 등산로 옆 경사진 길을 따라 자연스레 배치돼 있다. 돌담을 쌓아 경계를 표시한 미술관은 화려한 건축이 주를 이루는 요즘 풍경과 비교할 때 규모도 작고 소박하다. 대지 면적 1824평, 건축 면적 246평의 미술관은 지상 2층, 지상 1층 규모의 전시동과 옛 농업학교 강당을 리모델링한 삼애헌, 관리동 등 3개 동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2001년 완공된 미술관은 아시안게임 선수촌 및 기념 공원, 선유도공원, 소마미술관 등을 설계한 조성룡 건축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종규 교수의 공동 작품이다. 미술관은 자연과 어우러진 건물로, ‘소규모 다기능 건축의 백미’라는 호평을 받으며 그 해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미술관 개관 20주년, 허백련 탄생 130주년이던 지난 2021년 한 차례 리노베이션을 거쳤다.
의재미술관은 노출콘크리트와 목재, 유리로 마감한 건물이다. 미술관은 비스듬한 경사를 그대로 이용했다. 증심사 계곡 등산로 옆 경사진 길을 따라 직렬로 배치된 세 개의 건물은 돌담으로 구성된 긴 기단 위에 놓여 있다. 산비탈에 세워진 만큼 사각형의 형태가 아닌 아래쪽이 더 넓고 위쪽이 더 좁은 사다리꼴 형태로 건축되어 있다. 건물 외관에서 눈에 띄는 건 병풍처럼 세로로 길게 나눈 유리벽으로, 이 모습은 실내 공간에서도 계속된다. 전시관 입구에서부터 휴식 공간인 로비까지 길게 이어진 여섯 폭 병풍 모양의 유리창은 무등산의 경치를 그대로 끌어들인다. 빨강, 파랑, 초록 등 옻칠로 마감한 다양한 색감의 테이블이 놓여 있는 로비는 사계절을 만끽하며 춘설차를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고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다.
![]() 의재미술관 전경. |
의재와 제자, 후손들의 작품 등 모두 350여점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은 1년에 4차례 기획전을 연다. 현재는 ‘꽃피고 물 흐르니-의재 목재 형제전’(8월31일까지)을 진행중이며 상설전시관에서는 의재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특히 20세기 초 광주의 근현대사를 이끌었던 석아 최원순, 오방 최흥종, 의재 허백련의 남다른 사연이 담긴 ‘석아정·오방정 현판’(광주시 문화유산 자료)은 흥미로운 자료다.
전시동과 관리동 사이에 위치한 삼애헌은 예전 농업학교 강당을 수리한 공간으로 서까래 등 옛 모습을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해 차 교육장과 행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 밖으로 나와 둘러보는 전시동은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전시동 사이 경사로를 따라 걷다 건물 끝에 서면 미술관 사이로 멀리 무등산 새인봉이 바라다 보이는데, 특히 새인봉 위로 달이 뜨는 모습과 미술관이 어우러진 풍경은 많은 이들이 꼭 사진에 담고 싶어한다.
![]() 의재가 머물며 화업을 이룬 무등산 춘설헌. |
무등산에는 의재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많다. 증심사 계곡을 사이에 두고 미술관 맞은 편에 자리한 춘설헌은 유서가 깊은 곳이다. 의재는 타계하던 1977년까지 30년간 이곳에 기거하며 작품 활동을 했고 루이제 린저, 최남선 등 국내외 유명인사들과 교류를 이어갔다.
춘설헌은 1919년 2·8독립선언의 중심 인물로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했던 석아 최원순이 요양했던 곳이자 해방 후 오방 최흥종이 살았던 장소다. 의재는 이 거처를 벽돌집으로 고쳐 사용한 뒤 나중에 별채를 새로 지어 연결해 기거했다.
춘설헌 옆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의재 묘소가 나온다. 묘비에는 ‘한 평생 산수를 그리고 산수 속에 누우신 이여’라는 이은상의 시가 새겨져 있다. 또 의재미술관 뒤로 돌아가는 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5만평 규모의 녹차밭을 만날 수 있다.
한편 현재 광주시 동구는 춘설차밭과 의재의 혼이 살아 있는 의재미술관 인근, 광풍각 일대 등 의재 문화유적지를 복원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관광명소로 꾸리는 사업을 진행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접목 야행관광 공간 조성사업’을 통해 오는 2027년까지 280억원이 투입되는 프로젝트다.
현재 미술관이 추천하는 ‘광주무등산 의재루트’는 증심사 계곡 입구 주차장에서 시작해 의재미술관, 관풍대, 증심사, 춘설차밭, 약사사 등을 아우르는 구간으로 미술관에서의 감상시간을 포함해 5시간 정도 소요된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