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 가정이 더 두려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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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5월, 가정이 더 두려운 사람들
광주·전남 가정폭력 증가세…부모 외 자녀·배우자 등 다양한 폭력도
폭력 가정서 성장한 자녀 폭력 대물림에 장애인들 피해 사례도 반복
초기 개입으로 분리 보호하고 쉼터 신설 등 피해자 보호망 확대 필요
2025년 05월 06일(화) 19:40
/클립아트코리아
# 20대 직장인 여성 A(광주시 광산구 송정동)씨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받은 강압적인 통제와 폭언을 못 이겨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했지만,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아버지는 직장에 전화하거나 집 주변을 찾아오는 등 사생활 침해를 이어갔고, A씨는 성인이 되고도 평생 반복돼 온 신체적 폭력이 계속해서 떠올라 저항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A씨는 결국 최근 광주 지구촌가정성폭력상담소에 가정폭력 상담을 요청했다.



# 60대 여성 B(광주시 북구 두암동)씨는 40대 딸로부터 반복적인 폭언과 정서적·신체적 위협을 받고 있다.

B씨는 과거 딸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가했다는 이유로 이제는 B씨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피해자가 됐다. B씨는 최근 주변 지인의 소개로 가정폭력 상담을 받게 돼 딸로부터 분리 보호받을 것을 권고받았지만, 딸에 대한 정서적 의존과 사회적 낙인이 우려돼 분리 보호를 극구 거부하고 있다.

‘가정의 달’ 5월이지만, 가정에서조차 몸과 마음을 보호받지 못하는 ‘가정폭력 피해’가 지역 사회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광주·전남 지역의 가정폭력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피해 양상도 전통적인 부모의 폭력뿐 아니라 자녀, 배우자, 형제 등 다양한 관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지자체 등이 쉼터 신설 등 피해자 보호망 확대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광주경찰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0~2024년) 광주 지역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총 2만8101건으로, 연평균 5620건에 달했다.

연도별로는 2020년 4774건→2021년 5125건→2022년 5672건→2023년 6224건→2024년 6306건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같은 기간 전남에서도 총 3만6221건(연평균 7244건)의 가정폭력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연도별로는 2020년 6836건→2021년 7636건→2022년 7717건→2023년 7009건→2024년 7023건으로 줄지 않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심한 가정폭력으로 경찰에 검거되는 경우도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광주에서는 해마다 1126명(2020년), 1094명(2021년), 953명(2022년), 971명(2023년), 747명(2024년) 등 총 4891명이 검거됐으며 이 중 49명은 구속됐다.

같은 기간 전남에서는 각각 1730명(2020년), 1825명(2021년), 1813명(2022년), 1965명(2023년), 1611명(2024년) 등 총 8944명이 검거됐으며 이 중 86명이 구속됐다.

지역 상담사들은 가정폭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빠른 초기 개입’을 통한 분리·보호 조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초기 개입이 늦어질수록 분리·보호 조치도 어려워지며, 일반적으로 피해자들이 상담소를 찾을 때는 이미 장기간 무기력과 두려움을 겪은 상태라 상담보다도 감정의 수용과 공감을 먼저 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폭력 가정에서 피해 받으며 자란 자녀가 성장 후 다시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2차 가정폭력이 발생하면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폭력의 대물림’ 사례도 반복되고 있어 빠른 개입이 절실하다는 것이 상담사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광주·전남에서 ‘가족쉼터’, ‘학대아동보호시설’을 확충하는 등 가정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 지원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광주의 가정폭력피해자지원시설쉼터는 2022년 12월 기준 4곳, 전남 또한 4곳뿐이다.

보호시설 부족 현상은 특히 장애인 가정폭력 피해자들 사이에서 심각하다.

쉼터 입소 시 ‘자녀 돌봄 가능 여부’나 ‘공동 가사 참여 가능성’ 등을 사전에 따져 보기 때문에 장애 여성의 경우 쉼터 입소 자체가 제한되는 사례가 많고, 자녀가 동일하게 발달장애를 가진 경우 연계가 더딘 ‘이중 사각지대’까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상담소에 찾아온 지적장애 여성 C(광주시 북구)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C씨는 남편의 폭력에 수년 간 시달리다 두 명의 자녀와 함께 쉼터로 달려갔지만, 모자는 ‘생이별’을 해야 했다. C씨는 남편과 분리되어 자녀와 함께 안전한 공간에 보호받기를 요청했지만, ‘쉼터 부족’을 이유로 거부당하면서 C씨는 장애여성쉼터에, 자녀들은 청소년쉼터에 각각 분리 입소하게 된 것이다.

이밖에 장애 여성은 대다수 지적장애를 가진 경우가 많아 피해 사실을 직접 진술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늦어지는 데다가 쉼터 연계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광주 장애인 가정상담소(실로암사람들)는 장애인 피해자 10명 중 6명 정도는 배우자가 아닌 부모, 형제 등 원가족에 의한 폭력에 노출돼 있어 피해가 장기화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광주 지역의 한 전문상담가는 “폭력은 가족이라는 폐쇄된 관계 안에서 발생해 외부 노출이 어려울 뿐 아니라, 피해자 스스로도 ‘가족 유지’라는 사회적 압박 때문에 오랜 시간 참는 경향이 강하다”며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피해자들의 적극적인 보호와 회복을 위해 지자체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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