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품질관리사 김대성 기자의 ‘농사만사’] 일기 쓰듯 작성한 농사 교과서 영농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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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품질관리사 김대성 기자의 ‘농사만사’] 일기 쓰듯 작성한 농사 교과서 영농일지
형식 내용 달라도 충분히 유용한 자료…모바일 앱도 나와
2025년 01월 05일(일) 19:20
/클립아트코리아
며칠 전 청소를 하다 작은 방 한쪽에 팽개쳐 있는 영농일지를 확인하고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농사 등 세상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을 업으로 한다는 자가 메모하고 글을 쓰는 것을 소홀히 했다는 자괴감에서다.

우리 조상들은 농사일은 물론 농사에 대한 기록에 소홀함이 없었다. 1960년대 필자의 아버지 세대에만 해도 조그만한 노트나 달력에 농사와 관련해 기상은 물론 씨 뿌리고 거름 주고 방제했던 상황을 빼곡하게 적었던 것이 일상이었다.

최근 울주에 살았던 한 어르신의 농사일기를 서민 생활사 연구자 고광민 선생이 풀어쓴 ‘고개만당에서 하늘을 보다’를 본적이 있는데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울주 지역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삶을 꾸려온 어르신의 농사일기를 통해 울주의 서민 생활사를 살핀 책이다. 비망록처럼 작성된 일기를 하나하나 풀이해 농법, 물가, 풍습, 언어 등 당시의 시대상과 생활사를 담아냈다.

원저자인 김홍섭 어르신은 1955년 10월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60여 년을 농사 등 소소한 일상을 기록해 왔는데, 그 양이 60권이 넘었다고 한다. 이렇게 김 어르신처럼 일기 쓰듯 작성한 농사자료가 전국에 수없이 많을 듯하다.

일기는 아니지만, 조선 시대 후기 정학유가 지은 월령체 가사(歌辭)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보면 우리 조상이 농사의 기록에 얼마나 진심이었나 알 수 있다. 이 노래는 농가에서 1년 동안 해야 할 농사에 관한 실천 사항과 철마다 다가오는 풍속과 지켜야 할 것들을 달에 따라 읊은 월령체(달거리) 가사이다. 머리 노래에 이어 정월령부터 12월령까지 모두 13연이다. 월령(月令)이란 달거리라고도 하는 것으로 열두 달에 행할 일을 말하며 주기전승(週期傳承)의 의례적인 정사(政事)와 의식, 농가 행사 등을 다달이 구별해 기록하는 일종의 월중 행사표라고 할 수 있다.

“1월은 초봄이라 입춘, 우수의 절기로다. 산 속 골짜기에는 얼음과 눈이 남아 있으나, 넓은 들과 벌판에는 경치가 변하기 시작하도다”라로 시작하는 가사는 농촌 생활과 관련된 구체적 어휘가 풍부하게 나타난다는 점과 세시 풍속을 기록해 놓은 월령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짜임새가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영농일지의 작성 방식과 내용에도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다. 달력과 노트에 간단히 메모하던 것이 작업 일지로 구색을 갖춰 책자 형식으로 나와 있다. 영농일지는 작물 재배 작업에 따른 그날그날의 작물 상태를 기록하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라고 할 수 있는데, 작업 일자를 비롯해 작물의 크기, 잎의 변화 등 작물의 상태를 빠짐없이 기록해야 한다.

최근에는 웹 농사일지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농협중앙회가 제공하는 모바일 앱 ‘NH오늘농사’다.

농협이 개발한 디지털 종합영농플랫폼으로 관심 있는 작물의 정보는 물론 가격 정보와 전망, 병해충 정보와 영농기술, 출하 배차 정보 등을 우선으로 알려준다. 온라인으로 영농일지를 작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내용을 공익직불금 증빙자료로 바로 제출할 수도 있다. 받을 수 있는 농업보조금이나 영농기술교육 등을 추천해주기도 하며, 로컬푸드 납품 농가는 판매 및 정산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소모임 게시판 등 커뮤니티 기능도 수반하고 있다.

매일 일기 쓰듯 농사일지를 작성하는 일은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그렇지만 내가 쓴 메모나 일지가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가 되고, 다른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준다며 좋은 일 아니겠는가. 혹여 이 기록들 일부나마 후세에 보전돼 유익하게 쓰인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고 말이다.

/big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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