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관 기행] 자연을 들인 미술관… 예술·건축이 빚은 사색의 공간
  전체메뉴
[세계 미술관 기행] 자연을 들인 미술관… 예술·건축이 빚은 사색의 공간
<9> 호안 미로 미술관
미로, 피카소·가우디와 스페인이 배출한 ‘세기의 예술가’
예술가들 자연과 교감하며 영감 얻는 ‘창작의 산실’ 건립
미로 대표작·마르셀 뒤샹 작품 등 1만4000여점 소장
순백의 미술관, 곳곳의 조각 작품·자연과 어울려 환상
관광청, 시티투어 핵심코스 운영…도시 빛낸 브랜드로
2024년 12월 01일(일) 20:45
미로의 대표작인 ‘소녀의 초상화’ (The Portrait of young girl’s·1919년)
벨라스케스, 피카소, 고야, 달리….

세계 미술사에 한 획을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스페인 출신의 화가라는 점이다. 여기에 이들의 뒤를 잇는 또 하나의 거장이 있다. 바로 ‘그림으로 시를 쓰는 ’ 초현실주의 대가 호안 미로(1893~1893)다. 피카소, 달리와 함께 혁신적인 화풍으로 20세기 현대미술의 스펙트럼을 넓힌 선구자다.

특히 피카소(1881~1974)와는 바르셀로나 출신의 동향(同鄕)이라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 두 사람은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천재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와 함께 스페인의 자긍심이자 브랜드이다. 그도 그럴것이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세기의 예술가 3명을 동시대에 배출한 곳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마드리드를 행정수도로, 바로셀로나를 문화수도로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매년 전 세계에서 800여 만 명이 다녀가는 바르셀로나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건 이들의 발자취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곳이다.

호안 미로를 만나려면 바르셀로나 외곽의 ‘호안 미로 미술관’(Fundacio Joan Miro, 이하 미로미술관)으로 가면 된다. ‘Fundacio’는 영어의 ‘Foundation’(재단)을 뜻한다. 우리에게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토너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의 영광을 안았던 몬주익 언덕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보로 10분 거리에는 바로셀로나 주도인 카탈루니아 박물관이 인접해 있어 연중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미술관 앞에 다다르면 가장 먼저 미래의 도시에 온 듯한 모던한 건물이 눈에 띈다. 마치 무한한 예술적 상상력을 품고 있는 순백의 캔버스 같다.

‘하늘색 금’(The gold of the Azure·1967년)
무엇보다 화이트톤과 기하학적인 외관이 돋보이는 미술관은 푸른 하늘과 대조를 이뤄 강렬한 인상을 준다. 특히 미술관 정원에 자리한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의 붉은색 조형물 ‘4개의 날개’(Four Wings, 1972년 작)는 건물, 하늘, 잔디 등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조형미를 뽐낸다.

미술관을 설계한 주인공은 미로의 오랜 절친인 건축가 호세 루이스셀트(Josep Lluis Sert)다. 아담한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던 미로는 1968년 젊은 예술가들이 다양한 현대미술을 경험하고 자연과 교감을 나누며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창작의 산실’을 건립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현대건축의 거장인 스위스 출신의 르 코르뷔지에 밑에서 수학한 루이스셀트는 미로의 제안을 받아 들여 예술가는 물론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플랫폼’을 디자인했다. 미술관(Museo)이 아닌 ‘호안 미로 재단’으로 간판을 단 건 공간의 공적 기능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건축가는 이같은 미로의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기존의 미술관과는 달리 전시실을 1층에 집중 배치하고 계단을 이용해 2층 루프탑으로 올라가는 동선으로 설계했다. 말하자면 미술관을 미로의 예술작품과 건물, 자연이 교감하는 풍경(landscape)의 일부로 그려낸 것이다. 7년간의 공정을 거친 끝에 미로 미술관은 마침내 1975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일까. 미술관에 들어서면 예술과 자연, 사람이 하나가 되는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된다. 1층 전시실은 높은 층고와 마루바닥, 화려한 컬렉션으로 꾸며져 자연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을 할 정도다. 화가이자 조각가, 도예가 등 ‘멀티 플레이어’였던 미로의 예술세계를 접할 수 있는 회화, 조각, 도자기 작품들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에 자리한 호안 미로 미술관은 지난 1975년 초현실주의 화가 미로가 젊은 예술가들이 현대미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사재를 털어 건립한 곳이다.
오롯이 미로의 사재를 털어 건립된 이 곳에는 ‘소녀의 초상화’, ‘자유를 꿈꾸는 여인’, ‘아침 별’, ‘새’, ‘하늘색의 금’ 등 그의 대표작 300여 점을 비롯해 유명 화가인 막스 어른스트, 마르셀 뒤샹, 앙리 마티스 등의 작품과 아카이브 등 1만 4000여 점이 소장돼 있다. 2층 규모로 22개의 전시실이 들어선 미술관은 주제별로 미로의 작품과 지난 2011년 미로 작품 32점을 쾌척한 일본 수집가 카주마사 카수타의 컬렉션으로 꾸며졌다.

특히 인상적인 건 알록달록한 색감과 낙서처럼 그어진 선들의 그림이다. ‘시인의 영혼을 가진 화가’로 불리는 미로는 특유의 시적 상상력을 천진난만하고 자유분방한 화폭으로 담아냈다. 단순화된 기호와 상징으로 자신의 사고를 붓가는 대로 그린 오토마티즘(Automatism)를 선보인 것이다. 파리에 머물면서 초현실주의 작가는 물론 다양한 시인들과 교류하며 쌓은 회화 기법이다. 전시실에 걸려 있는 그림 앞에 서면 마치 한편의 시를 읽는 것 같은 잔잔한 감동이 밀려 든다.

미로 미술관 정문 앞에 설치된 알렉산더 칼더의 ‘4개의 날개’(Four Wings·1972년)
초현실주의 화가로 유명한 미로는 달리, 피카소 등을 통해 포비즘(야수파), 큐비즘(입체파)의 여러 미술양식을 접했다. 이는 회화, 판화, 조각, 도예 등 다양한 장르에서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스페인 동부의 원시 동굴화, 아라비아 문학, 이슬람 장식, 로코코의 우아한 스타일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가 도예나 조각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인 건 성장 배경과 관련이 깊다. 바르셀로나 인근 몬테로이그에서 보석상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깨 너머로 세공을 배웠으며 14세때부터 본격적으로 프란시스코 갈리에게 미술을 배웠다. 25살 때인 1918년 첫 개인전을 열었지만 혹평을 받자 파리로 건너가 새로운 화풍을 받아들이는 등 세계적인 거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와 관련 피카소가 파리에서 미로의 천재성을 간파해 고향 후배인 그를 평생 응원하고,‘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소설가 헤밍웨이가 미로의 ‘농장’을 6개월이나 기다려 구매할 정도로 우정이 깊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미술관의 루프탑에 자리한 미로의 ‘달, 해, 별의 형상’(Model for Moon, sun and one star·1968년)
미로 미술관의 압권은 다름 아닌 자연과의 조화다. 1층의 계단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면 바르셀로나 해안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루프탑이 나온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야외 공간으로 나온 관람객들은 순백의 건물과 자연, 곳곳에 놓여진 미로의 조각 작품들을 배경으로 인증샷 찍기에 바쁘다. 옥상의 조각들 역시 전시실의 그림들을 닮았다. 빨강, 노랑, 파랑 등 원색으로 마감된 조형물은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미술관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특히 이 곳에서 바라다 본 몬주익 광장과 에머럴듯빛 해변은 ‘그 어디에도 없는’, 또 하나의 걸작이다.

한편 바르셀로나 관광청은 가우디 성당, 미로 미술관 등과 연계한 시티투어를, 미로 미술관은 건축물과 컬렉션· 루프탑·정원 등을 둘러보는 별도의 ‘미로 미술관 투어’ 를 운영해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문화자산으로 가꾸어나가고 있다.

/바르셀로나=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