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나들이 시즌 2] “함께 읽으며 성장”… 사람과 사람 잇는 ‘모두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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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나들이 시즌 2] “함께 읽으며 성장”… 사람과 사람 잇는 ‘모두의 서재’
<9> 순천 골목책방 ‘서성이다’
“좋은 책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페미니즘·고전 등 다양한 북클럽 운영
철학·사회·역사 등 인문서적 다양
지역 작가 출간·오월서가 등 별도 공간에
“서점, 연대의식 느끼는 공간 되었으
2024년 07월 02일(화) 10:40
순천 골목책방 ‘서성이다’는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공간을 넘어 책과 사람을 이어주는 장소가 되기를 꿈꾼다.
순천 골목책방 ‘서성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계속 마음 속에 남아있던 단어는 ‘사람’이었다. ‘서성이다’ 역시 서가에 꽂혀있는 수많은 ‘책’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공간’이 책방의 정체성을 보여주지만 무엇보다 책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이 돋보였다. 서점 칠판에 빼곡히 적힌 다양한 독서 모임의 이름을 보니 함께 모여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며 나와, 우리와, 사회에 대해 숱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서성이다’의 방문이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 순천에 놀러갔다 우연히 들렀던 ‘향교 옆 서점’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지난 2000년 지금의 자리인 순천 문화의 거리에 새 둥지를 마련한 책방은 여전히 책으로 소통하며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책방지기 조태양씨는 20년 동안 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서, 논설 수업을 진행했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도 의미있었지만 좋은 책들을 내 나이대 어른들, 더 많은 시민들과 나누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고, 그 뜻을 펼치는 데 서점 만한 게 없었다. “내 서재를 넘어 모두의 서재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그가 서점 문을 연 날은 2018년 10월9일, 한글날이었다.

“한글날 책방을 여는 게 조금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책과 한글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니까요. ‘서성이다’는 말이 이리저리 어슬렁거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잖아요. 인생을 살다보면 목표한 곳을 향해 죽 갈수도 있지만 예상했던 대로 되지 않을 경우도 많지요. 힘들어 주저 앉았을 때, 넘어졌을 때 우리 책방이 위로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넘어진 김에 또 다른 삶의 방향을 찾아보는 것,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만 오른쪽도 보고 왼쪽도 살피며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는 것이 필요한데 그럴 때 우리 책방이 어떤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책방 이름을 ‘서성이다’로 정했습니다.”

서점이 책을 파는 곳을 넘어 ‘책을 함께 읽으며 성장하는 곳’이길 바란 그였기에 문을 열고 두 달 후에 곧바로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6년째 이어지고 있는 ‘서성이다 북클럽’이다. 이후 오전에만 시간이 나는 사람들의 요청으로 ‘오전 북클럽’이 만들어졌고, ‘김지은입니다’ 출간 즈음에는 ‘페미니즘 북클럽’도 꾸려졌다.

‘5월시 필사하기 코너’
글쓰기 모임 ‘시작이 반’, 영화 모임 ‘두고 보자’, ‘나라의 고전북클럽’, 비건 모임 ‘비토피아’, 시짓기 모임 ‘무대인사’ 등도 잇따라 생겼다. 처음에는 책방지기가 거의 모든 모임을 이끌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손님들이 직접 모임을 만들고 리드한다.

“책방을 운영하며 사람들의 관심 분야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참가자들 스스로가 운영자가 돼 활동하니 훨씬 의미있는 것 같아요. 혼자였으면 절대 읽지 않았을 책을 함께 읽게 됐다고, 다양한 책을 읽으며 어떻게 사회와 연결되는지 알게 됐다고 말씀 하실 때면 뿌듯하지요. 나와 가족에서, 나와 사회, 나와 국가로 관심사가 확장되며 사회적 자아, 사회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을 접할 때는 책방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성이다’는 다른 동네 책방에 비해 책이 많은 편이다. 철학, 사회, 역사 등 인문학 책을 골고루 갖추고 있으며 특히 주인장이 시를 좋아하는 터라 시집을 많이 들여놓았다. “시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인지라 손님들에게 시집을 자주 권한다. “시는 삶의 속도를 줄여주기에 속도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짧은 시 한 편 읽으며 자기 삶을 돌아보면 좋겠다”는 마음에서다.

커튼 넘어 작은 방에 들어가면 ‘순천’을 만날 수 있다. 지역 작가들의 책과 순천에 연고를 둔 출판사 ‘열매 하나’의 책을 따로 진열해 두었고, 순천하면 떠오르는 정원 관련 책자도 비치했다. 서성이다도 같은 이름의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원창역, 여긴 시간이 멈춘 것 같아요’ ‘화포, 아직도 못한 말들이 있다’ 등 순천 관련 책을 펴냈다. 특히 오래된 책상에 앉아 필사할 수 있는 공간은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오월서가’와 ‘세월호’를 알리는 공간은 상시로 열어둬 언제든지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세월호 유족, 시민들과 함께 ‘520번의 금요일’ 북토크를 열었고 5·18 기념재단이 공모한 ‘오월시민야학’에 선정돼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를 펴낸 김누리 교수 초청 강좌(18일)와 비건 주먹밥 나눔 행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북클럽을 통해 사람들이 책방에 모여 책을 읽고, 그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자연스레 행사가 만들어지고, 책 선물하기 등을 통해 좋은 책이 널리 알려지면 더 없이 좋지요.”

‘서성이다’는 ‘사람, 책으로 여행하다’ 등을 주제로 작가와의 만남도 부지런히 열고 있다. 김이듬 시인, 이병률 시인, 남길순 시인, 은유 작가 등 많은 이들이 다녀갔다. 도서관 등 큰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친밀감을 느낄 수 있고 깊은 이야기가 오고 가 ‘내 인생의 북토크였다”고 고마워한다.

조 씨는 독서모임의 책을 깐깐하게 고른다. 새로운 인식을 보여줄 수 있는 책, 편견이나 관습적 사고를 깨주는 책, 자기 세계를 깨고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이 우선 순위다. 또 타인에 대한 관심과 연대에도 무게 중심을 둔다. 최근 가장 많은 호응을 얻었던 책은 장일호의 ‘슬픔의 방문’. 사람들에게서 슬픔을 끄집어내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새로운 나의 모습으로 건너갈 수 있게 해준다는 평을 받았다.

이 곳에서는 다른 서점들과 달리 차나 음료를 팔지 않는다.

“책이 중심이라고 늘 생각했어요.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책으로 재미있게 놀아볼까 하는 마음이 먼저였습니다. 책으로 수익을 내겠다, 책으로 승부를 보겠다 생각했죠. 20년 동안 독서모임을 진행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믿었습니다. 책 선정이라든지 나누는 기술 같은 거요(웃음).”

얼마 전부터 전남CBS 방송에 출연해 책을 소개하고 있는 조 씨는 책방에서 독서모임을 했던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다양한 주제로 ‘자기만의 북클럽’을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순천 문화의 거리에 자리한 ‘서성이다’ 외관.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각각의 소모임에서 활동하며 안정감을 느끼고 많은 생각들을 하시더군요. 책방이 누군가를 보둠어주고 치유해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북클럽에서 활동하다 새로운 모임을 만들어 나가시는 분들이 있는데, 아이를 키워 내보내는 마음처럼 너무 뿌듯하고 대견해요. 책방이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니라 문화를 전파하고, 지역사회와 연대하고, 지역과 내가 연결돼 있다는 자각을 갖게 만드는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서점 문 앞에는 박노해 시인의 시 ‘서성인다’의 한 부분이 적혀 있어 눈으로 읽어본다. ‘책상에 앉아도/무언가 자꾸만/서성이는것만 같아/슬며시 돌아보면/아무 것도 없어/ 그만 나도 너를 따라 서성인다’

▲순천시 금곡길 15

▲오전 11시~오후 6시, 일·월요일 휴무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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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번의 금요일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발간된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공식기록집이다. 416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이 피해자 가족과 시민들을 인터뷰하여 세월호 10년을 기록하였다. 피해자 가족들이 그날의 슬픔과 분노를 딛고 진실규명과 안전한 사회를 위한 투쟁을 이끌고, 다른 사회적 참사 피해자 공동체와 연대하며 ‘한국 재난피해자운동’을 일구어가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담겨있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연대하기 위해 함께 읽기를 권한다.

<416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온다프레스>

▲2024년 15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제정한 ‘젊은 작가상’에 선정된 올해 수상작 7편을 실은 단편 소설집이다. 등단 10년 미만의 젊은 작가들이 젊은 세대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당대의 현실을 새로운 감각으로 인식하고 소설로 형상화 했다. 각 단편마다 젊은 세대의 분투가 잘 드러나 있어 젊은 세대들의 현실인식과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단편의 말미에 작가의 이야기와 평론가의 해설이 덧붙여 있어 소설읽기의 재미를 더해준다.

<김멜라 외·문학동네>

▲양림동 소녀

오월항쟁의 마지막 밤까지 YWCA를 지킨 5·18 생존자 임영희씨의 삶을 담은 그림책이다. 저자는 광주항쟁이후 학살자 처벌을 위한 저항과 사회 운동을 하며 미완의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이어가던 중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장애에 무너지지 않고 왼손으로 80여점의 그림을 그려 오월 광주가 이룩한 아름다운 공동체 정신을 그려내고 있다. 오월의 역사는 패배의 역사가 아닌 승리의 역사이며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 속에서 계속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임영희·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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