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시즌2] <3> 담양 ‘수북수북’
세월의 흔적 품은 책방…사유도 사랑도 ‘수북수북’
동화작가 이화연씨,담주 다미담예술구에 지난해 오픈
수북이방 독서 모임…한달에 한권 책배달 ‘정기구독 서비스’
손님 위해 2층엔 책 읽는 공간…1인 출판사 ‘하늘마음’ 운영
동화작가 이화연씨,담주 다미담예술구에 지난해 오픈
수북이방 독서 모임…한달에 한권 책배달 ‘정기구독 서비스’
손님 위해 2층엔 책 읽는 공간…1인 출판사 ‘하늘마음’ 운영
![]() 담양읍 담주 다미담예술구 쓰담길에 위치한 책방 ‘수북수북’은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
요즘 화제인 ‘사랑인줄 알았는데 부정맥’은 일본 노인들이 쓴 짤막한 시 모음집이다. ‘세 시간이나/기다렸다 들은 병명/노환입니다’, ‘젊어 보이시네요/ 그 한마디에 모자 벗을 기회 놓쳤다’ 등의 글은 위트가 넘친다.
며칠 전 이 책을 읽은 담양 한일철물점 한영수씨도 난생 처음 시를 썼다. 칠순이 넘은 그에게 책을 권한 이는 지난해 철물점 앞에 문을 연 서점 ‘수북수북’ 주인 이화연(48)씨다. ‘동네’ 서점의 역할 중 하나는 이런 게 아닐까.
수북수북은 외관부터가 범상치 않다. 지붕 정도만 새롭게 고쳐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미닫이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만나는 책세상은 아늑하다. 방문객들 역시 공간 ‘자체’에 먼저 마음을 빼앗긴다. 이 씨는 책방을 꾸밀 때 공간이 주는 느낌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인테리어를 최소화했다.
처음 책방 이름을 들었을 땐 담양군 수북면에 있는 서점이려니 했다. 수북수북은 담양읍 담주 다미담예술구 쓰담길에 자리하고 있다. 담주 다미담예술구는 담양군이 조성한 문화특성거리로 현재 책방을 비롯해 공방, 갤러리 카페, 베이커리 등이 입주해 있다.
책방 이름에는 ‘북’이라는 의미가 자연스레 담겼고, ‘사유도 수북 수북, 사랑도 수북수북’이라는 뜻도 넣었다.
그에게 책방은 선물처럼 다가온 우연이었다. 광주 북구에 거주하는 그는 평소 산책 삼아 담양을 자주 찾곤 했다. 쓰담길도 즐겨 산책하던 곳이었다. 어느날 서점 운영자를 찾는다는 공고를 본 그는 오랫동안 품고 있던 ‘책방’에 대한 꿈을 떠올렸다. 서울 출판사와 잡지사에 오랫동안 근무하며 책과 늘 함께였던 그의 오래된 로망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보통 사람들처럼 저도 책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막연하게 갖고 있었죠. 한참을 잊고 지냈는데, 공모 소식을 보자 마자 ‘이거다 싶었죠.’ 책과 관련된 일을 했던 터라 책방 운영에 대해 조금은 자신이 있었는데 처음 1주일은 계산을 하는데 그렇게 떨릴 수가 없었어요.(웃음) 햇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아서 좋아하는 책을 많이 볼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신경 써야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에요.”
담양은 죽녹원, 메타세콰이어길, 메타 프로방스 등 핫플레이스가 많아 서점을 찾는 이들도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주말과 공휴일에 손님이 집중되고 평일에는 한가한 편이다.
“처음에는 북 큐레이션 등에서 고유의 색깔을 드러내는 서점을 구상했어요. 담양의 정체성과도 맞고 저도 관심이 많은 생태, 인문 쪽으로 특화시켜볼까 했죠. 한데 담양에 딱히 서점이 없어요. 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보니 손님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책 구성을 좀 더 다채롭게 해 보자 싶었어요. 그래서 화제가 되는 책도 들여놓고 있어요. 앞으로 철학 등 제 관심 분야를 중심으로 스펙트럼을 넓혀 보려 합니다.”
‘수북이방 독서 모임’은 서점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회원들의 추천을 받아 2주(화요일 저녁, 금요일 오전)에 한 권씩 함께 모여 책을 읽는다. 올해는 화제작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한병철의 ‘사물의 소멸’을 읽었다. 지난해에는 ‘월든’,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 ‘생각의 탄생’, ‘춥고 더운 우리집’, ‘이기적 유전자’, ‘25시’ 등을 읽고 토론했다. 서점에서 운영하는 모임 뿐 아니라 공간을 대여해 개별적으로 독서모임을 꾸리는 이들도 있다.
“고객도 고객이지만 제 자신이 독서모임을 하면서 배우는 게 많아 참 좋습니다. 독서모임을 통해 고정화됐던 생각이 많이 깨져요. 그래서 어떨 땐 일부러 저와 생각이 다른 책을 선정하기도 해요. 이런 모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부터 수북이방 정기구독 서비스도 시작했다.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매달 한 권씩 독자들에게 책을 보내주는 서비스다. 1월에는 메리 올리버의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2월에는 은유의 ‘해방의 밤’을 배달했다.
“취향, 가치관, 세계관이 다른 각각의 사람들에게 어떤 책 한권을 골라 보낸다는 게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망설이기도 했죠. 서점에서 제가 감명깊게 읽은 책들은 짧은 메모를 붙여 놓는데, 확실히 많이들 사가시긴 하더라구요. 그래서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기로 했어요. 독서습관을 갖고 싶은 사람들, 새해를 맞아 책을 읽어보려는 사람들,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 보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배달하려 합니다.”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만나는 2층은 대여 공간이다. 수북수북에서는 차를 따로 판매하지 않는데, 3시간(2만원)을 빌리면 간단한 차를 마시며 이용할 수 있다. 의외로 책을 구입해 조용히 읽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2박 3일 여행 기간 중 두 차례 찾아와 머물다 간 이도 있었다.
“서점에 여행객들이 많이 오는데 서울에서 오신 분들이 책을 구입한 후 2층에 머물며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가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간간히 웃음 소리가 들리는데 전, 그게 너무 좋았네요. 이런 분들이야말로 책방을 책방답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이 서점을 살아있게 하는 거죠.”
그가 손님을 응대하는 동안 서점을 둘러보다 ‘숨겨진 듯’ 자리한 ‘서점 주인이 쓴 책’이라는 코너를 발견했다. 질문을 던지자 그는 쑥쓰러운 듯 그제서야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린이 잡지 ‘생각쟁이’ 편집장을 지낸 그는 동화작가였다. 철학동화 ‘로크 씨, 잘못된 정부는 바꿀 수 있나요?’, 창작동화 ‘돌이 낳은 아이’ 등을 펴냈다. 그 중에서도 ‘제니의 다락방’은 인상적이었다. 책 저자 제니퍼 헌틀리는 1980년 5·18 당시 광주에서 시민들을 구하고, 광주의 진실을 알렸던 찰스 베츠 헌틀리 광주기독병원 원목실장의 막내 딸이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에 머물던 그는 같은 동네에 살던 제니퍼를 만났고, 그 인연으로 제니퍼가 쓴 책을 재구성해 번역 출간했다.
그는 1인 출판사 ‘하늘마음’도 설립했다. 첫 책으로 질문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 ‘철갑 코뿔소’(이화연)를 펴냈고 동네 사람들이 직접 쓴 책도 발간해 보려 한다. 또 서점에서는 직접 개발한 한글 낱말 보드 게임도 판매중이다. 수북수북은 상반기 중 시와 인생과 예술을 주제로 인문강좌를 준비중이며 글쓰기 프로그램도 추진중이다.
취재를 하는 동안 제주도에 거주한다는 이와 전주에서 여행온 이가 서점을 방문해 책을 구입했다. 아내를 위해 책선물을 하고, “지난번 산 책을 다 읽지 못했다”고 말하던 동네 주민은 이씨에게 “소상공인 지원제도를 이용해 보라”는 정보를 주고 갔다.
해 질녘 전기불을 밝힌, 동네 서점의 풍경에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담양군 담양읍 담주4길 24-39 4동 2층
매주 수요일 휴무 (동절기 낮 12시~오후 6시, 하절기 오전 11시~오후 7시)
◇‘책방지기’ 이화연이 추천합니다
▲사물의 소멸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이 가상의 세계에서 유령처럼 살기보다 사물과 타인을 바라보며 살기를 권하는 책. 탈사물화되고 타인이 사라진 세상에서 외롭게 혼자 지내는 대신, ‘충심의 사물’을 간직하고 이웃과 진짜 관계를 맺으며 살아 보면 어떨까. 일독한 후 천천히 재독하기를 권함. <한병철·다산책방>
▲사물의 뒷모습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사물들의 사연을 조각가 안규철이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다. 저자가 연필로 켄트지에 사각사각 그리고 쓴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는 사물의 내밀한 진실은 독자의 삶의 지평을 넓히고 예술적 사유를 일깨운다. 한 번에 다 읽기보다 짬 날 때마다 한 꼭지씩 골라 읽어 보기를 권함. <안규철·현대문학>
▲경이라는 세계
무지개를 보며 감탄하던 어린 시절의 경이를 되찾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는 책. 신비롭고 장엄한 이 세상은 이미 그 안에 경이를 내포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다시 발견해 주길 기다리며. 평소 C.S. 루이스의 저작을 즐겨 읽는 애독자들이라면 ‘나니아 연대기’를 완독하고 나서 읽어 보기를 권함. <이종태·복있는사람>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며칠 전 이 책을 읽은 담양 한일철물점 한영수씨도 난생 처음 시를 썼다. 칠순이 넘은 그에게 책을 권한 이는 지난해 철물점 앞에 문을 연 서점 ‘수북수북’ 주인 이화연(48)씨다. ‘동네’ 서점의 역할 중 하나는 이런 게 아닐까.
![]() ‘수북수북’ 책방 내부. |
그에게 책방은 선물처럼 다가온 우연이었다. 광주 북구에 거주하는 그는 평소 산책 삼아 담양을 자주 찾곤 했다. 쓰담길도 즐겨 산책하던 곳이었다. 어느날 서점 운영자를 찾는다는 공고를 본 그는 오랫동안 품고 있던 ‘책방’에 대한 꿈을 떠올렸다. 서울 출판사와 잡지사에 오랫동안 근무하며 책과 늘 함께였던 그의 오래된 로망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보통 사람들처럼 저도 책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막연하게 갖고 있었죠. 한참을 잊고 지냈는데, 공모 소식을 보자 마자 ‘이거다 싶었죠.’ 책과 관련된 일을 했던 터라 책방 운영에 대해 조금은 자신이 있었는데 처음 1주일은 계산을 하는데 그렇게 떨릴 수가 없었어요.(웃음) 햇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아서 좋아하는 책을 많이 볼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신경 써야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에요.”
담양은 죽녹원, 메타세콰이어길, 메타 프로방스 등 핫플레이스가 많아 서점을 찾는 이들도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주말과 공휴일에 손님이 집중되고 평일에는 한가한 편이다.
“처음에는 북 큐레이션 등에서 고유의 색깔을 드러내는 서점을 구상했어요. 담양의 정체성과도 맞고 저도 관심이 많은 생태, 인문 쪽으로 특화시켜볼까 했죠. 한데 담양에 딱히 서점이 없어요. 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보니 손님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책 구성을 좀 더 다채롭게 해 보자 싶었어요. 그래서 화제가 되는 책도 들여놓고 있어요. 앞으로 철학 등 제 관심 분야를 중심으로 스펙트럼을 넓혀 보려 합니다.”
‘수북이방 독서 모임’은 서점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회원들의 추천을 받아 2주(화요일 저녁, 금요일 오전)에 한 권씩 함께 모여 책을 읽는다. 올해는 화제작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한병철의 ‘사물의 소멸’을 읽었다. 지난해에는 ‘월든’,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 ‘생각의 탄생’, ‘춥고 더운 우리집’, ‘이기적 유전자’, ‘25시’ 등을 읽고 토론했다. 서점에서 운영하는 모임 뿐 아니라 공간을 대여해 개별적으로 독서모임을 꾸리는 이들도 있다.
“고객도 고객이지만 제 자신이 독서모임을 하면서 배우는 게 많아 참 좋습니다. 독서모임을 통해 고정화됐던 생각이 많이 깨져요. 그래서 어떨 땐 일부러 저와 생각이 다른 책을 선정하기도 해요. 이런 모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부터 수북이방 정기구독 서비스도 시작했다.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매달 한 권씩 독자들에게 책을 보내주는 서비스다. 1월에는 메리 올리버의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2월에는 은유의 ‘해방의 밤’을 배달했다.
![]()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수북수북’ 책방에서는 독서모임이 열리며 책 배달 서비스도 운영한다. |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만나는 2층은 대여 공간이다. 수북수북에서는 차를 따로 판매하지 않는데, 3시간(2만원)을 빌리면 간단한 차를 마시며 이용할 수 있다. 의외로 책을 구입해 조용히 읽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2박 3일 여행 기간 중 두 차례 찾아와 머물다 간 이도 있었다.
“서점에 여행객들이 많이 오는데 서울에서 오신 분들이 책을 구입한 후 2층에 머물며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가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간간히 웃음 소리가 들리는데 전, 그게 너무 좋았네요. 이런 분들이야말로 책방을 책방답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이 서점을 살아있게 하는 거죠.”
![]() 책방지기 이화연씨는 1980년 5·18의 진실을 알린 찰스 베츠 헌틀리 목사의 딸 제니퍼 헌틀리가 쓴 ‘제니의 다락방’을 재구성해 번역 출간했다. |
그는 1인 출판사 ‘하늘마음’도 설립했다. 첫 책으로 질문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 ‘철갑 코뿔소’(이화연)를 펴냈고 동네 사람들이 직접 쓴 책도 발간해 보려 한다. 또 서점에서는 직접 개발한 한글 낱말 보드 게임도 판매중이다. 수북수북은 상반기 중 시와 인생과 예술을 주제로 인문강좌를 준비중이며 글쓰기 프로그램도 추진중이다.
취재를 하는 동안 제주도에 거주한다는 이와 전주에서 여행온 이가 서점을 방문해 책을 구입했다. 아내를 위해 책선물을 하고, “지난번 산 책을 다 읽지 못했다”고 말하던 동네 주민은 이씨에게 “소상공인 지원제도를 이용해 보라”는 정보를 주고 갔다.
해 질녘 전기불을 밝힌, 동네 서점의 풍경에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담양군 담양읍 담주4길 24-39 4동 2층
매주 수요일 휴무 (동절기 낮 12시~오후 6시, 하절기 오전 11시~오후 7시)
◇‘책방지기’ 이화연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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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이 가상의 세계에서 유령처럼 살기보다 사물과 타인을 바라보며 살기를 권하는 책. 탈사물화되고 타인이 사라진 세상에서 외롭게 혼자 지내는 대신, ‘충심의 사물’을 간직하고 이웃과 진짜 관계를 맺으며 살아 보면 어떨까. 일독한 후 천천히 재독하기를 권함. <한병철·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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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사물들의 사연을 조각가 안규철이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다. 저자가 연필로 켄트지에 사각사각 그리고 쓴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는 사물의 내밀한 진실은 독자의 삶의 지평을 넓히고 예술적 사유를 일깨운다. 한 번에 다 읽기보다 짬 날 때마다 한 꼭지씩 골라 읽어 보기를 권함. <안규철·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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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보며 감탄하던 어린 시절의 경이를 되찾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는 책. 신비롭고 장엄한 이 세상은 이미 그 안에 경이를 내포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다시 발견해 주길 기다리며. 평소 C.S. 루이스의 저작을 즐겨 읽는 애독자들이라면 ‘나니아 연대기’를 완독하고 나서 읽어 보기를 권함. <이종태·복있는사람>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