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범죄로 번지는 교제폭력…법적·사회적 개입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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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범죄로 번지는 교제폭력…법적·사회적 개입 시급
파멸 부르는 데이트 폭력 <하>
법적 처벌 범위 확대해야
광주·전남 매일 8건 이상 신고
현행법상 단순 폭행·협박 치부
피해자 지원·가해자 처벌 요원
강제분리 등 담은 법안 8년째 표류
법률에 구체적 정의돼야 예방 가능
2024년 06월 27일(목) 10:20
/클립아트코리아
#광주에 거주하는 40대 여성 A씨는 지난달 전 남자친구 B씨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폭력과 스토킹에 시달렸지만 가해자인 남친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가해자가 혐의를 부인해 경찰 대질조사를 해야하지만 보복이 무서워 포기한 탓이다. A씨는 첫 조사에서 경찰 담당자가 “쌍방폭행인데 남자친구랑 화해하는 게 낫지 않겠나”고 말할 때부터 처벌의지가 꺾였다고 호소했다. 집에 들어가는 것조차 무서웠던 A씨는 긴급쉼터로 주거지를 옮겼다. 하지만 쉼터에 머무는 기간은 최장 한 달이고 경제 여유가 없는 A씨는 이사할 수 없는 처지다. 그는 폭력과 스토킹의 두려움에 떨고 있다.



광주·전남에서 매일 8건 이상의 교제폭력 신고가 접수되는 상황이지만, 피해자 지원과 가해자 처벌은 요원하다.

교제폭력은 자칫 살인과 성폭력 등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연인관계 폭력이라는 점에서 현행법상 단순 폭행이나 협박으로만 치부돼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법률상 교제폭력의 개념이 명시되지 않아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폭행, 성폭행, 폭언, 협박 등은 물론이고 일상을 강압적으로 통제하거나 채무변제 요구등 경제적 요소까지 다양한 범행을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법률적 정의에 포함돼 있지 않다.

교제폭력 피해자들은 연인 관계의 특수성이라는 족쇄 때문에 범죄 위험에 노출돼 있다.

교제폭력은 혼인관계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어서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적용 대상이 아니고 상대방 의사에 반해야만 하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범죄에도 해당하지 않아 스토킹범죄처벌법 적용도 어렵다.

결국 교제폭력 피해자는 퇴거, 격리, 접근금지 조치, 유치장에 구금 등 잠정조치 등을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대다수 교제폭력 사건은 일반 폭행사건으로 포함돼 반의사불벌죄라는 점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교제폭력 피해자는 처벌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연인을 신고한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 가해자가 자신의 신상을 자세히 알고 있어 보복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등이 이유다.

‘연인 사이에서 싸우다보면 그럴 수 있지’라는 사회통념도 신고를 가로막는 장해물이다. 경찰에 의해 다툼 과정에서 벌어진 폭력의 경우 그 정도와 관계없이 쌍방폭행으로 처리되거나 심각한 물리적 피해가 보이지 않는다면 현장 종결처리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교제폭력에 적극적인 사회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교제폭력 특성상 폭행의 강도가 점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제폭력을 막기 위한 법은 8년째 표류하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 ‘데이트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발의되는 등 최근 8년간 8차례에 걸쳐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연인 관계를 규정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국회문턱을 넘지 못했다.

차경희 광주여성인권상담소장은 “가정폭력의 끝은 살인이라고 말하는데, 교제폭력도 마찬가지다. 교제폭력은 반복적이고 지속적일 수밖에 없는데 피해자 스스로 벗어나기 힘든 경우가 많아 사회적 제도적 보호조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지난 4일 ‘‘거절 살인, 친밀한 관계 폭력 규율에 실패해 온 이유’ 보고서를 통해 “교제 상대방을 통제하는 행위를 포함한 교제폭력이 법률에 구체적으로 정의돼야 학대, 살해 등의 심각한 범죄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4월 경남 거제시에서 20대 여성이 전 연인에게 폭행당해 숨진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유족이 “가족·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행·상해치사 범죄의 경우 살인죄와 비슷한 형량으로 가중할 것을 요구한다”며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린 ‘교제폭력 관련 제도 개선 요청에 관한 청원’에 6만 3000여 명 넘게 서명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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