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 진술’ 검증없이 인용…법적 권한 활용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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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 진술’ 검증없이 인용…법적 권한 활용도 못해
5·18 자랑스런 한국의 역사
<2> 44년만의 진상규명, 불씨 살려야
<중> 진상조사위 ‘부실 보고서’ 왜
5월 당사자 주장 담은 양비론 나열 그치며 4년 여 ‘허송세월’
가해자 증언대 세울 청문회 개최 않고 압수수색 청구도 없어
2024년 05월 07일(화) 21:10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 내 유영보관소. <광주일보 자료사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와 관련 광주 시민사회에서는 한결같이 ‘조사가 미흡했다’고 입을 모은다.

진상조사위가 특별법에 명기된 권한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거나 계엄군의 진술을 검증 없이 인용하는 등 부실 조사의 필연적 결과물이라고 지적한다.

◇고발·수사 등 조사권한 활용 못해=진상조사위는 조사 과정에서 청문회를 열지 않고 검찰 동행명령권 활용을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상조사위는 수사권을 갖지 못해 강제조사를 못 하는 한계를 넘을 수 있도록 법적 권한을 보장받았다. 조사에 불응하는 조사대상자에게 동행명령장을 발부하고 압수수색영장을 청구의뢰할 권한이 있으며, 증언·감정·진술 확보 및 증거 채택을 위해 청문회를 실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상조사위는 고발 및 수사요청을 한 바 없으며, 압수수색영장 청구 의뢰도 3건에 그쳤으며 그 중 2건은 기각됐다. 주남마을, 송암동 등 민간인 집단학살 및 즉결 처형 사건의 경우 가해자 계엄군을 특정했음에도 고발하거나 수사기관에 수사 요청하지도 않았다.

청문회조차 열지 않아 1988~1989년 5공화국·광주청문회 이후 34년만에 생존 5·18 가해자들을 증언대에 세울 수 있는 기회도 무산시켰다.

낮은 계급의 계엄군부터 시작해 지휘부까지 올라가는 상향식 조사 방식을 택해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2만여명의 계엄군을 조사했는데도 유의미한 진술은 246명에 그쳤기 때문이다.

계엄군 등 5·18 관련자 진술 채록에 치중한 탓에 객관적 증거 확보가 미흡했으며 진술의 신빙성 판단도 부족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예컨대 5월20일 광주역 부근 발포경위, 5월21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경위 등에 대해서는 계엄군 진술에 대한 교차 검증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활동 종료 3개월을 남기고 사무처장에게 ‘청문회 10월 개최설 번복’ 등 조사위 안팎의 논란에 대해 책임을 묻고 사직권고를 내리는 등 내홍이 일어나기도 했다.

광주 지역 인사들을 조사관으로 채용해 별다른 성과를 내지도 못하고 활동기간 4년 여를 허송해 ‘진상조사위는 광주형 일자리’라는 조롱을 듣기도 했다.

조사위원회 조사관은 총 53명이었으며, 이 중 2020년 2명, 2021년 4명, 2022년 11명, 2023년 16명 등 4년 동안 총 33명이 교체돼 전문성 논란도 일었다.

◇계엄군 주장 그대로 옮겨넣은 보고서=진상조사위 보고서에 대해서는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양비론적 시각에서 주장들을 나열하는 데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상규명이라는 진상조사위의 애초 목적을 저버린 결과라는 것이다.

군·경의 기록물이 왜곡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해당 자료를 여과 없이 인용하면서 무고한 광주시민을 향한 발포를 ‘자위권 확보 차원’이라는 등 군경의 왜곡된 주장을 그대로 실었다는 것이다.

같은 사건에 대해 두 개의 보고서가 다른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권용운 일병 사망 사건’의 경우 ‘발포경위 및 책임소재’ 보고서에는 권 일병이 계엄군 장갑차에 치였다고 기록했으나, ‘군·경의 사망·상해 피해’ 보고서에서는 여러 진술이 엇갈리고 있어 정확한 사인을 특정할 수 없다는 등 이유로 진상규명 불능 결정했다.

국민의힘 추천 위원들의 조사내용 수정 요구로 중간에 보고서의 내용을 뒤바꾸면서 ‘진상 규명 불능’ 결정된 사례도 있었다.

‘전남 일원 무기고 피습사건’의 경우 2023년 9월 보고서에서는 ‘진상규명’ 내용으로 조사보고서의 소결이 작성됐으나, 이후 이종협 상임위원 등의 지적을 받아 “무기 피탈시간이 오전인지 오후인지 확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소결의 내용의 바뀌었다. 이 때문에 조사위원들 간 의견이 엇갈려 결국 보고서가 통째로 ‘진상규명불능’ 결정됐다.

개별조사보고서를 ‘진상규명’, ‘진상규명불능’ 둘 중 하나로만 결정해야 하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사 내용 중 일부가 규명되지 않으면 보고서 전체가 ‘진상규명불능’ 결정돼야 한다는 점에서다. 예컨대 ‘암매장’ 관련 보고서는 암매장이 실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유해를 발굴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진상규명불능’ 결정돼 마치 암매장이 거짓이라는 듯한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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