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인 신명나게 하는 ‘조선팝’… 멋과 흥이 폭발한다
  전체메뉴
전세계인 신명나게 하는 ‘조선팝’… 멋과 흥이 폭발한다
전통 기반한 크로스오버 국악, 새로운 ‘한류 콘텐츠’ 관심
‘이날치’·‘악단 광칠’·‘서도밴드’ 등 참신한 스타일 인기몰이
한국적 독특한 리듬·스토리 재해석…국적 넘어 신명나는 한판
2024년 04월 17일(수) 19:15
‘K-국악’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끼 넘치는 ‘젊은’ 소리꾼의 활약은 국악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사진은 밴드 이날치.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 깊은 골로 대한 짐생이 내려온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누에머리 흔들며 전동 같은 앞다리 동아같은 뒷발로/ 양 귀 찌어지고 쇠낫같은 발톱으로/ 잔디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으며/ 주홍 입 쩍 벌리고 워리렁 허는 소리…”

얼터너티브 팝밴드를 표방하는 ‘이날치’가 2020년 5월 발표한 정규 1집 앨범 ‘수궁가’에 수록된 ‘범 내려온다’ 도입부이다. 용왕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특효약인 토끼 간을 구해오라는 특명을 띠고 육지에 상륙한 별주부가 탈진해 ‘토(兎)생원’을 ‘호(虎)생원’이라고 잘못 불러 산에서 신나게 내려오는 호랑이와 처음 만나는 대목을 재해석한 곡이다. 밴드명은 조선말기 광대 출신 판소리 명창 이날치(본명 이경숙·1820~1892)를 오마주(Hommage·‘존경’을 뜻하는 프랑스어)했다.

‘범 내려온다’를 비롯한 ‘이날치’의 곡들과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몸짓이 어우러진 한국관광공사의 해외홍보영상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 시리즈는 국내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5095만 회가 조회된 서울편 ‘범 내려온다’ 영상에 달린 “태어나서 이렇게 한국적이면서 힙한 콘텐츠를 본적이 없다”, “딱 익살맞은 현대 도깨비들이 도심을 누비며 장난끼 부리고 흥 올라 노는 느낌? 넘 재밌고 유니크하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판소리, 들썩들썩 깜찍한 안무, 찰떡 의상 완벽” 등과 같은 1만5000여개의 댓글에서 뜨거운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악단 광칠
전 세계적으로 ‘K-컬쳐(Culture)’ 열풍이 불고 있다. BTS로 대표되는 한국의 팝(Pop)과 드라마, 영화, 웹툰, 게임, 푸드 등 분야도 광범위하다.

특히 전통 국악을 기반으로 한 크로스오버 국악 또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류(韓流) 콘텐츠중 하나다. 밴드 ‘이날치’와 ‘악단 광칠’(ADG7), ‘서도밴드’, ‘에스닉 퓨전밴드 두 번째 달’, ‘록밴드 잠비나이’, ‘국악·월드뮤직그룹 고래야’ 등이 보여주는 새로운 스타일의 판소리와 국악은 ‘K-국악’, ‘K-소리’ 또는 조선과 팝을 합성한 ‘조선팝’으로 불린다. 한국적인 독특한 리듬과 스토리를 재해석한 ‘K-국악’은 국적을 뛰어넘어 모두를 신명나게 한다. ‘국악은 어렵고 따분하고 고루하다’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파격적인 변화다.

◇세계인을 매료시키는 ‘조선팝’ 가락과 몸짓=지난 2022년 여름, 유럽 6개국 7개 도시와 미국 4개 도시를 순회하는 월드투어에 오른 ‘악단 광칠’(ADG7).

“저희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을 세상에 노래하겠습니다. 전쟁이 끝나길 소망하는 모든 사람들의 바람을 담아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악단 광칠’이 폴란드 무대에서 들려준 인상적인 노래는 우크라이나의 민중가요 ‘오, 초원의 붉은 가막살나무여’(The Red Vibrnum In The Meadow).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5개월여가 지난 때에 한국 전통국악기(대금·피리·생황·아쟁·가야금·타악)로 편곡해 평화의 염원을 담아 부르는 노래에 관객들은 울컥하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악단 광칠’ 소리꾼이 노래 끝부분에서 펼친 플래카드에는 ‘Peace is the only way’(평화만이 유일한 길입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악단 광칠’은 광복 70주년인 2015년에 결성된 퓨전 국악밴드이다. 황해도 민요(서도민요)를 기반으로 한 굿음악을 현대적으로 만드는 창작 작업을 해오고 있다. 전자악기 대신 국악기만을 사용한다. 갓과 정자관(程子冠) 등 전통모자와 무대 의상도 독특하다. 일본군 위안부피해 할머니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모아 만든 ‘이 노래’와 같이 자신들의 음악을 통해 누군가의 아픔을 위로하고 치유한다.

‘악단 광칠’은 관객과 하나 되는 굿판을 벌인다. 지난해 10월 2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펼쳐진 ‘제2회 광주 버스킹 월드컵’ 전야제 무대가 그러했다.

“영정 마누라 내다 불고 비단바람 디려나 불고/ 물결같이 살펴주고 도와를 줄 때 잘 받아놔요…”

‘영정(零丁)거리’는 안식하지 못하는 귀신들을 달래는 일종의 정화의례 무속음악(巫歌)이지만 관객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신명난 가락을 취한다. ‘악단 광칠’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이 노랫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일단 춤을 추는 까닭이다. ‘악단 광칠’은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한 사회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황해도 음악은 사실 저희한테도 익숙한 음악은 아니에요. 이 음악을 하면 좀 더 재미있고 뭔가 독특한 위치에 갈 수 있지 않을까해서 일단 한번 해봤습니다. 국악을 하면서도 국악이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 인식되는 것들이 있어요. 저희를 사랑하는 팬들과 같이 나누면서, 사람들의 삶에 꼭 필요한 음악을 하는 국악 연주자들이 되고 싶습니다.”

유태평양
◇‘젊은’ 소리꾼들의 참신하고 파격적인 무대=이광복, 이소연, 조유아, 김준수, 유태평양, 김수인…. 국립 창극단을 대표하는 20~40대 ‘스타’ 소리꾼이자 창극 배우들이다. ‘한국형 오페라’인 창극의 새로운 도전에 나선 국립창극단의 중심에 팬덤 탄탄한 ‘판소리계 아이돌’들이 자리하고 있다. 격조높은 18금 핫한 창극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변강쇠 점 찍고 옹녀’(2014년)를 비롯해 경극과 창극의 만남 ‘패왕별희’(2019년), 판소리 ‘수궁가’를 재해석한 ‘귀토’(2021년), 셰익스피어 작품을 원작으로 한 ‘리어’(2022년)와 ‘베니스의 상인들’(2023년), 여성국극(國劇) 소재 웹툰을 창극화한 ‘정년이’(2023년) 등 이전에 보지 못한, 참신하고 파격적인 작품들마다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받았다. 올해도 창극 ‘리어’(3월 29~4월 7일)에 이어 젊은 소리꾼들의 참신한 소리판 ‘절창(絶唱)Ⅳ’(5월 17~18, 조유아·김수인)를 선보일 예정이다.

김준수
또한 국립창극단은 지난해 8월 세계적인 공연예술축제인 영국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EIF)에서 ‘트로이의 여인들’(연출 옹켕센, 극본 배삼식)을 공연해 호평을 받았다. 에우리피데스의 그리스 비극을 판소리로 풀어내 창극화한 작품으로, 안숙선 명창이 작창(作唱)하고 영화 ‘기생충’ 음악감독 정재일이 작곡했다.

이자람
전통음악과 인디밴드 활동을 병행하는 소리꾼 이자람은 판소리의 영역을 무한 확장하고 있다. 이청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 ‘서편제’에서 12년 간 송화 역을 맡아 열연했고, 2015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아티스트들을 대상으로 ‘판소리 마스터클래스’를 열기도 했다. 무엇보다 여러 소설과 희곡을 판소리 작품으로 재창작 작업이 돋보인다.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사천의 선인’과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재해석한 ‘사천가’(2007년)와 ‘억척가’(2011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소설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 원작의 ‘이방인의 노래’(2015년),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동명 소설을 판소리 극으로 재창작한 ‘노인과 바다’(2019년)는 관객들을 새로운 판소리의 세계로 이끈다. 이자람의 창작 판소리 작품들은 아시아권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 남미 등지 해외 무대에서도 선보여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교육부 ‘국악퇴출’ 번복과 ‘K-국악’의 미래=하지만 현재 ‘국악의 르네상스’를 논하기에는 멀었다. 국악의 저변을 살펴보면 명암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MZ세대와 외국인들이 전통음악을 새롭게 인식하고 향유하는 측면은 긍정적이다. ‘K팝 아이돌’도 작품에 전통악기 선율을 녹여낸다. 나발·태평소·나각, 해금을 각각 활용하는 BTS 슈가(Agust D)의 ‘대취타’(2020년)와 ‘해금’(2023년), 거문고 연주로 시작하는 블랙핑크의 ‘핑크 베놈’(2023년)과 같은 작품들이다.

하지만 2022년 교육부의 ‘국악퇴출’ 번복 사례는 국악교육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교육부는 ‘개정 교육과정 시안’ 가운데 음악교과 성취기준에 국악을 제외했다가 국악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번복한 바 있다. 초등 입학부터 대학 졸업까지 16년 동안 제대로 된 국악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오히려 학생들이 성인이 돼서도 일상생활 속에서 국악을 스스로 즐길 수 있도록 교과과정에서 국악교육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요즘과 같은 ‘K-국악’, ‘조선팝’의 인기는 새로운 기회이다.

국악계 숙원이었던 ‘국악진흥법’이 지난해 6월 제정됐다. 이를 발판 삼아 국악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 문화콘텐츠로 커나가길 기대한다. 신명과 흥 넘치는 국악의 바다에 빠져보자!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