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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향기] 절에서 꽃을 훔치다 - 박용수 수필가·동신여고 교사
2024년 04월 08일(월) 00:00
오솔길을 따라 오른다. 고개를 넘자 숨어있던 절이 고개를 빼꼼 내민다. 마중 온 산안개를 따라 암자에 들어선다.

일주문에서 손을 모은다. 불이(不二)의 공간, 불회? 나를 닮은 석장승이 근엄한 듯 다정하다. 툇마루 빈 의자에 봄 햇살이 늘어지게 졸고 스님은 없고 다람쥐, 박새, 바람만이 고적하게 불공을 드리고 있다.

무얼 보러 왔을까. 내가 왜 여기 있지? 아주 잠깐 사이, 길 잃은 아이처럼 멍하게 있는데 “탁탁탁” 목탁 소리가 내 어깨를 툭툭 친다. 그리고 이내 절을 깨우고, 산을 흔든다.

사는 나날만큼 지인도 많아진다. 그 몇은 군인이고 의사이며, 또 몇은 정치인이다. 선거가 코앞이다. 어떨 때는 환자 편을 들다가도 의사인 친구 말 역시 흘려보내기 힘들다. 어린 사병 편이었다가도 직업군인 입장이 되기도 하고, 이스라엘이었다가 팔레스타인이 되기도 했다. 간혹 투표지가 여러 개라면 고루 나눠주고 싶다. 우유부단해서인지 미혹해서인지 내 안의 복잡한 요인들이 나를 괴롭힐 때 나는 오늘처럼 간혹 이 외진 산사를 찾곤 한다.

탁탁 탁탁, 봄맞이 온 느긋함이 목탁 소리에 놀라 분주해진다. 비로소 선계에 있음을 문득 깨우친다. 사람으로 태어나 인간계를 떠나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무리 선계라지만 결국 속세일 밖에 없는 세상, 마치 꿈속에서 사는 삶은 또 얼마나 공허할까.

목탁 소리는 잦아들고 독경 소리는 높아간다. 세속을 떠난 곳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이곳은 속세, 애써 거짓을 진실로 여기며 수없이 자기부정을 통해 도달하려는 그들의 꿈은 또 무엇일까.

저 혼돈, 저 미혹함, 저 번민이 소용돌이치는데 과연 삼매에 들 수 있을까. 길섶 소나무에 등을 기대고 고요 속에서 노승의 독경 소리를 듣는다. 저 고독한 싸움, 피가 뚝뚝 떨어지도록 낭자한 구도.

불회사 불회? 운주사 운주? 부처의 회의(懷疑), 스님의 회의(會意)는 무릇 그런 것,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이리 치열한 적과 아군이 싸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난 내 고민이 얼마나 작고 미미한가. 내 일상이 또 얼마나 소소한가를 깨닫는다.

연화탑 앞, 꽃이 만개했다. 꽃을 바라보며 삼매에 빠진 노승의 얼굴도 시붉다. 나만을 위해 사는 우리와 달리 타인을 위한 저 독경, 온 세상을 위한 저 기원, 그가 외는 소원이 미소가 되어 꽃잎처럼 하늘로 퍼지고, 향기처럼 세상 밖으로 번져나간다.

그가 이르고자 하는 세상이 여기 운주사 하늘은 아닐까? 햇살에 막 벙그는 꽃처럼 마음이 열리고 금방 눈을 뜨는 봄처럼 겨울잠 자던 이성이 방금 막 일어난다. 바람에 그 꽃잎이 날아간 하늘, 그 꽃잎이 도달하는 하늘 끝, 그 완성이 구름 속에 머문 운주(雲住), 법화경 견보탑품(내가 보는 운주사 와불이 사라진다·박춘기) 공중의 운주사, 운주가 아닐까.

이념 차이로, 종교가 다르다고 미워하고 죽이는 일이 얼마나 지독한 아상이고 아집인가. 이쪽과 저쪽을 가르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일 또한 얼마나 가소로운가. 사람, 생명을 기준으로 하면 색도 없고 공도 없다. 나머지는 모두 거짓이다. 이게 불이(不二)다.

그들도 저 꽃잎처럼 혹독한 비바람 몇 차례 맞으면 어떨까. 저 꽃은 아마 목숨을 걸었을 터이다. 순한 잎 하나, 향기 한 움큼 얻기 위해 지독하게 자기를 깎았을 것, 생을 걸고 견뎠을 것, 그래서 보낼 때 망설임 없었을 것이다.

그 생이별의 생채기에 새싹 하나 움트지 않았던가. 그가 보낸 것은 탐욕이고, 피운 것은 생명 아닐까. 어느 봄날의 황홀한 자살, 난무한 꽃잎의 눈부신 이별에서 불이(不二)를 배운다.

꽃을 버린다. 꽃 속에서 빠져나온다. 생과 사가 다르지 않고, 선악, 미추, 시비가 다르지 않으니 사람만을 제일 앞세우기로 한다. 마음이 평온하다. 해탈이 이런 걸까.

집에 돌아와 눕는다. 집이 은은하다. 어디에 있을까. 여기저기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꽃도 없는데 향기는 어찌 된 일인가. 새소리 물소리는 또 어디에서 오는가. 필시 절에서 빈손으로 왔건만 방안이 향기롭다. 이미 난 절의 꽃들을 몽땅 훔쳐 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