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2040칼럼] ‘물컵의 반’은 언제 채워질까 - 임용철 다큐멘터리 감독·위민연구원 이사
2024년 03월 04일(월) 22:00
“일본과의 협력이 기미독립운동의 목적이고 정신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다시 한번 일본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한일 양국은 아픈 과거를 딛고 이해와 공감을 토대로 ‘새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며 “자유, 인권, 법치의 가치를 공유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다”고 기념사를 했다.

이번 3·1절 기념사에서도 일본의 사과나 과거사 문제는 언급조차 없었고 오히려 “자유를 향한 위대한 여정, 대한민국 만세” 라는 대통령 연설 뒷배경은 해당 문구의 앞글자만 세로로 읽으면 ‘자위대’로 읽혀져 온라인상에서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변했다”라는 작년의 역대급(?) 3·1절 기념사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윤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구애는 계속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억지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시마네현은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본인들이 정해 행사를 개최했다.

우리 외교부는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해당 행사를 즉각 폐지할 것을 다시 한번 엄중히 촉구한다”고 밝혔지만 일본 정부는 2013년부터 올해까지 12년 연속 이 행사에 한국의 차관급인 정무관을 파견하고 있고 올해도 영토 문제를 담당하는 히라누마 쇼지로 내각부 정무관을 참석시켰다. “고유의 일본 영토인 다케시마를 한국이 불법 점령하고 있다”며 이제는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넘어 정식 외교 의제로까지 다루겠다는 일본의 주장이 기미독립선언서까지 들먹이며 한일관계의 더 밝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새 세상’인지 윤 대통령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2월 24일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는 일본인들이 부르는 ‘아리랑’이 무대에 울려 퍼졌고 600여석의 객석을 꽉 채운 한국의 관객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일제히 손뼉을 치며 따라 불렀다.

일제 강점기인 1944년 ‘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 강제로 동원되었던 조선인 소녀들의 강제노역과 인권유린의 현장을 고발하고 명예회복을 위해 기꺼이 나섰던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들이 40여 년 동안 펼친 재판투쟁과 인권 회복 운동 과정을 그린 연극 ‘봉선화Ⅲ-기억과 계승’의 한 장면이다.

이번이 세 번째 무대에 오른 연극 ‘봉선화Ⅲ’는 1998년부터 일제 강제동원 피해 할머니들을 도와온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지원회’와 연극단체 ‘아이치현민의 손에 의한 평화를 바라는 연극모임’이 합작해 만들었고 2003년과 2022년 일본 나고야 공연에 이어 한국의 피해자 출신 지역에선 처음 선을 보였다.

무대에 오른 출연진은 연극을 본업으로 하는 전문배우가 아니라 중학생부터 직장인, 퇴직자까지 나고야시의 평범한 시민들로, 나고야의 강제동원 현장을 둘러보고 역사를 공부하며 연극을 준비했다고 한다. 원고 양금덕 할머니 역할을 맡은 무토 요코(58)씨는 “할머니의 분노와 슬픔을 표현하는데 최선을 다했다”며 “(일본)시민으로서 미쓰비시와 (일본)정부가 부끄럽기에 미쓰비시와 정부는 과거에 저질렀던 행실을 피해자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1988년 지진으로 운명을 달리한 소녀들의 유가족을 찾아 한국에 온 일본의 소송지원회 사람들을 처음 만났던 이경자(82·나주 거주) 할머니는 “연극을 보면서 지진에 죽은 고모님(최정례) 생각이 나 눈물을 흘렸다”며 “미쓰비시가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아직도 헤매고 있다”면서 더 늦기전에 미쓰비시의 사죄와 배상을 바랐다. 친구들과 함께 연극을 본 중학생 최현후군은 “일본에서 세 번이나 기각당하고 한국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고 할머니들이 기뻐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소감을 남겼다.

감동적인 대법원 판결이 난 지 어느덧 5년이 지났지만 일본 전범기업이 배상했다는 뉴스는 없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부고 소식만 들려온다. ‘물컵의 반은 일본이 채울 것이다’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내야 할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 해법을 정부가 발표한 지 1년이 되어 간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지키며 ‘물컵의 반’은 언제 채워질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