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무안에 동학혁명기념관 지어 세계사적 위상 높여야”
무안군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 초청 강연
양반이 이끈 동학의 거점…다른 지역과 차별화
전남 청년들 동학의 가치 깨닫고 미래 열어가길
양반이 이끈 동학의 거점…다른 지역과 차별화
전남 청년들 동학의 가치 깨닫고 미래 열어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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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나아가 꿈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전남이 낙후돼 있어 오히려 위대해질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게 됐습니다. 더 높은 도덕성을 갖고 더 간절하게 꿈을 바라고 이루기 위해 노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올 김용옥<사진> 선생이 지난 23일 무안교육지원청에서 ‘무안 민중의 혁명 의식과 동학의 총체적 이해’를 주제로 무안군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 초청 강연을 했다. 그는 1박2일 일정으로 함평 학교면 고막포 전투지, 무안 몽탄면 김용문 일가 현장비·생가터·묘지, 무안 삼향면 배상옥 생가터, 무안 청계면 청천사 청천재 집강소, 무안 해제면 해주최씨 삼의사 실적비와 동학군 훈련장, 동학군 처형지인 무안읍 붉은 고개·불무제·차밭머리터 등을 모두 답사하기도 했다.
“저도 잘 몰랐습니다. 무안이 이처럼 동학의 거점이었는지를요. 답사를 해보고 자료를 들여다보니 무안군의 동학군은 유림, 즉 양반들이 이끌었다는 점이 전북 정읍, 고창 등의 동학군과는 또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도올은 동학혁명을 점이 아니라 시간의 면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근대시민사회의 기저가 되는 프랑스혁명을 예로 들었다. 그것은 영국의 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으로부터 신분제 의회인 삼부회 소집, 인권선언 채택, 입법의회, 국민공회, 공포정치, 나폴레옹 제정, 7월 혁명, 2월 혁명, 파리 코뮨에 이르는 기나긴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동학 역시 19세기 중앙집권적 관료제국가인 조선에 있어서 새로운 삶의 방식, 그 방식으로 새로운 사회적 제도나 법률을 체계적으로 제정해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동학이 세계사적으로 서구의 근대혁명의 개념을 뛰어넘는 이유는 정치적 개혁을 유발할 수 있는 사상적 구조를 새롭게 창안했다는 데 있습니다. 인간과 사회의 수직 구조를 총체적으로 거부하고 수평 구조의 전면적 실천을 제안했다는 것이죠.”
지난해 1월 최제우(최수운)의 포덕경전인 용담유사를 우리말로 재구성해 펴낸 도올 선생은 서학과 대척점에 있는 동학은 새로운 인간학이자 신학이며 역사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동학이 혁명이 아닌 ‘다시 개벽’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무안은 의향으로서 그 정신적인 기맥이 줄기차게 흐르는 곳입니다. 무안의 배상옥의 세력이 전봉준·김개남의 그것과 비교해 더 컸다는 사실이 관군 토포사 이규태의 편지에도 언급되기도 하며, 그가 포살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무안주민들은 그를 추모하는 노래를 지어 부르기도 했어요. 동학혁명 사상 최초로 신원이 확인된 유골이 발견된 곳도 무안입니다.”
도올 선생은 무안에 동학혁명기념관을 지어 동학혁명의 세계사적 위상을 밝힐 것을 무안군과 전남도에 제안하기도 했다. 무안 동학혁명 당시 젊은이들이 훈련했던 장소를 찾은 그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보국안민을 위해 몸을 단련하고 전장에 나가 싸웠던 청춘들의 굳건한 마음을 떠올렸다.
“지금 우리나라의 문화가 세계 곳곳에 퍼져나가고 있으며, 분위기도 매우 좋습니다. 결국 역사는 진보하며, 그 어느 때보다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기도 합니다. 전남의 청년들이 동학의 가치를 깨닫고 미래를 열어나가기를 기원합니다.”
/윤현석 기자 chadol@kwangju.co.kr
도올 김용옥<사진> 선생이 지난 23일 무안교육지원청에서 ‘무안 민중의 혁명 의식과 동학의 총체적 이해’를 주제로 무안군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 초청 강연을 했다. 그는 1박2일 일정으로 함평 학교면 고막포 전투지, 무안 몽탄면 김용문 일가 현장비·생가터·묘지, 무안 삼향면 배상옥 생가터, 무안 청계면 청천사 청천재 집강소, 무안 해제면 해주최씨 삼의사 실적비와 동학군 훈련장, 동학군 처형지인 무안읍 붉은 고개·불무제·차밭머리터 등을 모두 답사하기도 했다.
“동학이 세계사적으로 서구의 근대혁명의 개념을 뛰어넘는 이유는 정치적 개혁을 유발할 수 있는 사상적 구조를 새롭게 창안했다는 데 있습니다. 인간과 사회의 수직 구조를 총체적으로 거부하고 수평 구조의 전면적 실천을 제안했다는 것이죠.”
지난해 1월 최제우(최수운)의 포덕경전인 용담유사를 우리말로 재구성해 펴낸 도올 선생은 서학과 대척점에 있는 동학은 새로운 인간학이자 신학이며 역사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동학이 혁명이 아닌 ‘다시 개벽’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무안은 의향으로서 그 정신적인 기맥이 줄기차게 흐르는 곳입니다. 무안의 배상옥의 세력이 전봉준·김개남의 그것과 비교해 더 컸다는 사실이 관군 토포사 이규태의 편지에도 언급되기도 하며, 그가 포살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무안주민들은 그를 추모하는 노래를 지어 부르기도 했어요. 동학혁명 사상 최초로 신원이 확인된 유골이 발견된 곳도 무안입니다.”
도올 선생은 무안에 동학혁명기념관을 지어 동학혁명의 세계사적 위상을 밝힐 것을 무안군과 전남도에 제안하기도 했다. 무안 동학혁명 당시 젊은이들이 훈련했던 장소를 찾은 그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보국안민을 위해 몸을 단련하고 전장에 나가 싸웠던 청춘들의 굳건한 마음을 떠올렸다.
“지금 우리나라의 문화가 세계 곳곳에 퍼져나가고 있으며, 분위기도 매우 좋습니다. 결국 역사는 진보하며, 그 어느 때보다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기도 합니다. 전남의 청년들이 동학의 가치를 깨닫고 미래를 열어나가기를 기원합니다.”
/윤현석 기자 chad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