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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간 기술들이 남긴 것 - 한근우 한국폴리텍대학 전남캠퍼스 교수
2023년 09월 25일(월) 00:00
타자기의 자판을 힘을 주어 눌러 본 기억이 있는가.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타자기. 요즘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분위기 있는 카페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보거나, 고물상이나 골동품 가게로 가야만 볼 수 있다. 그도 아니면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집 지하실이나 벽장에 쳐박혀 있을지도 모른다.

타자기를 직접 보기에는 여간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아직 디지털 기기들이 흔해 발에 차이지 않았던 어린시절. 찰칵찰칵 타자기의 기계음은 필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당시만 해도 주변에 신기한 기계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타자기처럼 내부의 기계 부품 하나하나가 훤이 보이고, 동작에 있어 아름다운(?) 기계음을 내는 기계장치는 필자에게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1980년대와 90년대 초만 해도 컴퓨터 보급률이 낮고 가격은 매우 비쌌다. 그래서 당시 컴퓨터를 이용한 문서를 작업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고 대신에 타자기가 흔히 사용되었다. 그래서인지 타자기 타이핑을 가르쳐주는 학원도 많아 취업을 목적으로 많이들 배웠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다 보니 타자기를 흔하게 볼 수 있었고 필자도 어린시절 한 대쯤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매우 컸다.

조금 과장하자면 타자기는 컴퓨터의 사촌쯤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의 문자 입력 장치인 키보드는 타자기의 글자판 배열을 그대로 답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판을 두들겨 문자를 작성하는 일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글씨를 잘 쓰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누가 손글씨를 잘 쓰는지를 겨루는 경필 쓰기대회도 있었다. 그리고 과거 사기업이나 관공서에는 손글씨로 문서를 작성하는 서기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과거 타자기의 등장은 글쓰기는 물론 산업시스템에 큰 변화를 주었던 혁신적인 발명이었다. 펜을 손가락에 쥐고 꼭꼭 힘을 주어 글을 쓸 필요가 없고 통일성 있게 문자가 기록되어 있기에 누구나 쉽게 문서를 읽을 수 있었다. 또 글을 쓰는 속도가 일반 필기에 비해 상당히 빨라 사무환경에도 큰 변화를 주었다.

하지만 혁신적인 사무기기였던 타자기를 전 세계에서 마지막까지 생산했던, 인도 뭄바이의 고드래지 앤 보이스사(Godrej & Boyce Mfg.Co)가 경영 악화로 2011년 폐업하게 된다. 현재 타자기를 생산하는 곳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비록 최첨단 과학기술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계장치지만 타자기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선 여전히 사용되는 곳이 있고 수많은 애호가들이 존재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디지털 기술은 우리의 일상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 간다. 지금은 다양한 디지털 워드 편집기가 우리의 주요 글쓰기 도구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기기들은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과 연동하여 손쉽게 오타를 수정하고 문서의 레이아웃을 조정하는 데 매우 편리하다. 그 결과 타자기는 생산성 따지는 사무실과 교육혁신을 외치는 학교와 같은 교육 현장 등에서 볼 수가 없다.

타자기는 더 이상 일상적인 도구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의 기술적인 DNA는 지금도 기술이라는 생태계에서 또 다른 기술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대를 이어가고 있다.

기술은 시대와 함께 발전하며 사라지기도 한다. 사라져 간 기술들은 과거의 유산을 담고 있으며 현재와 미래의 기술과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된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과거라는 밑거름으로 파생된 것들의 결과들이다. 그것을 통해 인류가 늘 그렇듯 멈출 수 없는 무한동력처럼 나아가고 있다. 과거의 것들이 느리고 불편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