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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도 연애 상담 하나요- 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2023년 09월 22일(금) 00:15
환갑의 나이에 젊은 처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분에 넘칠 정도인데, 고맙게도 내게 연애 상담을 하는 젊은 여성분들도 종종 있다. 물론 일부러 나를 찾아와서 하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증심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분들과 차담하는 중에 더러 받는 질문이다. 독신으로 살고 있는 스님에게 연애 상담이라니… .

이 자리에서 나의 역할은 사랑의 아픔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다. 위로라면 청춘이라는 진흙탕을 함께 뒹구는 그녀들의 친구가 제격이지 나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젊은 여성들이 풀어 내는 고민 보따리를 꽤 매몰차게 대하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하는 일은 그녀들의 흐릿하고 명확하지 않은 생각을 명료하게 하거나, 아니면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틀 사이에 받은 두 가지 질문과 나의 대답.

“저는 진지하게 만나는게 잘 안돼요. 금방 싫증이 나요. 사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떤 건지 감이 잘 안 와요. 그러면 안될 거 같은데, 왜 그럴까요”

“저는 가능하면 진득하게 오랫동안 만남을 이어가고 싶은데, 그게 제 뜻대로 잘 되질 않아요. 그래서 차일 것 같은 느낌이 오면 제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거든요. 어떻게 하면 오래 오래 만남이 이어지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우선, 많은 사람들이 연애와 사랑을 같은 걸로 생각하는데요. 사실은 이게 달라도 많이 달라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애는 짝짓기, 사랑은 정(情)’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남녀간의 사랑을 세 단계로 나누어서 말해요. 우선 욕망의 단계, 연애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는 단계지요.

두번째, 끌림의 단계. 원하는 짝을 찾다가 마침내 눈이 맞게 되면, 눈에서 불꽃이 튑니다. 흔히 눈에 콩깍지가 씌인다고 하지요. 그래서 아무 이유없이 그냥 상대방이 좋습니다. 이때가 끌림의 단계입니다. 이 시기 사람의 뇌는 도파민으로 가득찬다고 하는데요. 이게 약물중독자의 뇌와 아주 흡사하답니다. 그러니까 이때는 말 그대로 상대방에게 중독되는겁니다. 실연의 아픔이 큰 것도 나름 이유가 있는거죠. 하지만 이 시기가 그리 오래 못 갑니다. 길어야 1년 반 정도라고 합니다.

이 단계를 어찌어찌 잘 넘긴 커플들은 애착의 단계로 들어섭니다. 눈에 씌인 콩깍지는 벗겨졌지만 서로에 대한 애착이 형성되어서 같이 있으면 편한 단계지요 이때에는 뇌에서 도파민이 아니라 옥시토신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일상적인 표현을 쓰자면 서로에게 정이 드는 시기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상대방에 대한 소유 심리가 작동하는 시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끌림의 단계와 애착의 단계가 완전히 다르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걸 사랑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어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봐요. 저는 끌림의 단계는 연애, 애착의 단계는 사랑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나누면 머리 속의 많은 혼란이 어느 정도 정리됩니다. 자! 그러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한번 질문해보세요.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연애인가 사랑인가”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는지 어떤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연애의 단계를 거친다고 해서 항상 애착이 형성되는 건 아니니까요.

타인을 정신적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권력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게서 등을 돌리더라도, 그 사람만은 내 편이라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확신. 이것이 바로 정신적으로 타인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사랑하는지 어떤지 확신이 들지 않는 자체가 아직 끈끈한 정이 덜 형성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내 편이라는 확신이 내 안에 있다면 이런 의문을 가지지도 않겠지요.

결혼할 배우자를 찾는 것은 사랑이나 연애와는 범주가 아예 다릅니다. 흔히 내 기준에 맞는 좋은 배우자를 고르려고 합니다만, 더 중요한 것은 문제 있는 배우자를 걸러낼 줄 아는 지혜입니다. 배우자는 고르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다 보면 차담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곤 한다. 젊은 시절의 나는 어른들의 충고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남에게 스스럼없이 충고할 정도로 얼굴이 두꺼워졌다. 그 죄로 일면식도 없는 젊은이들에게 주워담지도 못할 말들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고 있다. 말 한마디의 무게가 해를 거듭할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전광석화같은 인생의 무상함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