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사물의 지도 - 강재영 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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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사물의 지도 - 강재영 외 지음
공예가 가진 특별한 힘…인간·자연·세계를 잇다
2023년 09월 08일(금) 14:00
“공예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 수천 년간 이어진 직접적이고 육체적인 교감과 공진화의 역사이자 결과물입니다. 공예가들은 인간의 몸이나 자연과 맺고 있는 직접적인 관계로 인해 이러한 사실을 매순간 확인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공예에 대한 명징하면서도 적합한 정의다.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지만 평소에는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게 공예품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존재다. 단순히 만드는 게 아니라 특정한 사물에 가치와 창의성을 투영한다.

공예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진화시켜왔는지를 조명한 ‘사물의 지도’는 흥미로운 책이다.

책은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사물의 지도’를 주제로, 작가들이 만드는 사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공예, 세상을 잇고, 만들고, 사랑하라’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공예를 다면적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집필에는 강재영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비롯해 김예성 책임 큐레이터, 황혜림 선임 큐레이터, 김연우 선임 큐레이터 등 모두 10명이 참여했다.

데보라 무어 작 ‘붉은 꽃병에 담긴 난초’
사실 공예는 “문명의 몸과 실체를 직접 구현하고 만들어 나가는 매우 특별한 능력이” 있는 분야다. 상징이나 기호와 같은 체계로 작품을 형상화하는 시나 소설 또는 회화 등의 장르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강 감독은 공예는 인류 문명의 뿌리이자 무의식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슈퍼컴퓨터나 AI도 처음엔 뭉뚝한 손도끼에서 출발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인류가 가진 “근원적이고 오래된 ‘지적 설계’가 가진 특별한 힘”이라 할 수 있다.

강 감독은 공예가 가진 특별한 능력과 힘에 초점을 맞춘다. 이와 연계해 “인간과 자연의 공진화로 만들어진 다양한 사물과 그들 사이의 관계에 주목”해 단순히 공예를 인간을 위한 도구적 개념이 아닌 인간, 자연, 세계를 포괄하는 다면적이고 다층적 차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사물’(objet)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하며 “인류가 수천 년간 자연과 함께 만들어 온 ‘사물의 지도’”라는 관점을 견지한다.

‘사물의 지도’는 6개의 주제를 토대로 인류문명의 진화과정 속에서 공예가 어떻게 진화하고 다양해졌는지를 들여다본다. 18개국 100여 명의 크리에이터들이 그리는 공예지도인 셈이다.

먼저 1장 ‘대지와 호흡하며 함께하는 사물들’은 대지, 다시 말해 흙과의 호흡을 통해 서사를 완성해가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흙과 시간이 만들어 낸 금속의 개성 있는 표정을 표현한 작가부터 전형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자신만의 예술적 시선을 통해 문화를 담고 있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2장 ‘인간·자연·사물을 연결하는 문화적 유전자와 맥락들’에서는 문화적 맥락에서 인간과 함께 진화해 온 지역 특색의 공예방식들을 소개한다. 문화적 기억과 현재의 감성이 교차하는 경험의 장소로 확장된 전통의 재해석을 감상할 수 있다.

3장 ‘손, 도구, 기계, 디지털의 하이브리드 제작방식과 기술들’은 전통방식에서부터 현대 디지털 방식까지 다양한 제작방식을 기반으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들을 조명한다.

역사적 기록을 만들어낸 직지를 모티브로 한 내용도 있다. 4장 ‘기록문화와 공예, 자연과 협업한 문명의 연금술사들’에서는 인류 최초 금속활자로 만든 ‘직지심체요절’의 과정을 되짚어 보고 역사적 기록 문화를 이루는 바탕에 존재해 온 공예를 살펴본다.

다음으로 ‘생태적 올바름을 위한 공예가들의 실천’(5장)에서는 자연의 순환이 예술가의 손끝을 통해 어떻게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알루미늄 부산물인 레드 머드를 활용하는 작가의 작업 외에도 폐기물로 전락한 사물들이 변모하는 장면을 들여다본다.

마지막 6장 ‘생명사랑의 그물망에서 지속되는 희망들’은 전 지구적으로 확장된 생명애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공예와 정신을 만난다.

<샘터·2만5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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