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맨발의 자유- 김향남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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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뜨겁고 축축한 계절이다. 태양은 떠오르기 바쁘게 이글거리기 시작하고 온몸은 솟아오른 땀으로 금세 축축해지기 일쑤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달갑지 않은 나는 문명의 이기(利器)를 눈앞에 두고도 소 닭 보듯 덤덤할 뿐이다. 가끔 선풍기를 틀어 바람을 일으켜보기도 하지만, 까탈스러운 내 몸은 그마저도 꺼리는 기색이다.
저물녘의 운동장은 이래저래 지친 심신을 다시 살아나게 해준다. 사방이 툭 터져 시원하기도 하고, 붉게 깔린 노을의 장관을 볼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맨발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천부지에 조성된 널찍한 운동장은 야구장이 세 개, 축구장이 두 개나 되는 열린 공간이다. 물길 따라 길게 자전거길이 뻗어 있고, 주변의 풀숲에는 벌레들이 숨어 산다. 아무것도 덮이지 않은 맨땅 그대로 오롯이 운동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지만, 주말을 제외하곤 비어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운동장에 들어서면 곧장 신발을 벗고 맨발을 내민다. 내내 아무렇지도 않던 신발이 갑자기 무겁고 거추장스럽기도 하거니와, 맨땅을 보면 어쩐지 맨발이 되고 싶은 욕구가 치솟는다. 모든 동물이 그렇듯이 맨 처음 인류도 맨발이었을 것이니 그 원시의 추억이 되살아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맨발로 맨땅을 밟는 순간의 서늘한 쾌감은, 벗어버림으로써 느낄 수 있는 자유의 감각이다. 내 발은 어느새 대지와 교합을 이룬 듯 리듬을 타고 있다.
신발은 발을 보호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에서 만들어졌지만, 또 하나의 패션일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신데렐라의 드레스를 완성하는 것은 드레스를 꾸민 화려한 장식이나 왕관이 아닌 ‘유리 구두’였듯이, 신발은 패션이자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회적 기호로 작용한다. 어떤 모양, 어떤 재질, 어떤 색상, 심지어는 어떤 브랜드의 신발을 신었느냐에 따라 각각의 위상이 달라 보이기도 한다. 신발은 패션의 디테일과 센스를 돋보이게 해주는 문명의 산물임이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진짜 발을 가리운 사회적 페르소나 혹은 포즈에 가까울 수도 있다. 자기만의 개성을 표현하고 세상을 더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도록 해주지만, 반면에 우리를 옥죄는 억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맨발은 그러한 모든 것을 벗어 던진 상태다. 아무것도 더하지도 걸치지도 않은 맨발이 됨으로서 진짜 나를 만나는 것이다. 맨발과 맨땅 사이의 그 직접성을 만끽하며 저 옛날 원시의 숲에서 뛰놀던 때처럼 대지의 영혼을 느껴보는 것이다. 자연과의 직접적인 교접을 통해 아직 그 품 안에 있음을 기꺼이 확인하는 것이다.
비 오는 날, 혹은 갠 지 얼마 안 된 날의 맨발은 한결 자유롭다. 웅덩이를 찰박거리거나 발가락 사이로 피어오르는 흙반죽의 보드라운 감촉을 느낄 때면, 저 유년으로 돌아간 듯 해찰하기 바쁘다. 말랑말랑 감미롭고 서늘한 촉감을 즐기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물기 촉촉한 운동장을 맨발로 찰박거리다 보면 어느새 나도 맨발의 춤꾼이 된다.
가수 이은미의 공연을 본 적 있다. 도심 공원에 자리한 야외무대에서였다. ‘맨발의 디바’라는 별명답게 그녀의 발에는 아무것도 신겨 있지 않았다. 그녀의 맨발은 가볍고 시원했으며 자유롭고 당당해 보였다. ‘킬힐’로 이루어내는 아찔한 각선미보다 납작하게 내려앉은 맨발의 평평함에 오히려 반전의 매력이 있었다.
붓다의 일생은 숫제 맨발로 상징된다. 탄생부터 열반까지 모두 길 위에서 이루어진 맨발의 삶이었다. 어머니 마야부인이 해산을 위하여 친정으로 가는 도중 룸비니 동산의 길 위에서 태어나고, 수행을 위하여 맨발로 출가하였으며,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도 맨발로 가르침의 길을 떠났다. 45년의 긴 세월을 길 위에서 맨발로 중생들을 만나 가르치다 길 위에서 열반을 맞았다. 왕자의 자리를 박차고 맨발의 수행자가 된 것은 기존의 신분과 권위, 특권과 지위를 버린 위대한 포기를 의미하며, 모든 세속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음을 뜻한다.
전통적인 발레복이나 토슈즈 없이 맨발로 춤을 추었던 이사도라 덩컨,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현장에 함께했던 춤꾼 이애주, 전위 무용가 홍신자, 만신 김금화…. 그들도 맨발이었다. 그들 역시 맨발의 투혼을 보여준 진정한 구도자가 아닐까.
여름날의 저녁,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는다. 맨몸이 될 수는 없으니 맨발로라도 대지의 숨결을 느끼며 자연의 존재로 돌아가고 싶다. 이 저녁이나마 훌훌 자유로워지고 싶다.
운동장에 들어서면 곧장 신발을 벗고 맨발을 내민다. 내내 아무렇지도 않던 신발이 갑자기 무겁고 거추장스럽기도 하거니와, 맨땅을 보면 어쩐지 맨발이 되고 싶은 욕구가 치솟는다. 모든 동물이 그렇듯이 맨 처음 인류도 맨발이었을 것이니 그 원시의 추억이 되살아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맨발로 맨땅을 밟는 순간의 서늘한 쾌감은, 벗어버림으로써 느낄 수 있는 자유의 감각이다. 내 발은 어느새 대지와 교합을 이룬 듯 리듬을 타고 있다.
맨발은 그러한 모든 것을 벗어 던진 상태다. 아무것도 더하지도 걸치지도 않은 맨발이 됨으로서 진짜 나를 만나는 것이다. 맨발과 맨땅 사이의 그 직접성을 만끽하며 저 옛날 원시의 숲에서 뛰놀던 때처럼 대지의 영혼을 느껴보는 것이다. 자연과의 직접적인 교접을 통해 아직 그 품 안에 있음을 기꺼이 확인하는 것이다.
비 오는 날, 혹은 갠 지 얼마 안 된 날의 맨발은 한결 자유롭다. 웅덩이를 찰박거리거나 발가락 사이로 피어오르는 흙반죽의 보드라운 감촉을 느낄 때면, 저 유년으로 돌아간 듯 해찰하기 바쁘다. 말랑말랑 감미롭고 서늘한 촉감을 즐기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물기 촉촉한 운동장을 맨발로 찰박거리다 보면 어느새 나도 맨발의 춤꾼이 된다.
가수 이은미의 공연을 본 적 있다. 도심 공원에 자리한 야외무대에서였다. ‘맨발의 디바’라는 별명답게 그녀의 발에는 아무것도 신겨 있지 않았다. 그녀의 맨발은 가볍고 시원했으며 자유롭고 당당해 보였다. ‘킬힐’로 이루어내는 아찔한 각선미보다 납작하게 내려앉은 맨발의 평평함에 오히려 반전의 매력이 있었다.
붓다의 일생은 숫제 맨발로 상징된다. 탄생부터 열반까지 모두 길 위에서 이루어진 맨발의 삶이었다. 어머니 마야부인이 해산을 위하여 친정으로 가는 도중 룸비니 동산의 길 위에서 태어나고, 수행을 위하여 맨발로 출가하였으며,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도 맨발로 가르침의 길을 떠났다. 45년의 긴 세월을 길 위에서 맨발로 중생들을 만나 가르치다 길 위에서 열반을 맞았다. 왕자의 자리를 박차고 맨발의 수행자가 된 것은 기존의 신분과 권위, 특권과 지위를 버린 위대한 포기를 의미하며, 모든 세속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음을 뜻한다.
전통적인 발레복이나 토슈즈 없이 맨발로 춤을 추었던 이사도라 덩컨,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현장에 함께했던 춤꾼 이애주, 전위 무용가 홍신자, 만신 김금화…. 그들도 맨발이었다. 그들 역시 맨발의 투혼을 보여준 진정한 구도자가 아닐까.
여름날의 저녁,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는다. 맨몸이 될 수는 없으니 맨발로라도 대지의 숨결을 느끼며 자연의 존재로 돌아가고 싶다. 이 저녁이나마 훌훌 자유로워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