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서화로 보는 ‘고정희 시인’ 삶과 문학
해남 출신 여성·문화 운동가
오월미술관서 32주기 시서화전
기독교 신앙·5월 광주 상흔 등
민중 고난·저항정신 시로 형상화
오월미술관서 32주기 시서화전
기독교 신앙·5월 광주 상흔 등
민중 고난·저항정신 시로 형상화
![]() 젊은 시절의 고정희 시인 |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중에서)
지난 1991년 6월 9일 43세로 생을 마감한 해남 출신의 고정희 시인은 여성운동가이자 문화운동가였다. ‘여성신문’ 초대 편집 주간을 역임했으며 기독교적 신앙에 근거한 주옥같은 작품을 썼다. 또한 5월 광주의 상흔을 남도 가락 형식에 담아 민중의 고난과 저항을 자신만의 언어로 형상화했다.
올해로 32주기를 맞아 시인의 주요 작품을 손글씨로 꾸민 시서화전이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고정희기념사업회(회장 강순이)가 오월미술관에서 개최하고 있는 ‘고정희 시화전 상한 영혼을 위하여’가 그것. 오는 29일까지 열리는 이번 시서화전은 고정희문화제 일환으로 기획됐으며 (사)또하나의 문화, 광주전남작가회의, 광주YWCA, 세종손글씨연구회, 오월미술관, 해남민예총미술위원회가 후원한다.
강순이 기념사업회장은 “일관하는 시와 삶의 진정한 일치, 폭발하듯 써 내려간 언어의 박동, 어떤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변함없는 상생과 활기는 고정희 시인의 근원이라 하겠다”며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과 신념을 다한 최선의 애도, 고통 연대를 통해 역사가 새롭게 거듭나기를 염원하는 그의 간절한 마음은 시를 함께 느껴보는 자리가 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앞서 이번 시서화전은 지난 6월 고인의 고향인 해남(문예회관)에서도 열려 주목을 받았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라는 전시 주제가 말해주듯 고정희의 시는 사회적 약자, 고통에 신음하는 자, 착취에 당하는 자 등을 향한 애정과 위로의 마음을 담고 있다.
이번 오월 전시실에서는 손글씨 작가 27명의 31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고정희 시인의 대표작들의 일부를 발췌해 저마다 손글씨로 꾸민 시화전의 고요하게 빛나는 고인의 시 정신을 대면하는 기회이다.
오월미술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전시된 시서화 작품들은 본 전시장 벽면을 빼곡하게 수놓고 있다. 하나하나 모두 ‘명시’들은 작품들에선 생전에 고인이 외쳤던 시대를 향한 고언과 아픔, 소외되고 낮은 자에 대한 연민, 삶에 대한 희망 등이 담겨 있다.
참여 작가로 백인석(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허성희(상한 영혼을 위하여), 양은경(실낙원 기행1), 김정혜(프라하의 봄1), 송정선(청산별곡), 김미정(어머니 나의 어머니), 조성숙(땅의 사람들14), 조원명(우리 동네 구자명 씨), 김미화(우리 봇물을 트자) 등이 저마다 개성적인 손글씨를 선보인다.
저마다 개성적인 서체에 담긴 고정희 시인의 시는 오늘의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걸기를 해오는 듯하다. 지난 시대에 박제돼 있지 않고 현 시대와 호흡하며 불의와 부조리한 세태에 대해 준엄하게 꾸짖는다.
“오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너희 안락한 처마 밑에서/ 함께 살기를 원하던 우리들의 아벨,/너희 따뜻한 난롯가에서/ 함께 몸을 비비던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너희 풍성한 산해진미 잔치상에서/ 주린 배 움켜 쥐던 우리들의 아벨…”
이도환이 손글씨로 쓴 ‘이 시대의 아벨’은 약자, 가난한자를 외면하고 자신의 탐욕에만 매몰된 이들을 향한 준엄한 꾸짖음으로 들린다. 이도환은 “자살하는 이들 대부분은 삶이 더 팍팍해지는 세상살이에 지친 사회적 약자들이다”며 “어느 시대인들 아벨을 찾지 않은 시대가 있었겠는가마는, 오늘의 시국이 더욱 ‘이 시대의 아벨’을 찾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한편 고정희 시인은 1975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실락원 기행’, ‘초혼제’, ‘이 시대의 아벨’, ‘지리산의 봄’, ‘광주의 눈물비’, ‘아름다운 사람 하나’ 등을 펴냈다. 유고시집으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등이 있으며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중에서)
![]() 양은경의 손글씨 ‘실낙원 기행’ |
올해로 32주기를 맞아 시인의 주요 작품을 손글씨로 꾸민 시서화전이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강순이 기념사업회장은 “일관하는 시와 삶의 진정한 일치, 폭발하듯 써 내려간 언어의 박동, 어떤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변함없는 상생과 활기는 고정희 시인의 근원이라 하겠다”며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과 신념을 다한 최선의 애도, 고통 연대를 통해 역사가 새롭게 거듭나기를 염원하는 그의 간절한 마음은 시를 함께 느껴보는 자리가 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앞서 이번 시서화전은 지난 6월 고인의 고향인 해남(문예회관)에서도 열려 주목을 받았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라는 전시 주제가 말해주듯 고정희의 시는 사회적 약자, 고통에 신음하는 자, 착취에 당하는 자 등을 향한 애정과 위로의 마음을 담고 있다.
이번 오월 전시실에서는 손글씨 작가 27명의 31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고정희 시인의 대표작들의 일부를 발췌해 저마다 손글씨로 꾸민 시화전의 고요하게 빛나는 고인의 시 정신을 대면하는 기회이다.
오월미술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전시된 시서화 작품들은 본 전시장 벽면을 빼곡하게 수놓고 있다. 하나하나 모두 ‘명시’들은 작품들에선 생전에 고인이 외쳤던 시대를 향한 고언과 아픔, 소외되고 낮은 자에 대한 연민, 삶에 대한 희망 등이 담겨 있다.
참여 작가로 백인석(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허성희(상한 영혼을 위하여), 양은경(실낙원 기행1), 김정혜(프라하의 봄1), 송정선(청산별곡), 김미정(어머니 나의 어머니), 조성숙(땅의 사람들14), 조원명(우리 동네 구자명 씨), 김미화(우리 봇물을 트자) 등이 저마다 개성적인 손글씨를 선보인다.
저마다 개성적인 서체에 담긴 고정희 시인의 시는 오늘의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걸기를 해오는 듯하다. 지난 시대에 박제돼 있지 않고 현 시대와 호흡하며 불의와 부조리한 세태에 대해 준엄하게 꾸짖는다.
“오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너희 안락한 처마 밑에서/ 함께 살기를 원하던 우리들의 아벨,/너희 따뜻한 난롯가에서/ 함께 몸을 비비던 아벨은 어디로 갔는가/ 너희 풍성한 산해진미 잔치상에서/ 주린 배 움켜 쥐던 우리들의 아벨…”
이도환이 손글씨로 쓴 ‘이 시대의 아벨’은 약자, 가난한자를 외면하고 자신의 탐욕에만 매몰된 이들을 향한 준엄한 꾸짖음으로 들린다. 이도환은 “자살하는 이들 대부분은 삶이 더 팍팍해지는 세상살이에 지친 사회적 약자들이다”며 “어느 시대인들 아벨을 찾지 않은 시대가 있었겠는가마는, 오늘의 시국이 더욱 ‘이 시대의 아벨’을 찾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한편 고정희 시인은 1975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실락원 기행’, ‘초혼제’, ‘이 시대의 아벨’, ‘지리산의 봄’, ‘광주의 눈물비’, ‘아름다운 사람 하나’ 등을 펴냈다. 유고시집으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등이 있으며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