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건축·건축주 그리고 건축가- 박홍근 포유건축 대표·건축사
  전체메뉴
터·건축·건축주 그리고 건축가- 박홍근 포유건축 대표·건축사
2023년 05월 02일(화) 23:00
집이나 건물을 지었거나 지을 자리를 ‘터’라고 한다. 터를 잡는 행위는 건축의 시작이다. 좋은 터는 높은 안목이 있는 사람에게 우선 보이는가 보다. 다수가 초기에 아주 형편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곳을 ‘건축’이 완성되고 ‘콘텐츠’가 채워지고 나서는 아주 좋은 터를 잡았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런 사례가 있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이다. 이곳의 터와 건축, 건축가와 건축주에 대해 생각해 보자.

첫째, 터다. 깊은 산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술관의 위치와는 사뭇 다르다. 사람이 자연스럽게 찾아오기 쉬운 곳에 미술관은 대부분 들어선다. 그런데 깊은 산속을 택했다. 산속이라 자연 풍경이 좋다. 풍경을 배경으로 활용했다. 미술관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뛰어넘는 사유를 하지 않았다면 이곳을 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적이 드문 산중의 터를,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소로 만든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좋은 터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더 좋은 터가 될 곳을 찾아 만든 것이다. 선견지명이다.

둘째, 건축이다. 산을 보호한다고 그대로 둔다면 산은 산일뿐이다. 그러나 절대자가 만든 자연에 인간이 효과적으로 개입하고, 적절히 조절한다면 좋은 문화 행위이고 문명의 기초가 된다. 인간 행위의 결과는 건축으로 나타난다. 불국사 석굴암을 비롯한 산속의 수많은 사찰을 보면서, 지금 그렇게 조성한다면 모두 자연 훼손이라는 이름으로 큰 반대에 직면하게 될 사업들이다. 이는 하늘이 준 자연을 인간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인간이 ‘쌓고 세운 것’(建築)도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나면 자연스레 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점을 곰곰이 들어다 봐야 할 부분이다.

셋째, 건축주다. 산속에 미술관을 짓겠다고 한 것을 보면 건축주의 시선 높이를 짐작할 수 있다. 고(故) 이인희 한솔문화재단 이사장의 안목이다. 다수가 첫 단추와 같은 장소 선택에 대해 염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건축과 콘텐츠의 힘을 아시는 분이었던 것 같다. 결국, 성공했다. 많은 사람이 이 먼 곳을 찾아온다. 찾고, 머물고, 알리고, 다시 온다. 사업가로 살아오신 분이 장사의 기본은 ‘목’이란 것을 아실 것이고, 이미 형성된 곳도 있지만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 같다.

넷째, 건축가다. 건축주의 높고 큰 꿈도, 구체적으로 실현해 줄 합당한 건축가(사)를 만나지 못하면 성공하기 힘들다. 건축주는 이를 잘 알아야 하는데, ‘뮤지엄 산’의 건축주는 이를 잘 알고 계신 분으로 보인다.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안도 다다오’를 택했다. 그는 일본의 버려진 섬 나오시마에서 이미 건축과 콘텐츠로, 성공의 경험이 있는 건축가다. 뮤지엄 산은 주차장부터 미술관 건물까지, 터 전체와 건축 내외부를 모두 미술관으로 설계했고, 유명해졌다. 건축가의 능력이고, 이를 수용한 건축주의 그릇 덕분이다. 건축은 건축주 수준 그 이상을 넘을 수 없고, 건축가의 능력과 열정, 사명감이 더해져 이루어진다.

여기, 이 지역은 어떠한가? 여수에 ‘예울마루’라는 문화공간이 있다. GS칼텍스가 후원하고, 능력이 검증된 ‘도미니크 페로’라는 건축가가 참여했다. 저평가된 산속에 문화공간 터를 잡았고, 산과 주변에 잘 어울리는 건축물을 세웠다. 건축주의 탁월한 선택 결과이고, 운영도 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완성의 시작과 끝에는 능력 있는 건축가와 현명한 건축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결과 명소가 되었다.

건축물이 완성되는 과정은 교향악단의 명연주가 진행되는 모습과 유사하다. 모든 분야가 다 중요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건축주이다. 건축주는 교향악단의 지휘자가 되기도 하지만 명지휘자를 선택하기도 한다. 행정에서는 행정의 실무자가 건축주 역할을 대신한다. 그의 의지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갈리기도 하는 것을 봐 왔다. 기업에서는 총수의 지시에 따라 담당 상무나 전무가 한다. 소규모 기업이나 개인은 주인이 직접 챙긴다. 그들의 시선의 높이에 따라 터를 잡고, 콘텐츠가 구성되고, 건축가를 선택하고, 완성된다. 완성되는 과정은 문화를 만드는 과정이고, 그 결과물인 건축물은 오랫동안 인간들의 삶을 담고, 녹이고, 쌓으면서 문명의 기초가 된다. 이는 그 지역의 경쟁력으로 되돌아온다.

건축주, 건축주로부터 위임받아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 건축가로 선택을 받아 지휘하는 사람, 교향악단의 단원 같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단순 용역(?)이 아닌 내 자식의 자식에게까지 물려줄 유산을 만들고 있다는 사명감을 잊지 않아야겠다. 쉽지는 않지만.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