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강 지나는 극락강역, 은하철도 극락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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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강 지나는 극락강역, 은하철도 극락강역
임의진 시인의 광주 속살 순례기 ‘언저리와 변두리’ 시즌 2 <1>
상상 속 극락 세계 향해 출발!
자연스런 물줄기와 징검돌·나무다리, 그리고 긴 엿가락같은 철로
극락은 바로 우리네 삶의 현장, 정토의 세상…바로 이곳이 출발역
2023년 04월 19일(수) 19:50
1922년 송정역과 동시에 생긴 극락강역은 철도 이용객들이 점점 감소하며 쇠락해 갔다.최근에는 생김새가 예쁜 역이라는 소문이 나며 철도 이용객 말고 일반 여행객들이 찾기 시작했다.
“수몰 지구에 그 잠긴 강바닥에 산수유나무는/ 꽃사과나무는 밤나무 아까시는 어찌 지낼까/ 새들 대신에 물고기들이 찾아가겠지.” 곰곰이 앉아 짧은 시를 짓기도 한다. 일본에선 이런 류를 ‘하이쿠’라 부른다지. “물총새가 날아와 무화과를 쪼고 있네/ 강이 말라 붙은 때문이런가/ 낚시하러 가는 않은 건 나도 매일반.” 강물을 바라보면 시가 찾아온다. 또 이런 시도 있다. “강가에 은사시나무 잎사귀는 은빛 물고기 같아/ 가까이 살다 보면 은근슬쩍 닮고 그러나봐/ 쌍둥이처럼 닮아가자, 내 사랑아.”



어릴 적엔 탐진강 강변마을에서 자랐고, 시방은 영산강 강변 자락의 언덕배기에서 살고 있다. 강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작은 배를 만나기도 하는데, 꽃잎이나 마른 잎에 올라탄 개미나 청개구리 식구들, 또 아이들이 놀다 버린 종이배가 그렇다. “하류로 떠내려 온 배 한 척/ 맨 처음 주운 사람이 무조건 임자라네/ 아이가 좋아라 손뼉 친다, 종이배 한 척.”

임의진 목사가 기획한 컴필레이션 음반 ‘강’
짧은 시들을 모아 ‘강’이라는 선곡 음반을 엮어 펴낸 일도 있다. 강물소리 우렁찬 노래들을 사운드트랙 삼아 펴낸 음반. 여전히 강을 보면 흥얼흥얼 콧노래와 함께 시심에 잠긴다.

광주엔 수리수리 마하수리 무려 ‘극락강’이란 강줄기가 흐른다. 어쩌다 그런 이름을 얻었을꼬. 광산구와 서구를 끼고 도는 이 강 이름은 영산강의 도도한 줄기 가운데 한 구간을 가리켜 부르는 이름. 약 7km를 콕 집어서 부르는데, 흘러가는 강물은 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며 다만 이곳에서 저곳까지를 그렇게 부르자 한 옛사람들의 약속이 오래 남았으리.

“아그들은 꾀댕이를 할딱 벗고 항꾼에 뛰어놀고 그랬재. 간간이 아그가 까라 앉아서 죽기도 했는디 극락강잉께 극락에 가부렀겄재. 강물 바닥에 고둥도 많고 그랬는디 그걸 줍고 그랬어. 무장 물이 드러워지고 그래서 발도 못당그겄어, 인자는.”

말을 붙이자 후렴을 쳐주신 어르신도 요새 유행한다는 기후 우울증(Climate Depression)이란 병을 앓고 계시는 듯해. 도시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순간 우울증이 덜컥 솟구쳐. 꽃향기를 좋아했던 애미 애비의 무덤에 썩지도 않고 향도 없는 조화를 놓고 가는 현대판 효자들이 도시에 주로 살고들 있다. 이 도성의 무덤에서 흐르는 해골바가지의 물이여. 생기를 잃지 말고 해갈해 주옵길 다만 빌 뿐이다.

광주사람들은 오래고 오랜 불심의 땅에 울타리를 치고 지붕을 얹어 자자손손 주거했다. 그 언저리로 자그마한 강줄기를 극락강이라 이름하면서 말이다. 이 강변 마을엔 아담한 간이 기차역도 하나 있다. 이름하여 ‘극락강역’. 대합실의 풍경은 남광주역을 모델 삼아 썼다는 임철우 소설 ‘사평역’의 그곳과 흡사하다.



“대합실이라고 해야 고작 초등학교 교실 하나 정도의 크기이다. 유난히 높은 천장과 하얗게 회칠한 사방 벽 때문에 열 평도 채 못 되는 공간이 턱없이 넓어 보여서 더욱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준다. 천장까지 올라가 매미마냥 납작하니 붙어 있는 형광등의 불빛이 실내 풍경을 어슴푸레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아야,말이다. 이러다가 기차가 영 안 올올라는갑다.“ ”아따, 아부님도 참. 좀 기다려 보십시다잉. 설마 온다는 기차가 안 오기사 할랍디여”... 그나마 일이 안 되려니까 기차마저 감감무소식이었다.” (소설 사평역/ 임철우)



노인들도 쿨룩쿨룩, 기차도 쿨룩쿨룩. 긴 엿가락 같은 철로가 흘러드는 극락강역은 1922년에 생겼다. 극락면이라는 지명을 가진 땅. 근처에는 ‘극락원’이란 이름의 이름난 주막 여관도 있었단다. 조선시대부터 있어 자연스럽게 물줄기와 징검돌 절반의 나무 다리를 부를 때 극락강, 극락교라 했다는 설.

1922년 동시에 생긴 황룡강변의 작은 역 송정역은 일약 광주의 관문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 작은 극락강역은 송정리와 광주역을 오가면서 그 명맥이나 유지해오다가 그도 인적이 드물어갔다. 그러다 생김새가 예쁜 역이라는 소문이 나고 철도 이용객 말고 일반 여행객들이 찾기 시작했다.

무궁화 열차가 하루 몇 차례 멈추면 철길에 놀던 비둘기들이 다급히 이륙 비상했다. 통행과 경적이 뜸해 철로변에다 알을 낳고 둥지를 틀 뻔 했는데 말이다. 또 기차 두 대가 비껴가는 희귀한 ‘교행’의 풍경을 보여주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시간표가 줄어 사라진 광경.

극락세계로 가는 은하철도가 있다면 이곳이 출발역이라 상상한다. 극락이란 죽음 너머의 피안이 아니라 이 땅, 바로 우리네 삶의 현장, 정토의 세상을 가리킴일 것이다. 나는 기독교의 품에서 나고 자랐다. 할아버지는 육이오 때 순교자, 아버지는 목사, 나 또한 목사가 되어 괄호 안에서 여태 직업명으로도 불리며 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이미 불교의 정서 안에 놓인 ‘불교 물을 먹은 크리스찬’이 아니겠는가. 이를 ‘원형질 문화’라 유식하게 말하고, ‘본디 바탕’이라고 또 말할 수 있겠다. ‘예수 천당, 불신 극락’의 조화로움과 화합을 꽃피우며, 저 자연의 지극히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가르침, ‘공생’과 ‘상생’에 이르러야 할 일이다.

여러 스님들과 교류해온 그간이었다. 강진에 살 땐 백련사와 도갑사 스님들과 인연하였다. 당시 백련사 주지를 지낸 혜일 스님은 요샌 해인사 주지로 계신다. 나와 혜일 스님, 천주교 신부님, 원불교 교무님, 문익환학교 교장샘 등이 뭉쳐 지역 종교인 평화모임을 만들어 지역의 현안에 대응하고, 한달에 한번씩 돌아가면서 식사 대접을 하곤 했다. 우리 교회 할매들의 바지락칼국수 맛을 그 때 맛보여 드리기도 했었다.

해남 대흥사와 미황사 스님들과도 교류를 나눴다. 지금은 중앙승가대 교수로 있는 금강 스님과는 형제처럼 또 도반처럼 여태도 다정한 인연이다. 멀리 법정 스님이 성전면의 금당 연못에 백련 연꽃이 필 즈음이면 오셨는데, 그 극락 세상을 같이 보자하여 차를 얻어 마시기도 했다. 류시화 시인이 동행하곤 했는데, 류시인은 내가 써놓은 글을 가져가 책을 한 권 내주기도 한 것이 첫 번 수필집이 되었다. 고맙고 감사한 인연이다.

이후 담양으로 이거해선 미국 사는 혜원 스님이 보살펴 주어 그나마 발 뻗고 누워 안온하게 살고 있다. 그는 이 살림집을 선물해주고 한국을 떠났는데, 선친의 유산이었다. 세상에는 놀라운 각오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자본왕생이 아니라 극락왕생을 위해 ‘무소유자유’로 사는 자유인들. 내 거처는 친구 스님의 베이스캠프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샌 귀국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맘에 안들어 오기 싫다는 건 핑계만 같다만.

극락강역에서 기차표 하나를 끊고, 스님 친구들에게 놀러 가고 싶은 날이었다. 저무는 강변에 들렀다가 이어서 간이역을 방문. 사진을 한 장 찍고 나오는 길에 작은 커피집을 만났다. 목이 마를 즈음이었다. 탁자에 청년이 노트북을 켜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긍정적인 사람은 졸 때도 고개를 앞으로 젖혔다 세웠다 끄덕끄덕한다더라. 얼죽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일교차가 심해 낮에는 더운데 밤에는 춥다만, 얼죽아는 언제나 극락이렷다.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 ‘붓다’
커피집에는 만화책이 꽂혀있었다. 허영만의 ‘꼴’, 또 윤태호의 ‘미생’ 등. 문득 테즈카 오사무의 대표작 만화 ‘붓다’가 떠올랐다. 극락강변의 카페에 붓다 만화책이 있다면 재밌는 풍경일 텐데... 그의 대표작 ‘아톰’은 일본 원전 기형아의 섬뜩한 얘기라던가. 아무튼 오사무의 만화 붓다 시리즈는 얼죽아, 얼어죽어도 아(我), 모든 세상의 일이 당면한 내 문제이고 연결되었음을 깨닫게 하는 석가의 가르침이 담겼다. 허황된 관념론, 반사회적이며 탈세계적인 얘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인간의 삶에 눈뜨게 하는 게 바른 종교의 가르침이다. 봄마다 석가탄신일, 내가 새로 태어나고 내가 눈뜨는 일이야말로 그분의 탄생을 기리는 일일 게다. 만화 붓다의 마지막 장엔 죽음을 앞둔 석가 세존의 유언이 말풍선에 담겨 있다. “모두 방심하지 말고 정진해라!

강물이 찰랑거리는 소리, 마지막 기차가 울리는 경적 소리. 광주의 밤으로 오색 연등 불빛이 차분하고 고요하다. 곧 석탄일. 인연하는 몇 분 스님들 절에 내 이름 석자 연등도 걸어야지. 좋은 세상, 극락 세상이 하루 속히 이 땅에 임하길 바라는 기도로 말이다. 광주의 사월과 오월은 연등과 함께 극락강의 달빛 별빛도 한 줌 빛을 보탠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에 이어진 달빛과 별빛도 연등 행렬이다. 은하철도 기차의 창문으로 뿜어진 불빛도 연등의 어깨띠 잇기, 연등의 기다란 연결선이다. 극락강역에서 저 먼 은하 세계와 사람이 주인되는 참세상까지.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 ‘붓다’
임의진

시인. 화가. 사진도찍는다. 참꽃피는마을 , 버드나무와 별과 구름의 마을 , 여행자의노래 1-10 , 심야버스 등의수필집, 시집, 음반 등을 펴냈으며 EBS 세계테마기행,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등에 종종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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