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갑(死甲)- 이중섭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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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갑(死甲)- 이중섭 소설가
2023년 03월 21일(화) 02:00
지난 2월 두 번째 주말은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고향을 향하다가 시간 여유가 있어 중간에 5·18 망월 묘지로 차 머리를 돌렸다. 묘지 입구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조금 넘었다.

서울과 고향을 오가며 자주 망월 묘지를 찾지만 이번에는 의외로 오랜만에 들렀다. 오랜만이다 보니 막상 시골 친구의 묘를 찾는데 조금 헤맸다. 내가 알고 있는 친구의 묘는 묘역 맨 뒤에 위치했었다. 그곳에 가보니 그의 묘가 없었다. 황당했지만 다시 아래 묘역을 둘러봤다. 친구 이름이 새겨진 묘비가 없었다. 뭐지? 무언가 변했는데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그 다음 아래 묘역을 살피니 그곳에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그러니까 맨 뒤였던 친구의 묘역 뒤로 어느새 두 군데의 묘역이 더 생긴 것이었다.

얼떨떨한 마음으로 친구 묘 앞에 섰다. 올해가 우리 또래의 환갑이기에 그를 찾은 것이다. 그에게 그 사실을 직접 말해 주고 싶었다. 묘석 앞에 서니 전에는 느끼지 못한 묘한 감정이 일었다. 알베르 카뮈의 ‘최초의 인간’에서 주인공인 아들이 죽은 아버지의 묘 앞에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다. 카뮈의 죽은 아버지는 스물아홉 살이고 살아 있는 아들 카뮈는 마흔 살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느꼈던 죽은 아버지에 대한 부정(父情)과 연민이 아니라 자기보다 열한 살이나 적은 나이에 죽은 한 인간으로서의 젊은이에 대한 고통과 불쌍한 감정에 휩쓸린다.

친구의 묘 앞에 놓인 사진을 보는 순간 이전까지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그 얼굴이 갑자기 아주 색다르게 보였다. 지난 사오십 대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사진에는 티셔츠를 입은 어린 친구의 모습이 있었다.

“애걔, 아주 어린 꼬마잖아!” 고등학교 때 사진인데 어려도 그처럼 어리게 보일 수가 없었다. 그 사진 속 친구는 아주 앳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저씨, 누구예요?” 내 나이는 환갑이고 친구는 열여덟 살에 삶을 마감했다. 열여덟의 나이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치기 어린 시절이다. 어른처럼 거들먹거리지만 비린내가 나는 앳된 나이에 그 어린 영혼은 아무것도 모른 체 갑작스레 생을 박탈당했다. 죽은 영혼들이 우주 어느 공간에 자리를 잡을 수가 있었을까. 그들은 한없이 주위를 맴돌고 있을 것이고 물리적인 힘을 쓰지 못하지만 어떤 정기를 계속해 뿜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 캄캄한 시절을 견뎌낸 용기도 그들의 기운 때문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 묘 앞에 서 있을 때의 느낌이 천천히 바뀌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그가 죽은 나이 그때의 느낌 그대로 다가왔다. 하지만 살아 있는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그도 따라 나이를 먹었다. 기억 속이든 착각이든 상관없었다. 지금은 죽은 그와 살아 있는 내 나이가 사십 년 이상 차이가 나는데도 그를 여전히 나와 같은 나이로 생각하며 그를 생각한다. 그를 찾을 때마다 그 또한 같이 나이를 먹은 걸로 간주했다. 녀석의 묘비 앞에 서면 그와 나는 일 대 일의 관계로 서 있다. 그의 지난 세월과 나의 지난 세월이 몽땅 사라져 버리고 둘만이 서 있다.

시간상의 차이가 있음에도 나는 그를 늘 나와 같이 성장한다고 생각했다. 무생물체가 되었지만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진 생물체로 생각했다. 그날 가만히 그의 사진을 보니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조금 어색했다. 무언가 이치에 맞지 않는 그런 감정의 흐름이 밀려왔다. 이제야 사물과 대상들이 이전과 다르게 다가오는 나이가 되어서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내가 그가 죽었던 열여덟 살의 나이로 항상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 앞에 서면 그가 죽었던 그때 그 나이로 내가 돌아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여튼 예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감정이 환갑을 맞아 흐르고 있었다.

친구를 뒤로 하고 망월 묘지를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죽은 자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계속 성장하며 살아 가고 있다. 살아 있는 자들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죽은 자에 대한 어떤 기억도 살아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 살아 있으니까. 기억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태어나 자라고 수명이 다 되면 사라지는 것이 생물과 다름없다.

살아 있는 자들은 죽은 자들의 환갑을 사갑(死甲)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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