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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프, 혐오와 매혹 사이-미셸 파스투로 지음, 고봉만 옮김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악마의 상징이었던 줄무늬
보편적 무늬로 유행하기까지
2022년 10월 27일(목) 19:45
“중세 사람들은 줄무늬가 있는 표면이 바탕과 무늬의 구분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보는 사람을 농간한다고 여겼다. 10-11세기에 이미지를 읽는 방식대로 바탕의 면에서 시작해서 관찰자의 눈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 달리 말하면 겹을 구분해서 이미지를 읽어 내는 방식이 줄무늬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층상 구조’에 익숙해 있던 중세 사람들에게 줄무늬는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바탕과 무늬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무늬였다. 따라서 그들은 줄무늬를 정상이 아닌 것, 거의 악마적인 것으로 여겼다.”(본문 중에서)

줄무늬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취향의 문제다. 그러나 만약 중세시대에 줄무늬를 좋아했다면 이단아 취급을 받기 십상이었다. 중세의 사료나 문학작품, 도상 등에는 줄무늬 옷을 입는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소외되거나 배척된 사람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사회질서나 풍속을 어지럽히는 불온한 사람들로 취급받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악마로 취급당하기도 했다. 부정적인 일면을 부각시키는 데 줄무늬 옷만한 것이 없었다. 중세 12-13세기에는 줄무늬 옷을 어둡고 경멸의 상징으로 기호화하는 자료들이 넘쳐났다.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스프라이프, 혐오와 매혹 사이’는 줄무늬의 역사와 그것과 결부된 상징을 조명하는 책이다. 중세 문장학의 대가이자 색채 분야 국제 전문가인 미셸 파스투로가 저자다.

그는 유럽사회의 상징과 이미지에 대한 다양한 세미나를 진행했으며 프랑스 문장학 및 인장학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지금까지 ‘검정의 역사’, ‘초록의 역사’, ‘빨강의 역사’ 등 색의 역사를 인문학적 시각으로 풀어내 호평을 받았다.

스프라이프가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지만 중세에는 대표적인 악마의 무늬였다. 종교회의에서 성직자들에게 보낸 명령서에는 줄무늬 옷의 착용을 금지한다는 내용도 있다.

한 사례가 있다. 13세기 프랑스 루이 9세와 귀국한 카르멜회 수도사들이 줄무늬 망토를 입고 있었다. 하필 그 무늬가 이슬람교도들이 입는 줄무늬 젤라바의 일종으로 간주됐다. 한바탕 소옹이 일어났음을 불문가지다.

중세인들은 바탕과 무늬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옷에 선입견이 있었다. 시선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이유였다. 그들은 물체를 하나의 면 순서대로 보고 해석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다색 배합은 줄무늬 가운데 최상의 형태로 간주되었다. 사진은 16~17세기 유행한 가면 희극에서 등장인물들이 스트라이프 옷을 입고 있는 장면. 지오바니 도메니코 페레티의 ‘아를레키노와 콜롬비나’ <미술문화 제공>
그러나 중세가 지나고 근대에 접어들면서 반전이 일어난다. 과거 금기시되다시피 했던 가로 줄무늬는 쇠퇴하고 세로 줄무늬가 인기를 끌었다. 줄무늬가 다채롭게 활용되면서 계층 구분의 기능은 점차 의미가 없어진다.

일상은 물론 축제에서 줄무늬 옷을 입는 사람들이 늘었으며 이국풍의 줄무늬 옷을 즐겨 입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빅토리아 왕조 시대에는 호텔과 객실 담당자 지배인의 제복이 노랑과 검정의 세로 줄무늬 조끼였다. 또한 16세기부터는 줄무늬가 귀족 계급의 품위를 지닌 무늬로 각광릅 받았다.

낭만주의 시대 도래로 줄무늬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상징하게 된다. 과거의 경멸적 이미지는 지워진 대신에 정치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줄무늬가 혁명의 상징 무늬로 인식되면서 미국의 성조기와 더불어 여러 국기에 등장한다.

특히 뱃사람들로부터 시작된 머린 스트라이프는 수영복, 파라솔 등에 활용되며 확산된다. 디자이너들의 패션쇼에도 스프파이트가 등장했으며 피카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스트라이프 옷을 착용하고 대중들 앞에 섰다.

저자는 줄무늬가 자연의 기호보다는 문화에 의해 만들어진 기호라는 관점을 취한다. 인간이 주위에 흔적을 내거나 사물에 새겨 넣거나 다른 이들에게 강제로 요구한 것이라는 의미다. 사실 인간이 만들어낸 줄무늬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바코드다. 관리와 통제의 의지를 함의한다.

<미술문화·2만2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