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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를 좋아하신다면-옥영석 중앙자활센터 자문위원
2022년 09월 21일(수) 02:00
테니스의 계절이다. 지난주 열린 데이비스컵대회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1위 카를로스 알카라스가 버티고 있는 스페인에 0 대 3으로 져 다음 대회에서는 퀄리파이어로 밀려나게 되었다. 하지만 세계 16강이 겨루는 월드그룹에 16년 만에 진출했고, 캐나다의 신성 알리아심을 이긴 권순우 선수와 남지성, 송민규 조의 선전은 우리가 세계적인 선수들에게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심어 줬다.

이번 주에는 서울에서 하나은행컵 테니스대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 US오픈에서 예선 통과자로 우승한 에마 라두카누와 3년 전 프랑스오픈 우승자 오스타펜코 선수가 참여하고 있다.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NH농협은행의 백다연은 월요일 경기에서 1회전 진출에 그쳤지만 투어급 대회에서 가능성을 보여 줬고, 10년 후배를 노련미로 제친 한나래는 16강 진출에 이어 복식에서의 활약도 기대된다. 장수정과 호흡을 맞춰 또 한 번 복식을 제패한다면 꾸준히 세계 무대를 노크해온 그녀의 이름이 한층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3년 전 이 대회에 참가해 우승한 오스타펜코의 쩌렁쩌렁한 기합에다 엔드라인을 넘어 아웃될지언정 머뭇거림 없는 ‘닥공’ 포핸드를 보노라면 감탄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이번 주가 끝이 아니다. 26일부터는 1996년 KAL컵 이후 명맥이 끊어졌던 ATP투어대회가 이어진다. 유진증권배 코리아오픈에는 250시리즈에서 보기 어려운 선수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2주 전 US오픈 결승에서 석패해 세계 1위를 놓친 캐스퍼 루드, 미국의 강타자 테일러 프리츠, 뛰어난 수비를 자랑하는 독일의 즈베레프도 부상 투혼을 불사르며 출전을 신청해 놓고 있다. 안마당에서 이런 스타들의 플레이를 지켜볼 수 있다는 것도 신나는 일이지만, 대회마다 보따리를 지고 다니던 에이스 권순우가 홈코트의 잇점을 얼마나 살릴 수 있을지 기대된다. 또한 10대 후반에 한국 테니스의 매서움을 보여 줬던 정현 선수가 부상에서 벗어나 부활할 수 있을지는 테니스팬이 아니라도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89년 김봉수 선수의 단식 8강’ ‘93년 장의종·김치완 선수의 복식 4강’이 최고 성적이었던 한국 남자 테니스는 2003년 이형택의 아디다스오픈 우승, 2021년 권순우의 아스타나오픈 우승으로 더디지만 꾸준히 성장해 왔다. 이는 선수 개인의 역량과 노력이 무엇보다 우선이겠지만 선수를 발굴하고 지원하며 후원해 줄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뒷받침될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전임 집행부의 배임 여부를 놓고 법정 공방을 벌였던 협회의 어려운 상황에도 권순우 선수 같은 우승자를 배출했다는 건 우리 테니스의 저력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이후 테니스 인구가 눈에 띄게 늘었다. MZ세대의 테니스 유입, 테니스 패션의 유행, 공급이 모자라 품절을 거듭하는 용품 시장, 실내 테니스장의 활황 등은 모두가 환영하고 반가운 일이지만 동호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탁월한 선수를 배출하고 선진화된 지원 시스템 이외에도 동호인들의 응원과 관심이 지속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30여 년 전 우리는 KAL컵을 10여 년 동안 개최해 왔지만 선수와 대회 관계자만 드나들 뿐 관중 없는 코트로 인해 대회를 반납해야 했다. 다시 투어대회를 유치했다지만 지속적으로 개최할지는 정해지지 않은 1회성 대회라는 것이다. 동·하계 올림픽을 유치하고,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가 어렵게 어렵게 가져온 투어대회 개최권을 갤러리가 없어 다시 반납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얼마를 또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제2, 제3의 장의종·이형택·권순우가 나오게 하려면 선크림을 바르고 양산을 챙겨 대회장에 가보자. 오스타펜코의 가공할 스트로크와 프리츠의 강서브가 얼마나 빠른지 실감해 보며 가을바람을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볼 일이 많고, 대회장이 멀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100회 전통에 빛나는 윔블던, 수천 만 달러 상금이 걸린 마스터즈 대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린다고 상상해 보자. 세계적인 선수들의 스텝을 보고, 사인을 받아 책상 위에 걸고 꿈을 키워 가는 권순우 키즈가 늘어날 것이고, LPGA를 호령하는 선수들이 늘 듯, 자연스레 톱텐(TOP10)에 드는 선수가 나오고, 주니어대회가 아닌 남자 단식, 여자 단식을 제패하는 선수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자본도 기술도 아닌 바로 우리의 관심과 응원이라니 이 얼마나 가성비 높고 기쁜 일인가.



옥영석

중앙자활센터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