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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트 냅킨’과 뭉크-박진현 문화·예향 담당국장
2022년 09월 20일(화) 22:00
지난달 중순 핀란드 국적기 핀에어를 타고 북유럽 4개국 출장길에 올랐다. 탑승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공된 기내식 트레이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게 있었다. 세련된 도트 문양의 냅킨이었다. 다른 외국 비행기에서 봤던 ‘평범한’ 그것과는 달랐다. 흰색 바탕에 파란색 도트로 디자인된 냅킨은 핀란드의 국민 기업 ‘마리메코’와 핀에어가 콜라보한 것이다. 한낱 일회용 냅킨이었지만 새삼 북유럽의 미적 감성을 느끼게 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디자인 강국은 냅킨 한 장도 허투루 만들지 않는 것 같았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는 지난 2012년 ‘디자인을 일상 속으로’(Embedding Design in Life)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세계 디자인 수도로 뽑힌 데 이어 2014년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디자인 창의도시로 이름을 올렸다. 그래서인지 헬싱키 시내를 거닐다 보면 핀란드 출신의 모더니즘 디자이너 알바 알토에서부터 엘리엘 사리넨이 설계한 중앙역 등 독특한 외관이 인상적인 건축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도심 곳곳에 들어선 패션브랜드 마리메코와 아딸라에는 ‘피니시 디자인’(Finnish design: 핀란드식 디자인)의 모던한 제품과 기념품을 구입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의 발길로 붐빈다.



오슬로의 ‘색깔’ 담은 기념품



핀란드에 이어 방문한 노르웨이의 오슬로는 ‘예상과 달리’ 문화예술의 도시였다. 신비한 피오르드와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청정 국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뭉크미술관, 오페라하우스, 중앙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예술 특구를 둘러보니 ‘북유럽의 베네치아’로 떠오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에드바르트 뭉크 미술관은 도시 전역에 예술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진원지였다. 스페인 건축가 후안 에레로스가 설계한 미술관은 그 자체가 작품인 데다 뭉크의 대표작 ‘절규’를 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빼어난 건축미를 과시하는 오페라하우스가 인접해 있어 낮에는 그림을 관람하고, 밤에는 공연을 즐기는 일석이조의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뭐니 뭐니 해도 뭉크미술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는 아트숍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절규’를 비롯해 미술관의 소장품과 오슬로의 자연 풍광, 건축물, 관광 명소 등을 소재로 만든 수백 종의 기념품이 관람객을 맞는다. 미술관의 가장 기본적인 화집에서부터 아트 액자, 필기도구, 스카프, 액세서리, 에코백, 텀블러, 도자기 등 예술성이 돋보이는 아트 상품들은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특히 오페라하우스, 뭉크미술관 등 도시의 핫플레이스들을 모티브로 한 기념품은 두고 두고 오슬로에서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천혜의 비경을 지닌 힐링 여행지에서 예술의 낙원으로 외연을 넓히려는 오슬로의 도시 브랜딩이 통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북유럽 뿐인가. 외국의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다 보면 도시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형상화 한 기념품숍들이 많다. 특히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도서관 등의 아트 상품은 한 도시의 품격과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명품이자 공공재이다.

이처럼 미술관이나 문화 시설의 아트숍은 단순한 기념품 매장이 아니다. 이들 미술관의 시그니처에서부터 그 도시의 고유한 유산과 문화콘텐츠들을 스토리텔링해 퀄리티 높은 아트 상품을 선보이는 쇼케이스이다. 근래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이중섭 미술관, 리움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등 내로라하는 국공립 미술관과 사립미술관이 경쟁적으로 아트 상품 개발에 눈을 돌린 것도 그 때문이다.



‘광주산(産)’아트 상품은 언제쯤



그런 점에서 문화 수도를 자부하는 광주의 현실은 씁쓸하다. 올해로 개관 7주년을 맞은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에서부터 아시아의 넘버원으로 불리는 광주비엔날레, 올해로 개관 30주년을 맞은 시립미술관의 방문객들은 ‘빈손’으로 떠난다. 예향의 대표적인 문화 인프라이지만 명성과 역사에 걸맞은 기념품이나 아트 상품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수익성이 낮다” “규정과 맞지 않는다” 등의 명분을 앞세워 아트 상품 개발을 등한시한 탓이다. 이는 지난해 문을 연 전남도립미술관이 ‘미술관 관리 운영 조례’를 제정해 소장품을 중심으로 예술성과 실용성을 가미한 일곱 종의 아트 상품을 선보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내일이 빛나는 기회 도시’를 슬로건으로 내건 민선 8기 강기정호가 출범 100일을 앞두고 있다. 취임 초기 강 시장은 지역사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관광을 분리해 신설한 신활력추진본부를 중심으로 복합쇼핑몰 유치와 관광을 묶어 ‘맛을 알고 멋을 아는 재미 있는 도시’를 구현해 나가겠다는 의욕을 내비쳤다. 하지만 시립미술관이나 광주비엔날레재단 등 지역 문화기관들이 수익성과 규정에 얽매여 차별화된 아트 상품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다면 광주만의 멋을 제대로 보여 주게 될지 의문이다. 전국 유일의 ‘예술 관광 도시’임에도 아직까지 ‘변변한’ 기념품 하나 없다는 건 문화도시의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 수 없다. 언제쯤이면 문화 광주를 상징하는 멋진 아트 상품을 전국의 거실에 들여놓을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