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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자리-송민석 수필가·전 여천고 교장
2022년 08월 24일(수) 00:45
각종 면접에서 지원자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 자료가 ‘자기소개서’다. 인사 담당자는 바쁘다. 성의 없는 자기소개서를 찬찬히 검토할 여유가 없다. “저는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입사 원서에 이런 내용을 쓰면 반드시 떨어진다는 마법의 문장이다.

필자는 대학에서 6년간 입학 사정관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면접관은 애매하고 추상적인 용어나 인터넷에서 떠도는 상투적인 표현이 나오면 표절부터 의심하게 된다. 취업 준비생의 최종 목표는 취업이다. 자소서의 추세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지원자를 기업체에서 어디에 쓰겠는가.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로 시작하는 자소서는 쓰레기통으로 직행이다. 물론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는 죄가 없다.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을 담은 ‘가시고기’란 소설이 2000년 초 화제가 되었다. 백혈병에 걸려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린 어린 아들을 보살피다 시한부 인생을 산 아버지의 부성애(父性愛)를 그린 눈물겨운 작품이다.

가시고기는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강한 물고기다. 암컷이 산란 후 죽고 나면 수컷은 그때부터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알 옆에서 보름 동안 지느러미를 계속 움직여 알에 맑은 산소를 공급한다. 다른 물고기들이 가시고기의 알을 먹기 위해 침입하면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워 그들을 내쫓는다. 이렇게 사투를 벌이다 체력이 소모되면 가시고기 수컷은 새끼들이 있는 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초등학교 과학 교과서에 소개된 가시고기의 육아 일기는 아버지 부재의 시대를 고발하는 듯하여 감명을 주고 있다.

현대는 ‘아버지 부재의 시대’라 할 만큼 아버지의 역할에 관한 혼동과 갈등이 존재한다. 요즘 아이들이 생각하는 아버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돈 벌어다 주는 사람’ ‘눈뜨기 전에 나가고 잠든 후에 들어오는 하숙생’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다 보니 세상이 온통 어머니만 있고, 아버지는 없는 세상인 듯하다. 그나마 매달 연금을 받는 아버지는 어느 정도 노후 생활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조차 시원치 않은 아버지는 나이 들수록 아내의 사랑을 받는 애완견을 부러워하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집안에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던 아버지의 자리를 내려놓고 물러설 수도 없다. 그만큼 무겁고 어려운 자리가 아버지다.

농경시대부터 아버지는 삶의 경험을 전수하는 자상한 안내자였다.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파종하고 타작을 하는 등 농사 요령을 배웠다. 농경시대에는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삶의 지혜였고 세상 질서였다. 그 시절에는 ‘아버지의 자리’라는 게 있었다. 한국의 전통적 온돌 문화에서 아랫목은 아버지만의 공간이었다. 그 자리는 아버지의 권위로 상징돼 그 누구도 아랫목에 앉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바뀌면서 아버지들의 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특히 디지털시대가 되면서 변화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

먼저 배웠다는 것이 반드시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자유 시간 대부분을 인터넷과 함께 보내고 있다. 세상 누구와도 실시간 교류가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아빠는 몰라도 돼”라는 자식들의 말투에 우울해하면서 골방으로 밀려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버지의 부재 현상이 확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정의 균열은 곧 사회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아버지 등을 바라보면서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비행 청소년 대부분은 사실상 이런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심리적 방황을 겪고 있다.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언제든지 찾아가도 변함없이 맞아주는 고향의 느티나무 같은 존재가 아버지의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