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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와 공유-황 성 호 신부, 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2022년 08월 19일(금) 00:45
동사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사람을 대상으로 혹은, 어떤 물질이나 재화를 향한 마음과 실질적인 행동을 이끄는 동기 부여의 말로 사용된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정도를 넘어서 원래의 취지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사랑한다”는 서로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엄청난 말이다. 그러나 전혀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 한쪽만의 사랑은 상호적 상승과 행복 작용은 없고 소유와 갈등 그리고 우월한 지위를 선점하려는 싸움만 남을 뿐이다.

“좋아한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통해 자기 삶을 행복으로 이끌려는 긍정적 힘이 있는 말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이 상식을 벗어나거나 자신이 감당하기에 부담스러운 것이라면 행복과는 멀어질 것이다. 그리고 무거운 짐이 되어 자신의 삶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뿐이다. 만약에 그 좋아하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대중이 좋아하는 것인데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추구하면 큰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착각이며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는 사라지고 가면으로 가려진 가짜의 삶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타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가지려는 그 마음은 이미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말은 서로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지 서로를 옭아매이게 하지 않는다. 모두가 똑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다양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말로 그 대상을 소유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소유하는 그 순간 상호적인 작용은 더 이상 없고 자신이 소유하고, 그 소유를 통해 다른 이들보다 더 높은 위치를 선점하려 하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것과 어리석음의 차이는 크지 않다. 지혜와 어리석음은 같은 토대를 가지고 있는데, 서로를 위하고 모두를 위하는 지향이라면 매우 긍정적인 잠재력으로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근본을 잃어버리고 사유화하려는 이기심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관계를 무너뜨리고 만다. 지혜는 서로를 살게 하지만, 어리석음은 서로를 파멸로 이끈다. 인간관계가 그렇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그렇다. 공유하지 않는 소유는 독점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이고, 그 마음은 탐욕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모든 관계성이 무너지고 서로를 파멸로 이끌게 되는 것이다. 돈이면 못할 것 없는 세상과 자연을 파괴하려는 우리의 탐욕은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사랑하고 좋아해서 가지려는 소유는 타자와 공유하지 않게 되며 결국 자기만을 위한 탐욕일 뿐이다. 자유롭기 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사랑하고 좋아한 것인데 소유하여 매이게 되면 자유는 온데간데없고 노예로 전락해 버린다. 사람·물질·명예·권력의 노예가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랑하고 좋아하여 가장 높고 아름다운 곳으로 향할 수 있는 방법은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는 것이다. 소유하며 쌓아진 것으로 내 인간 존재가 높은 지위를 선점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고 나누어 주고 내어 주면서 최상의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어떤 것도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은 잊지 말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생명과 삶을 위해 피신해 오는 난민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셨다. 이주민과 난민은 물론, 지금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음의 메시지를 전달하셨다. “강은 자신의 물을 마시지 않고,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먹지 않으며, 태양은 스스로 비추지 않고, 꽃은 자신을 위해 향기를 퍼트리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돕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인생은 당신이 행복할 때 좋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입니다.” 소유를 통해 매여 있는 삶보다 공유하면서 서로를 자유롭게 살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소유의 삶과 공유의 삶, 어떻게 생각하십니까?